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자 문집
배규범이 뽑아 옮긴 혜심(慧諶)의 ≪무의자 문집(無衣子文集)≫
너의 삶이 무겁고 답답할 때
무의자를 만나 보라. 옷이 없으니 가린 것도 없고 가린 것이 없으니 가릴 것도 없다. 하여 가볍고 투명하며 조용하고 상쾌하다. 덥고 답답할 때, 옷을 벗고 싶을 때 옷 없는 사람, 무의자를 만나라.
“비 온 뒤 솔 뫼
비 개자 시원스레 목욕하고 나온 듯
남기가 엉켜 푸르름이 뚝뚝 맺힐 듯.
멍하니 보다 마음 일어 한 수 읊으니
내 온몸도 서늘하고 푸르러지네.
雨後松巒
雨霽冷出浴
嵐凝翠欲滴
熟瞪發情吟
渾身化寒碧”
≪무의자 문집≫, 혜심 지음, 배규범 옮김, 33쪽
무의자가 누구인가?
진각국사 혜심(慧諶)이다. 무의자(無衣子)는 그의 호다. 고려 시대 승려로 보조국사 지눌의 후계자였다.
지눌과는 어떤 관계였는가?
혜심은 1202년 조계산 송광사에서 지눌의 제자로 승려 생활을 시작했다. 1210년에는 지눌의 법석을 공식적으로 이어받아 수선사(修禪社) 2대에 오른다.
수선사는 어떤 자리였는가?
당시 사회, 종교적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천태종 중심의 당시 불교계는 왕권과 결탁해 부패했다. 수선사 결사는 그러한 불교계를 보며 지눌이 결성한 실천적 운동이었다.
그들의 종교 실천은 어디까지 미쳤는가?
그들의 혁신성이 최씨 무신정권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무신정권은 자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선종의 결사운동에서 찾고자 했다. 무신정권과 수선사는 현실적 필요에 의해 물질적인 지원과 정신적인 후원을 서로 교환해 밀착했다.
혜심은 정치 권력과 어떻게 지냈는가?
항상 정권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종교인의 본분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수선사를 당시 정신계의 핵심으로 이끌었다.
혜심은 무엇을 실천했는가?
지눌의 사상을 다양한 양상으로 승화시켜 승려들은 물론 재가신도에게 널리 전파했다. 이를 위해 한국 선가의 요체인 ≪선문염송(禪門拈頌)≫을 비롯해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무의자 시집(無衣子詩集)≫ 등의 저술을 남겼다. ≪선문염송≫은 화두 1700여 개를 모은 선가(禪家)의 보고다.
원제는 ≪무의자 시집≫인데 이 책 제목은 왜 ≪무의자 문집≫인가?
<빙도자전> 등 산문도 수록했기 때문이다. 혜심의 글 가운데 시 81편과 산문 3편을 가려 뽑았다.
그의 문학은 포교의 수단인가?
문학적 재능 자체도 매우 뛰어났다. 출가 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 국자감에서 수학할 정도였다. 이런 자질은 승려라는 독특한 신분과 만나 빛을 발했다. 그 결과, 국문학 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선시(禪詩) 작가가 되었다.
그의 선시는 무엇을 말하는가?
혜심의 시 세계는 선사상을 문학적으로 표출하는 면이 강하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선(禪)적 흥취를 묘사한 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산사 생활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사찰의 아름다움을 읊거나 산사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승려가 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는가?
스님에게 자연은 주된 생활 공간이다. 산으로 대변되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선기(禪機), 즉 선승(禪僧)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인용한 시, <비 온 뒤 솔 뫼>도 비 갠 후 산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상쾌함을 잘 나타낸다. 혜심은 스스로 한벽(寒碧)됨을 느꼈다.
출가자의 안분지족인가?
승려들의 일상사가 보인다. 청빈한 삶 속에서 존재를 찾는다.
한시와 선시는 무엇이 다른가?
선시는 일반 문사들의 시와 궤를 달리한다. 내용상으로는 깊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했고, 형식상에서는 정형보다 파격을 즐겼다.
선시의 계보에서 혜심의 위치는 어디인가?
선시는 파편적으로 전해 오다가 고려 시대에 와서야 하나의 양상으로 확고해졌다. 그 맨 앞에 혜심이 서 있다. 그의 작품은 불교철학적인 냄새만 풍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사들의 창작 활동에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사상적 내용과 아울러 참신함도 보인다.
혜심의 문학은 어디까지 미쳤는가?
고려조의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태고국사(太古國師) 보우(普愚), 조선조의 함허당(涵虛堂) 기화(己和)·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등 후대의 불교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속세인에게 ≪무의자 문집≫은 무엇인가?
답답할 때 보면 시원해진다. 무거울 때 보면 가벼워진다. 집착에 휩싸일 때 보면 홀가분해진다. 깜깜할 때 보면 투명해진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소란할 때 이 책을 보면 깊은 산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누구인가?
배규범이다. 중국 무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 한국어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