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그리운 날
고로쇠나무에 등을 기댔더니, 어느 순간 서늘한 손길/ 아, 요 녀석이 내게 지금 기(氣)를 보내오는구나/ 고로쇠나무 잎으로 손부채를 만들어/ 고로쇠나무의 물을 한 모금 먹었더니, 뱃속이 서늘해진다/ 요 녀석이 지금 내 뱃속을 제 세상으로 만드는구나/ 머잖아 내 눈, 내 입, 내 귀에서도/ 푸른 눈이 트고, 고로쇠나무의 어린잎이 하나둘 돋아나겠구나/ 이 봄엔 아예 나도 고로쇠나무가 되어/ 뿌리 아래 갇혀 있던 봄기운을/ 물관이 터질 듯 타고 오르는, 이 솟구치는 노래를/ 전해 주어야겠다/ 그리운 이가 등을 기대면,
≪박제천 육필시집 도깨비가 그리운 날≫, 18~21쪽
박제천은
“내 몸의 팔할인 물을 느낀다”고 했다.
고로쇠나무 물 한 모금에도
봄기운이,
봄노래가 하나둘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