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철 밥과 글
고승철의 <<밥과 글>>
언론이 서로를 악으로 몰아갈 때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죽이기 위해서 한국 언론이 선택한 전략은 프레이밍이다. 움직일 수 없는 틀 속에서 생명은 기계가 되고 양심은 기능이 된다. 넓은 틈새로 사이비 언론이 자란다. 매일 밤 쑤욱 쑥.
기자가 찾는 현장엔 피가 튀고 정념이 분출한다. 탐욕과 기망이 판을 친다. 악마가 천사의 탈을 쓰고 춤을 춘다.
“역사 앞에서 ‘상처뿐인 영광’의 얼굴”, <<고승철 밥과 글>>, 147쪽.
저널리스트란 무엇인가?
복서다.
권투선수와 기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복서는 경기를 치르고 나면 얼굴에 피투성이 상처가 남는다.
취재를 끝내고 나면 기자에겐 무엇이 남는가?
탐욕과 기만이 판을 치는 취재현장에 다녀오면 몸에 분진이 남는다.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였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듬해 미국을 선두로 한 다국적 군대와 이라크 사이의 걸프 전쟁이 벌어졌다.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황량한 중동 사막을 헤매며 처절한 전쟁 상황을 목도했다.
암흑기는 언제였나?
1997년 말 외환위기 때였다.
파산했는가?
경제기자로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기자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다.
당신에겐 무엇이 남았나?
넓어진 글쓰기 지평과 바깥세상을 보는 눈, 역사를 움직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의 만남이다.
한국 저널리즘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혼돈이다.
무엇이 혼돈을 만들었나?
사이비 언론이다. 그들이 판을 친다.
사이비 언론이 판을 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수용자는 옥석을 가릴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사이비 언론을 만들었나?
진영논리다. 언론이 진보, 보수로 나뉘어 상대방을 악으로 매도한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페어플레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누가 페어플레이어인가?
비판할 때 근거를 제시하는 기자다. 비판과 비난을 나눌 줄 아는 기자다.
지금 우리 언론에 정의가 있는가?
정의와 불의 대신 이익과 손해로 나뉘는 사안이 많아진다.
이익이 정의를 대신할 수 있는가?
언론이 어느 쪽에 서야 옳은지 모호할 때가 많다. 한쪽 이익은 다른 쪽 손해가 된다.
경제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한 룰에 의해 경제행위가 이뤄지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이 중요하다.
공정한 룰의 공정성 기준이 무엇인가?
분배에서 생산 기여분만큼 받되 극빈층, 소외계층에 대해 사회정책적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당신 같은 경제전문 기자는 무엇이 중요한가?
정확한 경제지식과 폭넓은 이해력이다. 엉터리 지식으로 엉터리 기사를 쓰는 기자가 수두룩하다.
수두룩한 엉터리에서 당신의 이름을 뺄 수 있는가?
전문 서적을 섭렵했고 전문가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시장, 기업, 금융기관 같은 현장에 가서 실무자의 육성을 들었다.
요즘 한국 기자들의 표정은 어떤가?
최근 여러 기자회견에서 젊은 기자들이 서로 질문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회견 주최 측에서 질문 기자를 지명해야 마지못해 질문한다. 기자의 질문은 독자, 시청자에 대한 신성한 의무다. 언론이 감시해야 하는 대상자에 더욱 용기 있게 접근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고승철이다. 나남출판 주필 겸 사장이다.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동아일보 경제부장과 출판국장이었다.
소설가가 되었나?
언론계 은퇴 후 소설가로 활동한다. 장편소설 <<개마고원>>, <<은빛까마귀>>, <<서재필 광야에 서다>>를 썼다.
기자가 싫었나?
은퇴했으므로 이제는 사실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 싶었다. 흔히 문학은 ‘가공의 진실’이라 하지 않는가. 언론인 출신 작가가 한국에서는 매우 드물다. 기자 경험을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가가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2014년에 어떤 기사를 보고 싶은가?
남북한 평화 정착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