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단편집 초판본
독립 만세 8. 박영준의 <아버지의 꿈>
아비 구실 못하는 세상
주인공 나이 이제 스물넷. 실직 넉 달에 만삭의 아내와 떨어져 산다. “어린애를 낳고 취직이 되고 마누라와 같이 살고 한다면” 더할 행복이 없지만, 그 소박한 ‘꿈’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굳이 시대 배경을 따질 필요 없다. ‘아버지의 꿈’은 아직 미완성이다.
넉 달 동안이나 실직으로 있다가 취직이 되며 남의 어린애를 귀여워만 하다가 내 자식이라고 생긴다는 나의 마음이 어찌 진정될 수 있었을 것인가?
김천역에 나리였을 때 나를 괴롭게 한 그 느린 기차를 원망이나 하듯이 한 번 도라보고 정거장 밖에까지 나갔다가 얼마 안 되여 경성행 기차를 탄 나는 서울이 갓가왓다는 데에 조곰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경편보다는 몇 배나 빠른 그 기차도 내 마음만큼은 빠르지 못했다.
점심때도 지냈음으로 변도*를 사서 먹기도 했고 그냥 있어서는 지리함이 더할 것 같어 가지고 오든 소설책을 읽기도 햇다.
정신을 책에다 집중식힐 수도 없어서 승객이 있으면 아모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었으나 엇진 셈인지 내 앞의 의자는 텡 비여 있었다.
그리다가 대전역에 왔을 때에 엇든 젊은 부인 하나가 두어 살도 못 된 어린 애기를 안고 빈자리에 앉을 때 나는 동모나 만난 듯이 기뻣다.
머리는 단발을 하고 푸른 스에타에 푸른 스커−트를 입은 그 양장미인이 제일 갓가운데 있는 사람이였으나 일본 사람인지 조선 사람인지도 알 수 없어 무엇이라 말을 끄낼 수도 없는 것이 나를 어색하게 했다.
그러나 장난을 하려고 가만있지 않는 어린애에게 스에타 자락을 들고 젓 먹이며 하는 그의 말에 일본 여자라는 것만은 알었다.
스켓 선수의 모자 같은 것을 쓰고 힌 짜켓 우에 힌 에부론*을 입은 어린애는 젓도 오래 먹지 않고 어머니 무릅을 떠나 작난질만을 하려고 게같이 팔과 다리를 놀리였다.
누가 옆에 있다가 나더러 그 애가 내 마음 같다고 한대도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을 것이었다. 나는 수물다섯에 한 살이 없으나 조선에서 치면 애아버지 될 나이가 벌서 늦었다.
그러나 어머니 무릅에서 날뛰는 그 애와 얼마나 다름 있었든가?
그리면서도 나는 얼마 안 있으면 저런 애를 안어보겠지 하고 생각하며 내 아이에게 입힐 옷과 모자와 에프론을 생각해 보았다.
젓먹이 어린애에게는 아모래도 힌옷이 제일 좋을 것 같으며 될 수 있는 대로 조선 옷보다도 양복을 입히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애가 업드러질 듯이 두 손을 내 무릅에 놓고 내게 오려 할 때 나는 그 애를 뺏듯이 들어 안어보았다.
얼골이 싯멀건 사내였다. 고사리같이 부드러운 손으로 나의 얼골을 만지는 그 감촉에 나는 내 자식을 안어나 보는 듯했으며 내 안해도 그런 애를 났으면 하고 속으로 부러워했다.
사실 나는 무엇이든지 간에 병신만 아니고 똑똑하며 남에게 붓그럽지 않은 애만을 나주엇으면 하고 바랫으며 어뜬 때는 불구자나 낳지 않을가 하는 전율이 들기도 했든 까닭이었다. 나도 아버지 노릇을 해볼 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 나는 그런 불길한 생각도 아니 할 수 없었든 것이였다.
그 어린애 때문에 나는 그 어머니와도 이야기를 했다. 서울까지 간다는 말에 마음 놓고 말뿌리를 생각해 가며 이야기를 했다.
그를 볼 때 나는 다시 내 안해를 생각해 보았다. 애를 낳고도 처녀같이 깨끝하게 화장도 햇고 몸치장도 한 것을 볼 때 어린애를 낳기도 전에 제 몸 건사를 못해 하는 내 안해를 가치 있게 되면 늘 주의식혀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따라서 어린애 교육에 조금도 겨을니 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너무 많이 먹게 한다든가 너무 추하게 해준다든가 너무 버릇없게 하는 것이 전부 나와 나의 안해의 손에 달닌 것같이 규측 없는 교육을 금하게 하고 싶였다.
나하고 대해 있는 저편 의자에서 댓 살이나 나 보이는 조선 애가 보선발노 즌마루를 함부루 것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런 생각이 더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일본 어린애를 상대로 기차의 지리함을 없새려고 가만히 있는 그 애의 손목도 잡어보았고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 듯하면 안해가 차에서 먹으라고 사준 사과를 끄내여 깎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섯 시간 이상의 거리는 머리가 압흐도록 실증을 주었다.
밤으로 서울에 나려야 맛나볼 사람을 찾어갈 수도 없을 것이나 마음만은 끝까지 조급했기 때문이였다.
