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로서의 언어
김하수가 쓴 <<문제로서의 언어 1: 사회와 언어>>, <<문제로서의 언어 2: 민족과 언어>>
산 말과 죽은 말
수없는 세포가 합심해 하나의 고등 생명체가 탄생한다. 밖으로부터 먹이를 얻어 제 몸을 키운다.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한다. 먼 것과 혼인하여 새 생명을 낳는다. 풍부한 것은 아름답다. 말은 다른가?
언어를 문제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그 자체의 한계와 모순을 갖는다.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다.
<<문제로서의 언어>>는 언어의 어떤 문제를 논의하는가?
우리나라의 언어 연구 경향, 언어 규범과 언어 사용의 관계, 국어 순화와 외래어 표기법, 민족과 언어의 관련성, 언어의 사회 통합 기능, 한국어 교육과 같은 쟁점을 다룬다.
당신이 이렇게 많은 문제를 새롭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 국어 연구는 사회와 언어의 관계를 긴밀하게 살펴보지 않았다. 사회 역사와 언어 역사를 따로 기술했다.
사회 역사와 언어 역사를 별개로 바라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언어가 삶의 역사 속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가를 알 수 없게 된다. 중요한 문제를 간과한 셈이다.
우리 국어 연구가 언어의 사회적 성격을 간과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제 강점이라는 역사적 조건 탓에 국어가 언어학이 아니라 국학 차원에서 연구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언어 규범과 용어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좀 더 세밀하고 폭넓은 언어학 연구가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언어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연구 자세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언어만 보면 안 된다. 언어와 사람을 함께 살펴야 한다. 언어와 사용자 집단의 관계가 언어 문제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언어와 사람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역사에서 언어를 바꾸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어 사용자의 삶의 변화가 언어를 바꾼다. 인터넷을 보라. 인터넷의 등장은 전통적인 맥락에서 사용해 온 입말과 글말의 구별을 무너트리고 있다.
인터넷 사용이 불러일으킨 입말과 글말의 혼재는 나쁜 일인가?
기존 언어 규범이 망가졌다. 동시에 우리 언어생활의 또 다른 면모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변화이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언어 연구 방법론으로 사회언어학을 제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회언어학은 언어와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대립하며 언어를 통해 무엇을 구현하려는지를 연구한다.
언어 규범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한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주도 집단이나 주도 계급의 언어가 추상화되어 언어 규범으로 행세한다.
언어 규범은 우리 말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언어 규범이 실행된다는 것은 특정 집단의 언어를 전체 언중이 자연스러운 대표 언어로 삼는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것은 사실상 언어 사용자 대다수를 소외시키는 일이다. 언중의 대표성은 묵살되고 특정 집단의 의식만 표상된다.
언어 규범의 배제성은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인가?
언어 규범 대신 다수의 공통성이라는 기준에서 언어를 정비하면 해소할 수 있다. “규범의 입법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쉬지 않아야 한다.
‘아름답고 풍부한 우리말’이라는 정책 구호는 현실 가능한 것인가?
막연한 구호일 뿐이다. 너무나 손쉬운 당위론적 주장이다. 국수주의적 로망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언어 정책은 어떤 것인가?
언어 사용자 대중의 교육 수준과 문화 활동의 폭을 얼마나 역동적으로 만들 것인지, 대중을 사회적 소통에 어떻게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 언어 정책의 방향성과 추진력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지구촌 시대에 외래어 순화 정책은 가능한 것인가?
언어는 결코 순결하게 만들 수 없다. 단지 자기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이걸 자꾸 혼동하니 문제가 아닌 것이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다. 남의 것, 그들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어휘 손질의 핵심이다. 이런 일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또 언제나 해야 할 작업이다.
순화 정책이란 말은 어떤 철학을 가진 입에서 나오는 단어인가?
혈통을 구별해 인종을 나누고 순혈과 혼혈을 나누겠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듯하다. 이런 사고방식이 인류의 역사에 어떤 결과를 기록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혈통을 따지듯 어원을 따져 말을 순화하겠다는 주장은 선동에 지나지 않지 않는다.
언어가 사회 통합의 매개로 작용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언어 문제를 방치하면 다른 변인들인 종교나 시장이 사회 통합의 매개 구실을 한다. 그러나 해법을 고민하면 언어가 좀 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
종교나 시장보다 언어가 사회 통합에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종교를 통한 사회 통합은 서아시아처럼 근본주의적 신앙이 지나치게 정치적 역할을 하기 쉽다는 문제를 낳는다. 시장이 그런 역할을 한다면 자본주의 선진국들처럼 사회의 계층화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언어는 이들 문제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언어를 사용한 사회 통합의 약점은 무엇인가?
소수민족이 피해를 본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니까 그 문제를 피해 갈 수 있는 역사적 조건을 갖고 있다.
남북분단 극복의 수단으로서 언어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매우 유용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종교도 아니고 시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제제도와 정치체제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
북한의 국어 연구 경향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국어 연구는 서구의 이론 모델을 열심히 수용해 가는 성격을 갖는다. 무척 진취적인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이와 달리 북한에서는 한국어/조선어만의 특수한 구조를 설명하려 무척 노력한다. 일관된 면도 있고, 늘 비슷한 말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어학 일반의 원리를 충실히 지키려고 하는 태도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이념 틀을 강조하려는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
언어 연구의 현재 이슈는 무엇인가?
탈구조화다. 지금까지 언어 연구자들은 언어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려고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인간의 삶이 그리 구조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처럼 올바른 언어의 기준을 세우는 일보다는 사람이 말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인간사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21세기 언어 연구는 무엇을 연구하는가?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언어생활의 전반적인 면을 파악하는 연구, 잡담과 농담을 포함한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연구, 이야기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을 살피는 연구, 상담·조언·화해·인터뷰·합의의 방법과 역할 분담에 대한 연구들이다.
우리말 발전을 위해 정부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투자가 필요하다. 언젠가 예산 담당자와 이야기하면서 우리 언어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번에 예산 100억 원을 쓰는 것보다 해마다 1억 원씩 100년 동안 쓰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한번에 두둑하게 배를 채우는 진수성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어야 하는 비타민처럼 꾸준히 정성을 들여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하수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