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지
중국고대소설 신간 ≪박물지(博物志)≫
신선처럼 날고 싶어?
이 책을 보라.
깉은 산 맑은 골을 찾아 머리 감고
몸을 씻다 보면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신체가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보는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부러워하는 소리가 골짜기를 메아리친다.
신선이 되어 승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로 오른 뒤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여기 그의 행방을 추적한 보고서가 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천문군 이무기 이야기
천문군 깊은 산에 험한 골짜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던 사람이 갑자기 수풀 밖으로 튕겨 오르곤 했다. 신선이 날아오르는 듯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중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어서 사람들은 여기를 신선계곡이라 불렀다. 도를 즐기고 도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골짜기를 찾아 몸을 씻고 머리를 감으면서 신선이 되기를 바랐는데 뜻을 이루는 이가 없지 않았다. 신선처럼 날아간 것이다.
머리 좋고 힘센 이가 있었는데 이곳에 요괴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큰 돌과 줄로 잇고 개 한 마리를 끌고 골짜기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개가 날아가 버렸다. 그는 마을에 돌아와 이 사실을 알렸다. 사람 수십을 모아 몽둥이를 든 채 풀과 나무를 베어 가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멀리 괴물이 보였다. 길이가 수십 장, 높이는 사람 키를 넘고도 남았으며 귀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만큼이나 컸다.
괴물과 격투가 벌어졌다. 활을 쏘고 마침내 칼로 찔러 죽였다. 주변에는 괴물이 삼킨 사람 뼈가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이무기였다. 그 입을 벌리니 한 장이 넘었다.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이무기가 숨을 마실 때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마침내 이곳은 편안하고 안정되었으며 근심이 사라졌다.
天門郡有幽山峻谷, 而其上人有從下經過者, 忽然踊出林表. 狀如飛仙, 遂絶迹. 年中如此甚數, 遂名此處爲仙谷. 有樂道好事者, 入此谷中洗沐, 以求飛仙, 往往得去. 有智能者疑必以妖怪, 乃以大石自墜, 牽一犬入谷中, 犬復飛去. 其人還告鄕里, 募數十人執杖, 擖山草, 伐木, 至山頂觀之, 遙見一物長數十丈, 其高隱人, 耳如簸箕. 格射刺殺之. 所呑人骨積在左右成封, 有蟒開口廣丈餘, 前後失人, 皆此蟒氣所噏上. 于是此地遂安穩無患.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가?
‘천문군 이무기 이야기’는 지괴소설에 들어갈 만한 전형적 대목이다. 오늘날 눈으로 볼 때 비과학적 이야기고 당대의 완고한 유학자라면 역시 황당하다며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도 버리지 않고 기록한 당시 문인의 의식 또한 엿볼 수 있다. 괴물이 등장하지만 결과는 미신 타파라는 교훈을 이끌어 낸다.
≪박물지(博物志)≫는 어떤 책인가?
3세기 중국 문인 장화가 지은 지괴소설이다.
판타지 픽션 같은 건가?
여기서 ‘소설’이란 서구식 의미의 ‘픽션’이 아니다. 원래 중국에서 ‘소설’이라는 말은 유가경전 내용이 아닌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가리켰다. 뚜렷한 줄거리가 없다.
지리서 같기도 한데 어떤 내용인가?
지리서 같은 특성을 살리면서 지괴라는 문학 양식 틀 속에 다양한 내용을 백과사전식으로 기록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일이나 기이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지리, 박물, 역사, 전설, 귀신, 괴이한 현상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시대 이야기인가?
위진 시대다. 천하는 어지럽고 유가사상은 쇠퇴했다. 한편 문학은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 문인은 정통 학술 활동 외에도, 지괴소설 소재가 될 만한 내용을 버리지 않고 기록했다. ≪박물지≫는 이런 시대 경향을 보여 준다.
원본이 유실되지 않았나?
유실됐다. 많은 내용이 ≪예문유취(藝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다른 책에 나뉘어 기록됐다. 후세 사람들이 여러 책에 흩어진 내용을 모아 정리했다.
진본이라는 증거가 있나?
