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동산
강명수가 옮긴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의 ≪벚나무 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이 삶은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자기 몫의 사랑과 미움, 기대와 실망. 어쩔 수 없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고 암흑에서 서광을 찾는다. 낙관, 인간 그리고 진실은 삶을 태워 빛을 만든다.
무대는 텅 비어 있다. 문을 모두 잠그는 소리가 들리고, 마차들이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해진다. 정적 속에서 쓸쓸하고 처량하게 나무 찍는 둔한 도끼질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오른쪽 문에서 피르스가 나타난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양복에 흰 조끼를 받쳐 입고 슬리퍼를 신었다. 그는 병이 들었다.
피르스: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만져 본다.) 잠겼군. 모두들 떠났어…. (소파에 앉는다.) 나를 잊어버렸군…. 괜찮아…. 여기 좀 앉아야겠어…. 아마 레오니트 안드레이치는 털외투를 입지 않고 그저 외투만 입고 떠났을 거야…. (걱정스러운 듯이 한숨을 쉰다.) 내가 보살펴 주질 않았으니…. 젊은 사람들이란 어쩔 수 없다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린다.) 인생이 다 지나가 버렸어, 많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눕는다.) 난 좀 누워 있어야지…. 기운이 하나도 없구나,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 에이, 모자란 놈 같으니!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줄 끊어지는 소리가 하늘에서 울리는 것처럼 아득히 먼 곳에서 구슬피 울리고 나서 잦아든다. 정적이 찾아오고, 동산 먼 곳에서 도끼질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벚나무 동산≫, 안톤 체호프 지음, 강명수 옮김, 138∼139쪽
텅 빈 무대에서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다. 늙은 하인 피르스가 저택에서 벚나무에 도끼질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가예프 가문 소유였던 저택과 벚나무 동산은 팔렸다. 사람들은 각자 제 길을 떠났다. 문이 모두 잠겨서 그는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누가 샀는가?
농노였던 로파힌이다. 농노제 폐지 이후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 벚나무 동산에 별장을 짓고 관광객을 받아 돈을 벌 계획이다.
가예프 사람들은 왜 벚나무 동산을 지키지 못했나?
농노제 폐지로 지주였던 귀족들은 수입을 잃었다. 하지만 씀씀이는 줄지 않았다. 땅과 저택을 물려받은 여지주 안드레예브나와 집안사람들이 돈벌이에 무관심한 채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사이 빚이 불어났다. 담보로 잡힌 저택과 벚나무 동산이 경매로 넘어간다.
농노는 지주가 되는가?
과거 가예프가의 농노였던 로파힌은 “농노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엌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영지”를 사고서 한껏 부푼다.
가예프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안드레예브나는 원래 있던 파리로 돌아가고, 오빠 가예프는 은행원으로 취직한다. 딸 아냐는 가정교사와 함께 도시에서 공부하기로 하고, 양녀 바랴는 유모 일을 하기로 한다.
비극인가 희극인가?
작가는 ‘희극’으로 썼고, 연출가는 ‘비극’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다. 작가의 희극적 취향이 희비극적 현실과 충돌하면서 모든 극적 상황이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왜 명작인가?
체호프가 쓴 마지막 희곡이다. 그의 예술 세계를 최종 결산한 작품이다.
체호프의 무엇을 만날 수 있는가?
이 작품에서 그의 문학은 사상적, 미학적 특성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그의 사상적, 미학적 특성은 무엇인가?
19세기 말 리얼리즘과 20세기 초 모더니즘이라는 두 문화 패러다임의 접점에서 그의 사상과 미학이 탄생한다. 문학의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엇이 체호프 문학인가?
절망 가운데 희망을 보고 암흑 가운데 서광을 찾는 낙관, 인간미와 진실성이다.
19세기의 체호프는 21세기에 무엇으로 읽히는가?
삶과 인간, 현실과 문학에 대한 이해의 보편성이다. 그의 4대 희곡은 독자가 놓인 삶의 구체적이고도 보편적인 상황에 맞춰 매번 새롭게 해석된다.
4대 희곡은 무엇을 말하나?
이 작품과 함께 <바냐 외삼촌>, <세 자매>, <갈매기>다.
<초원>은 어떤까?
후기 작품 세계를 연 중편소설이다. 1888년 순수 문예지 ≪북방통보≫에 발표되었다. 잡지사에서 요구하는 ‘짧은 시간에 써 내려간’ 단편소설 생산이 이 작품에서 끝난다. 본격적인 순수문학으로 진입한 첫 작품이다.
그의 후기는 무엇의 문학이었나?
‘이 삶은 장차 어떤 삶이 될 것인가?’로 압축할 수 있다. <초원> 끝 구절이다.
<벚나무 동산>에서도 비슷한 느낌 아닌가?
이 화두는 1903년에 탈고한 마지막 작품 <벚나무 동산>에서도 재현되고 변주된다.
그래서 장차 어떤 삶이 되는가?
괴로워도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유쾌하게 자기 삶의 몫을 다하라고 말한다.
톨스토이와 함께 한 일은 무엇인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경력을 살려 무료로 농민들을 진료하고 톨스토이와 함께 기근과 콜레라 퇴치 자선 사업을 펼쳤다. 학교와 병원 건립에도 힘썼다.
생애 마지막은 어땠나?
1904년 1월 17일 생일에 <벚나무 동산>을 초연한다. 창작 활동 25주년을 맞아 축하연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에 건강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 1904년 6월 아내 올가와 독일 바덴바일러로 요양을 떠나 거기서 생을 마쳤다.
당신은 누구인가?
강명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체호프 중편소설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포항대학교 관광호텔항공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