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 단편집 초판본
독립 만세 5. 백신애의 <광인수기狂人手記>
누가 미친 걸까?
백신애는 소설 주인공으로 광인을 내세운다. 당대의 속살을 드러내는 데 광기의 언어가 어울렸기 때문이다. 1930년대, 어둠이 짙어지며 전향 지식인들이 속출하던 시기였다. 주인공의 남편도 한때는 “마음이 바르고 굿세고 어디까지 정의를 사랑하던” ‘주의자’였다. 그러던 남편이 지금은? 그랬다. 미친 시절이었다.
“아이구 주의자를 버린 줄 알엇더니 아직 그대로 하는구나.”
나는 입속으로 부르짓고
“맙소 맙소. 하누님−”
하고 한숨을 쉬엿지요. 그래서 집으로 힘업시 돌아와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들어누워 혼자 곰곰히 생각하며 그이가 돌아오기만 기달렷습니다.
밤이 새로 두 시나 되니까 그제야 돌아오는구려. 내가 자는 척하고 눈을 감으니 그는 살그먼이 옷을 벗고 자기 자리에 가서 소리끼 업시 드러누어 그만 잠이 들어버리드군요. 나는 잠이 오지 안아 그이가 순사에게 또 잡혀갈가 봐 정말 가슴이 졸려서 그 밤을 꼬박이 새웟습니다.
그 이튼날 새벽에 이러나서 아이들을 깨워 아침밥 때까지 공부를 하라고 한 후 나는 부억으로 나갓다 드러오니 그이는 한잠이 들어 자는구려.
참아 이르키기가 안 되여서 그대로 나가 아이들 밥을 거두어 먹인 후 모다 학교로 보낸 후 나는 다시 그이를 깨웟지요.
“아이 곤해, 귀치안케 왜 이 모양이야!”
하고 성을 벌컥 내는구려.
그래도 나는 념려가 되어
“밤늦게 제발 좀 단이지 말으서요, 몸에 해롭지 안어요.”
하며 그에게 주의를 바려 달나고 애걸하려고 시작했읍니다.
“밤늦게? 누가 말이야? 간밤에도 내가 일즉 들어왓는대 그래 날 보구 아이들 공부 가르키라고 하면서 저는 초저녁부터 잠이나 자는 거야? 무식한 게집이란 아무 소용도 업서. 자식 교육을 할 줄 아나… 밥이나 처먹고 서방에만 밝어서… 에이 야만이야. 천생 금수나 다름업지 뭔가.”
어허이고 하느님 그이가 하는 구 말이 이럿습니다.
그이가 새로 두 시에 들어온 것을 뻔이 아는 내가 안인가요.
그래 나는 하도 어이가 업서 그대로 또 참엇지요.
또 그날 밤이 되니까 그이는 어제 저녁과 꼭 가티 아이들이 아버지 아버지 하고 배우려고 애를 쓰는대 다− 뿌리치고 나가바립니다. 나는 그이의 그리한 태도가 원망스러운 것은 둘째가 되고 그이가 이러다가 잡혀갈가 바 겁이 나서 그날 밤도 또 딸어나섯지요.
“내가 그 집 대문 아페서 기달리고 잇스면서 행여나 순사가 번적거리면 얼는 그이에게 알려주어야지.”
하는 염려로 딸어갓지요.
과연 이날 밤도 어제 그 집으로 죽 들어갑니다. 나는 길게 한숨짓고 그 집 대문 아페서 파수를 보고 섯지요. 그래 이윽히 섯다가 어둠 속에서만도 자세히 살펴보니까 대문이란 것은 것달닌 것이고 담이 죄다 문허지고 말엇슴으로 그 집 안이 훤이 드려다보이겟지요.
그래 나는 일변 깃부고 일변 겁이 나면서도 나도 모르게 뜰로 살그머니 드러갓지요. 대체 그이의 동지(同志)가 몃 사람씩이나 모히는가− 하여서 툇마루 아페를 살펴 보앗드니 하얀 녀인네의 고무신 한 켜레와 그이의 구두가 가즈런이 버서저 잇지 안습니까. 나는 새삼스러히 가삼이 덜컥하여 살살 집 모퉁이로 돌어갓드니 좁다란 뒤뜰이 잇고 뒤창으로 불이 비치엇는대 아마도 그 창 안에는 그이가 잇슬 것이 분명하므로 아주 쥐색기처럼 기어가서 그 창 여페 납짝 부터 섯습니다.
방 안은 잠잠합니다.
그러나 내 가삼은 생철통을 두들기는 것가티 요란합니다.
“여보− 이번에 당신 아들이 중학교에 수업한다지요?”
