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천줄읽기
2534호 | 2015년 4월 10일 발행
20세기 역사 논쟁을 폭발시킨 문제작, ≪마호메트와 샤를마뉴(Mahomet et Charlemagne)≫
강일휴가 뽑아 옮긴 앙리 피렌(Henri Pirenne)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Mahomet et Charlemagne) 천줄읽기≫
중세는 누가 만들었을까?
암흑의 시간, 종교의 시간, 봉건의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리스와 로마의 로고스와 민주주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중세의 문을 연 샤를마뉴의 뒤에는 마호메트가 있었다.
인간의 세상이 끝나고 신의 세상이 시작되었다.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고대와 지중해 질서의 대변동을 샤를마뉴 제국의 탄생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다. 이 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동방과 서방의 분리로 교황의 권위가 서유럽에 한정되었다는 사실에,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의 에스파냐와 아프리카 정복으로 프랑크인의 왕이 기독교적인 서방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마호메트가 없는 샤를마뉴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천줄읽기≫, 앙리 피렌 지음, 강일휴 옮김, 133~134쪽
샤를마뉴는 누구인가?
게르만족의 한 일파인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왕이다. 서기 800년에 교황이 그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명했다. ‘샤를마뉴 대제’로도 불린다.
마호메트는?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슬람의 창시자다. 632년에 사망했다.
샤를마뉴를 마호메트가 만들었나?
샤를마뉴가 샤를마뉴 대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 때문이다.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한 476년부터 서방 세계에는 황제가 없었다. 그로부터 300여 년 뒤에 샤를마뉴가 황제가 된다.
이슬람이 무엇을 한 것인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부터 서방의 교황을 지켜 준 것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세력을 키워 동방을 위협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동로마 제국은 이슬람과의 투쟁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샤를마뉴가 교황의 보호자가 된 것인가?
당시 프랑크 왕국은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를 제외한 서방 기독교 세계 전부를 지배했다. 교황 레오 3세가 그를 황제로 임명하고 보호를 청했다.
지중해 질서의 대변동이란?
샤를마뉴는 로마 교황에게 제관을 받고 즉위했지만 권력 기반은 로마가 아니라 유럽의 북부였다. 이때부터 세계의 중심은 로마를 벗어나 프랑크 왕국, 곧 유럽으로 이동한다. 그러고 중세가 시작된다.
중세는 476년에 시작된 것 아닌가?
그것은 에드워드 기번의 주장이다. 통설이다. 이 책의 저자인 피렌의 생각은 다르다. 게르만족의 침입 이후에도 로마 문명의 본질적 특징이 한동안 유지되었다고 주장한다.
로마의 본질이 무엇인가?
라틴어와 기독교다.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 세속적 권력도 특징이다.
그것이 게르만 침입 뒤에도 유지되었다는 말인가?
서방에 정착한 게르만족은 많게 잡아도 전 주민의 5% 미만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조밀하게 결집한 집단도 아니었고 제국을 파괴하지도 않았다.
게르만이 로마를 남겨 둔 이유가 뭔가?
제국을 찬양했기 때문이다. 게르만족 남성과 로마 여성이 결혼하면 그들의 아이는 라틴어를 배웠다. 게르만법도 로마식으로 해석했다. 그들은 게르만의 모든 원초적 특징을 잃고 로마의 영향을 받아들였다.
이슬람은 어떤가?
정반대로 행동했다. 자신들이 가는 곳을 모두 지배했고 피정복민과 융합하지 않았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 이슬람의 영향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아프리카 북부, 이베리아 반도, 시칠리아 등 로마 제국의 핵심 지역을 정복했다. 이로부터 동방과 서방의 교류가 끊어진다. 서지중해도 폐쇄해 서방의 원거리 상업이 자취를 감추었다. 지중해의 통일성은 사라졌다.
샤를마뉴 이후의 중세는 어떤 세상이 되었나?
상업이 소멸하고 토지가 유일한 재산이 되었다. 왕과 가신들의 계약 관계로 맺어진 봉건제도가 시작되었다. 세속적인 왕이 아니라 신의 은총을 받은 왕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피렌의 사관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무엇인가?
무수한 논쟁이 벌어졌다. 역사가 린 화이트(Lynn White)는 “20세기 역사서 가운데 피렌의 이 저서만큼 폭발적인 연구를 유발한 저서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사실이 많이 밝혀져 이 책의 오류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독창적인 관점이다. 카롤링거 시대에 유럽의 중심이 지중해 지역에서 북부로 이동했다는 지적은 오늘날에도 설득력이 있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얼마나 발췌해 옮겼는가?
내용 이해에 중요한 부분 35%를 발췌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강일휴다.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