현재 흔히 보는 판본은 흩어진 내용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기에 위본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을 장화가 썼다는 점만은 거의 공인된 상태다.
정화의 ≪박물지≫ 집필 동기는?
‘옛날 지리서들이 유명하나 미비한 점들이 있기 때문에 보충하려 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장화는 완벽을 추구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했으니, 자기 재능을 드러내고 싶은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먼저 주의할 것은 흔히 ‘장화가 ≪박물지≫를 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창작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장화는 다른 책에서 봤거나 들은 이야기를 옮겨 기록한 것이다.
옮겨 적었다는 말은 어떻게 했다는 뜻인가?
‘여와가 하늘의 구멍을 때우다’, ‘과보가 태양과 달리기를 하다’, ‘정위(精衛)가 바다를 메우다’ 같은 신화와 백민 나라[白民國], 군자 나라[君子國] 등 다른 먼 지역의 전설은 ≪산해경(山海經)≫ 등에서 자료를 취해 온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는가?
‘원숭이가 부인을 훔쳐 간 이야기’, ‘8월에 뗏목을 띄운 이야기’, ‘동방삭이 불사주를 마셔 버린 이야기’, ‘천문군에서 이무기를 죽인 이야기’ 등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의 의의는?
‘원숭이 이야기’는 영민하며 인성(人性)과 통하는 원숭이의 형상을 묘사했다. ‘8월 뗏목 이야기’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반영했다. ‘동방삭의 불사주 이야기’는 옛날 왕들이 불로장생설을 믿은 것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얘기다. 황제 앞에서 용감하고 재치 있게 행동한 점이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천문군 이무기 이야기’에는 미신 타파의 뜻이 있다.
이 책에는 서문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원래는 있었겠지만, 소실되었고 후세 사람들이 다시 엮을 때 서문을 구할 수 없었나 보다.
구조는 어떠한가?
모두 10권으로 이뤄졌으며 권수와 상관없이 전체 39개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한 권당 평균 3.9개 항목인 셈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또한 항목당 30∼40개 정도의 조목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학사와 후대에 미친 영향은?
기이한 것들을 써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문장이 많아 중국 소설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후세 소설과 희곡 가운데는 ≪박물지≫에서 제재와 소재, 예술적 상상력, 표현방법 등의 아이디어를 얻은 경우가 있다. 송나라 때는 ≪속박물지(續博物志)≫가 나왔고, 명나라 때는 ≪박물지보(博物志補)≫가 나왔다.
장화는 어떤 사람인가?
자는 무선(茂先)이다. 범양(范陽) 방성(方城) 곧 오늘날의 하북성 고안현(固安縣) 남쪽 지역 사람이다. 232년에 태어나 300년에 죽었다. 태어날 당시는 명제(明帝) 태화(太和) 6년 즉 위(魏)나라 시기였고, 죽을 때는 혜제(惠帝) 영강(永康) 원년 곧 진(晉)나라 때였다. 어려서 홀로되어 가난했다. 양을 치면서 살았다. 가난 속에서도 미래 예언서, 점술서, 방술(方術)에 관한 책 등을 두루 봤다. 박학다식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초료부(鷦鷯賦)>를 지어 당대 유명 시인 완적(阮籍)의 칭찬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위나라 말기에 좌저작랑(佐著作郞), 장사(長史) 겸 중서랑(中書郞) 등을 맡았다. 진나라에서는 황문시랑(黃門侍郞)·중서령(中書令)·산기상시(散騎常侍)·태자소부(太子少傅)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관직이 고위직인 사공(司空)에서 끝났다. 보통 ‘장사공(張司空)’이라고 불렀다.
피살됐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마륜(司馬倫) 일당이 역적모의를 할 때 장화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을 거절해 피살됐다. 더불어 삼족이 몰살당했다. 죽을 당시 집에 남은 재산이라고는 없었고, 오직 책만 가득했다고 한다.
여자아이의 정이 많고 풍운의 기가 적다는 평은 무슨 뜻인가?
개인사와 작은 것에 민감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와 감개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영식이다. ≪오월춘추(吳越春秋)≫, ≪월절서(越絶書)≫, ≪열자(列子)≫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