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세 이야기
우화한 세계 3. 안도 쇼에키의 ≪법세 이야기法世物語≫
벌레만도 못한
두꺼비가 붓다와 노장을 꾸짖고, 작은 개미가 공자와 맹자를 비웃는다.
일본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자립적인 사상가인 안도 쇼예키.
그의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은 새, 짐승, 벌레, 물고기만도 못하다.
그래서 부끄럽고 슬프다.
두꺼비가 회의장 북쪽에 있다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한다.
“저는 산중의 강한 습기에서 생겨났는데 몸이 큽니다. 눈도 크게 튀어나왔고 손에는 어깨, 무릎, 손목, 다섯 손가락의 구별이 있으며 발에는 허리, 정강이, 발목, 다섯 발가락의 구별이 있습니다. 또 배, 등의 구별도 있어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습으로 서서 걸으면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하늘에 빌어서 반드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벌레님들이 계신 앞에서 서서 걸어 보이겠습니다.”
두꺼비가 그렇게 말하고 서 보니, 하늘에는 허공만 보이고 사물의 차이를 변별하는 지적 인식 활동은 할 수 없었다. 또한 자기 앞도 볼 수 없어 매우 곤혹스러워 더할 나위 없이 부자연스러웠다. 두꺼비는 크게 후회하면서 울부짖으며 말했다.
“하늘이여, 부디 용서하시고 원래의 횡보로 돌려보내 주세요.”
두꺼비가 탄원하니 비로소 원래의 횡보로 돌아왔다. 이것을 본 벌레들은 일제히 ‘와’ 하고 웃었다. 두꺼비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이같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저만이 아닙니다. 법세의 인간 중에서도 열한 명의 성인이나 많은 현인들, 붓다 및 불교 여러 종파의 개조와 승려들, 노자, 장자나 쇼토쿠태자, 각 시대의 시문 제작에 진력한 학자들, 이들이 모두 각각 자신의 견식을 고상한 것으로 내보이려고 연구하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횡기에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횡으로 치우친 심정과 지식을 고상하고 광대하다고 생각하거나 단지 횡으로 퍼지는 미망의 마음을 대단히 심원한 것이라고 굳게 믿어 버립니다. 또 그것이 하늘을 넘을 정도로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해 오로지 고원한 것만을 추구해서 가까운 자기 얼굴에 있는 8문, 호성에 근거한 정묘한 도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바로 앞도 보지 못하는 미망의 방식으로 대단히 부자유스러운 상태에서 헤매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저와 같은 처지입니다. 따라서 저는 벌레 세계의 성인·붓다·노자·장자이고 그 외 일체의 학자는 두꺼비입니다.”
두꺼비는 사람을 모방하려고 한 잘못을 뉘우치고 하늘에 아뢰어 용서를 빌고 원래의 두꺼비로 돌아갔다. 그러나 법세의 성인이나 붓다, 일체의 학자들은 치우쳐 헤매며 두꺼비를 모방하고 있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반성하는 일도 없이 언제까지나 이를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두꺼비와 같은 처지의 세계로 떨어져서는 두 번 다시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문인·학자는 두꺼비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슬픈 일이다.
작은 개미가 회의장 뒤쪽에 있다가 천천히 기어 나와서 말한다.
“저는 큰 개미의 남은 기가 세분화된 것에서 생겨 큰 개미의 방식을 쫓아서 먹이를 구하러 갈 때 동료를 만나면 허리를 구부려 예를 표하고 동료에게 양보합니다. 먹이가 있는 곳에서는 잠시 멈추고 먹이가 없어지면 또 다음으로 나아갑니다. 이처럼 일생 동안 대개 큰 개미의 뒤를 쫓아갑니다.
법세의 인간 중에서도 공자와 같은 선학의 삶에 추종해서 여러 지방을 유랑하고 이쪽에서는 ‘인의’를 매물로 하고 저쪽에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매물로 하는 자가 있습니다. 경작도 하지 않고 탐식하며 천진의 직경에 따른 성과를 빼앗고, 키워 주는 것이 있으면 그곳에 잠시 멈추지만, 누구도 봉록을 주지 않으면 또 다른 지방으로 가며 유랑하다 일생을 끝낸 맹자 같은 자가 있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처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벌레 세계의 맹가(孟軻)이고 법세의 맹가는 작은 개미입니다.”
* 본래는 천지 사이에 넘치고 있는 극히 크고 강한 정기를 의미하나, 이에서 변해 사물로부터 해방된 구애됨이 없는 자유로운 심정을 의미한다(≪맹자≫, <공손추(公孫丑)>).
<<법세 이야기法世物語>>, 안도 쇼에키 지음, 박문현·강용자 편역, 99-1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