저녁도 못 먹은 내가 배도 안 곱핫을 리 없었으나 일곱 시 반에 경성역에 나리자 다라오는 전차를 뛰여가서 탓다.
하숙은 말할 것 없이 쓸쓸했다. 차라리 슬근슬근 걸어와서 피곤한 몸으로 잠이나 둘 수 있었으면 하고 잠 오지 않는 것을 후회했다.
전날 밤에 안해의 배를 만저보고 불긋불긋 뛰노는 배 속의 어린애를 내가 반가워 움직인다고 하든 말과 내일 모교 교장을 맞나 결정적 말을 들을 것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루었다.
다음 날 멫 시간 자지 못한 피곤한 몸을 이르키고도 업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유쾌한 기분을 가졌다.
아버지 노릇을 하고 남편 노릇을 할 수 있는 그 기쁨 ― 비로서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었다.
교장을 맛나는 대로 그 결과를 안해에게 보고하려고 엽서를 주머니에 넌 채 나는 내가 졸업한 학교로 갔다.
밤낮 취직 운동을 하러 단니기 때문에 하급반이든 재학생들에게까지 실직으로 있다는 것을 보히든 그런 불쾌를 없애고 내일부터는 멀니 간다 하는 자신에 나의 마음은 떳떳해젔다.
“아직 않 됏나…” 조롱하는 듯한 동모의 말에 “안직 않 됫네” 하고 대답하는 나의 마음은 부끄러움과 실망의 빛은 조곰도 가지지 않었다. 나는 드러가자 입구 옆에 있는 교장실 문을 자신 있게 녹크했다.
취직 때문에 마누라 해산도 못 보고 왔읍니다 하고 드러서자 할 말을 준비하면서 서로 웃을 것을 생각하며 드러오라는 말이 떠러지자 문을 열었다.
“미스터 김− 언제 올너왔읍니까?” 교장은 나를 보자 다정한 표정을 일부러 만드는 것같이 보혔다.
“어제 저녁에 왔읍니다” 하고 준비했든 말을 하고 나는 웃었다.
그러나 “참 안됫읍니다” 하고 빈정대며 웃는 말이라고 해석할 수 없고 교장의 말을 어떻게 드러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지 기다리지 않는지 나도 모르게 의아한 태도로 서 있을 때 교장은 동정하는 말노 목소리를 나추었다.
“오늘 아침에 원장이 올너왓는데 섭섭하게 되엿어요 ― 내 소개장을 받기는 했으나 그만두는 사람이 나오자마자 이사회(理事會)에서 다른 사람을 썻다나요. 더구나 전에 그 병원에 있다가 다른 데 가 있든 사람인데 경험두 있구 해서 곳 쓴 모양입디다. 일부러 올나오기까지 했는데 않됫읍니다.”
교장은 할 말을 다하고도 다 못한 것이 남어 있는 듯이 미안해하는 빛을 보였다.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요?” 하고 내 귀를 의심하듯 한마디 물어보고는 방 안이 휭휭 도라가는 것을 눈을 딱 감고 정신 수숩하기에 힘썻다.
눈을 감은 캄캄한 세상에서는 별들이 버들솜같이 오르락나리락했다.
아모런 감각을 잃은 듯하기도 하고 딴 세상에 온 것 같기도 했다.
교장이야 자기가 원장과 개인으로 갓가우니 얼마마 한 자신이 있어 나를 불럿을 것이다.
나는 교장이 원망스러웟다. 수백 리 밖에 있는 사람을 일부러 올나오게 해서는 이런 말을 해주어야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문과를 졸업하고 회게로 드러가겟다는 생각은 본내부터 그릇된 것이나 오십 원의 월급으로 한 획도 부족하지 않게 그리여놨든 게획도 말 한마디로 여지없이 깨지고 말 때 나의 낙망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더 길게 물어보고 싶은 말도 없었다. 교문을 나서는 내 꼴을 보고 재학생들은 유쾌하게 웃엇을 것도 나는 몰랐다.
앞으로 밥값은 누구에게 달나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나자 나는 울고 싶었다.
나는 십오륙 년 전에 도라간 아버지를 속으로 불럿다.
“어떻게 하렵니가?” 하고…
그러나 멫을 안 있어 나를 아버지로 세상에 나올 나의 자식 ― 그의 아버지인 나!
“아버지는 잘 죽었오. 아버지 구실도 못할 세상에서 ― ” 나는 나오고야 말 내 자식이 무서웟고 나를 아버지라고 세상이 만들어논 일홈을 부를 그 자식이 불상도 했다.
나는 안해에게 보내랴고 가지고 갓든 엽서도 조박조박 찌저 가을바람에 불어 단니는 나무잎 사이에 던지며 걸었다.
* 변도: 벤토(べんとう). 도시락.
* 에부론: 에푸론(エプロン). 어깨에 거는 서양식 앞치마나 턱받이를 의미하는 ‘에이프런(apron)’의 일본식 발음.
<아버지의 꿈>(1936년 <<사해공론>> 발표), <<박영준 단편집>>, 유성호 해설, 8~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