하는 고흔 여인의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나는 그 요란하든 심장이 갑작이 깜박 까들어지는 것 가트군요. 하하하… 하하하, 아이그 우숩다 우수워…
배가 곱은데− 아이 치워. 비는 경치게 온다. 에−라. 고기나 좀 잡어먹을가…
어대 보자. 올지. 이럿케 옷을 동동 거더 올니고 나서 고기나 잡어먹자…
아이그 한 마리도 잡히지 안내. 어이쿠 요놈의 고기… 안 잡히는나 내 이놈 내 이놈 아이구구 하구 하하…
고기는 잡히지 안내! 에−라. 이놈의 냇물을 죄다 삼키자, 그러면 고기도 죄다 따러 들어올 거지−
꿀떡꿀떡… (냇물에 입을 대이고 마십니다)
어이구 배불러라, 내 배 속에도 냇물이 하나 흐르고 잇슬 게다. 고기도 만히 놀고 잇겟지… 어− 배불러라.
이제는 그만 누어 잘가… 비는 들치지마는 이 다리 아래서 자는 수박게…
앗참 하늘님 이야기하든 것 이저바렷군. 에− 귀찬어. 그만둘가. 그만두면 멋하나. 그만 해버리지.
그래− 그래서 말야. 그놈에 게집년의 목소리 경치게 입부드군요. 나는 와락 그 녀인의 얼골을 보고 십헛스나 꾹 참엇지요. 그랫드니 이제는 바로 그이의 음성이
“에− 듯기 실소. 그까짓 돼지 가튼 녀편네의 속에서 나온 자식 색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잇단 말이요. 사랑하는 당신과 내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이라야 참으로 내 사랑하는 자식이 되겟지.
여보− 어서 아들 하나 나어주어… 우리의 사랑의 결정인 아주 령리한 아이를 나어요.”
합니다. 나는 눈이 확 뒤집혀지는 것 갓드군요.
“하하. 괭연히 그리시지, 당신의 그 부인도 참 옙부든대…”
“안이 그 여편네 말은 내지도 말어요, 내가 열여덜 살 때 부모의 명령에 못 익여 억지로 강제 결혼을 한 것이니까, 나는 그를 한번도 안해로 생각해 본 적이 업서요.”
“아이그 거짓말, 안해로 생각지 안헛스면 왜 자식은 그러케 셋이나 나엇든가요.”
“허− 그러기에 말이지, 아마도 내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내 자식이라고 해도 손 한번 쥐여준 적이 업섯서요.”
“호호호 가짓말…”
“흥… 거즛말이라고 녁이거든 맘대로 하구려, 오늘까지 그 여편네와 말 한마대 해본 적이 업다오, 그런대도 자식이 셋이나 잇다는 건 정말 조물주의 작란이라고 하지 안흘 수 업서요.”
하늘님! 그이가 이따위 소리를 하고 잇구려… 우리 색씨 입부다고 물고 빨고 하든 것은 다− 어떠커고 저런 거즛말이 어대 잇소.
“여보 나는 정말로 불행합니다. 나는 여보를 위하야 참어왓고 또 그 녀편네가 가엽기도 하야 나 자신이 삶을 희생해 온 거람니다. 그러치마는 나는 아직 젊습니다. 아무리 억제해 와도 억제하지 못할 때가 잇섯서요. 나는 가정적으로 너머나 불행한 까닭에 성자(聖者)가 안인 이상 엇지 불만을 느끼지 안을 수 잇나요. 너머나 모다들 무지하니까 나는 지적(知的)으로 너머나 목말럿드랍니다. 안해란 것이 나를 이해치 못하고 다−만 나에게 맛잇는 음식이나 먹여주고 옷이나 빨어주고 밤이 되면 야수 가튼 본능만 아는 그런 녀편내와 이십 년이란 세월을 살어왓구려, 아−무 감격도 신선함도 이해도 업는 그런 부부생활이엿서요. 당신까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십니가? 그 녀편네는 나에게 무지(無知)하기를 원하고 생활이 평안하도록 일하는 남편이 되기 원하며 자식에게는 정신적으로 충실한 종이 되기 원할 따름이여요.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어느 결에 나를 위한 삶의 시간을 가지란 말인가요.”
흙흙…
나는 울엇습니다, 울엇서요, 그이의 하는 말이 용하게 꾸며내는 혀빠닥의 작란인 줄은 알지마는 그 순간 나라는 존재는 그이의게 그만치 불행한 존재임을 늣길 때 뭇척 슬펏습니다.
하늘님 당신 바로 판단하구려. 그이의 말이 올습니까? 응? 대답해 봐…
암! 암! 그러치.
그 말이 죄−다 틀린 말이지. 틀렷고말고,
아예 당초에 인간이란 게 공부를 잘못하면 제 행동이 올든 그르든 간, 아니 아무리 틀린 일이라도 교묘하게 이론만 갓다 부처서 그저 합리화(合理化)하려고만 하는 재주만 느러갈 뿐인 것이라요.
* 소리끼: 소리 기색.
* 이저바렷군: 잊어버렸군.
<광인수기狂人手記>(1930년대 작), <<백신애 단편집>>, 김문주 해설, 102~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