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다나카
김충남이 옮긴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의 ≪병사 다나카(Der Soldat Tanaka)≫
천황은 왜 빌지 않는가?
왕은 신민의 주인이다. 백성은 그의 종이다. 그는 국민의 땀과 눈물로 살고 피로써 통치한다. 주인은 종을 만들고 종은 주인을 만든다. 여전히 그렇다. 아직도 빌지 않는다.
재판장: 자네는 천황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다나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거리낌 없이 재판장을 바라본다.)
재판장: 그렇게 하지 않겠나?
다나카: (분명하게) 천황이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병사 다나카≫, 게오르크 카이저 지음, 김충남 옮김, 125쪽
다나카의 주장 이후 법정은 어떻게 되었는가?
작품은 “온 법정이 얼어붙은 듯하다”고 썼다.
얼어붙은 법정에서 이어지는 다나카의 주장은 무엇인가?
그는 말한다.
천황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가 울려 퍼집니다. 연대들은 명령에 따라 부동자세를 취하지요. 악대가 선율을 가다듬는가 싶더니 우렁찬 음향이 연병장 위로 퍼져 나갑니다. 그러나 갑자기 음악 소리가 멎습니다. 천황이 손을 들어 올린 거지요. 천황은 손을 들어 올려 음악을 멈추게 할 정도로 대단한 분입니다. 연병장에는 얼어붙은 것처럼 무거운 정적이 감돌지요. 모든 생명체가 영원히 꺼져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오직 천황의 음성만이 그 정적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정적을 깨는 천황의 말은 무엇인가?
다나카는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말한다.
이 연대들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제 알겠느냐? 그리고 이 나라 방방곡곡에 있는 또 다른 연대들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 이제 너는 알겠지. 그건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다. 이자를 갚기 위해 누이들이 몸을 팔아야 할 정도로 극심한 궁핍을 겪고 있는 너희에게서 나온 돈이다. 그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난 이 말안장에서 뛰어내려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네가 서 있는 그곳 흙에 입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네 용서가 아직 남아 있다. 지금껏 너에 앞서 누구도 나를 고발한 적이 없었다. 넌 일찍이 없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인간이다. 난 그저 일개 천황일 뿐. 난 이 나라에 더 이상 군대가 주둔하지 못하도록 명령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군대 덕분에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난 너와 그런 누이를 둔 모든 오빠들이 더 이상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천황은 사죄하는가?
그는 말한다.
이제 만족했느냐. 내가 충분히 사죄했는가? 다나카, 너에게 용서를 빈다. 네가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난 더 이상 천황일 수 없다.
천황이 더 이상 천황일 수 없다고 한다면 사죄한 것인가?
다나카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 강한 어조로) 천황이 열병식장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빈다면, 전 천황의 죄를 용서하겠습니다.
법정의 판단은 무엇인가?
재판장은 다나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넨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다. 곧 판결이 집행된다!
다나카는 왜 법정에 섰는가?
누이와 상관을 총검으로 살해했기 때문이다. 법정은 누이 살해는 무죄로, 상관 살해는 유죄로 판결한다. 상관 살해는 군인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를 속죄하는 길은 죽음뿐이다. 하지만 법정은 다나카에게 천황의 사면을 구하라고 권고한다.
상관 살해범에게 사면 요청을 권고한 이유는?
근면하고 선량하며, 순수하고 정직한 병사는 군대에 꼭 필요한 자원이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 다나카는 그런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이 때문에 군법회의는 천황의 사면이라는 조건을 내걸어 그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범 병사 다나카는 왜 누이와 상관을 살해했나?
사건이 있었던 날, 부대 간 사격 시합에서 소속 부대를 승리로 이끈 다나카는 포상 휴가를 얻어 동료들과 근처 유곽을 찾았다. 거기서 빚 때문에 팔려온 누이 요시코를 본 것이다.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듣는 사이 부대 하사관이 유곽에 찾아온다. 요시코가 그를 접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다나카는 누이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이어 하사관을 살해했다. 다나카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요시코는 어쩌다 유곽에 팔려 왔나?
지독한 가뭄이 거듭되자 농사를 짓고 살던 다나카 집에는 더 이상 먹을 쌀도, 팔 쌀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빚 독촉은 계속되었다. 무릎 꿇고 자비를 구하는 부모에게 빚쟁이가 말했다. “세금이 다 합쳐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무엇보다 “그 많은 군인들한테 드는 돈”이 상당하다고. 결국 부모는 빚쟁이에게 딸을 팔아넘긴다.
병사 다나카는 이 모든 사실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누이를 판 대가로 마련한 기름진 음식과 술, 담배를 대접받았다. 부모가 그녀를 팔아 빚을 탕감하고 남은 돈으로 휴가 나온 다나카를 위해 잔치를 연 것이다. 신문기사에서 지독한 가뭄과 흉년 소식을 접했던 다나카는 예상치 못한 풍족한 접대에 의아했지만 부모가 둘러대는 말에 곧 의심을 풀었다. 그러나 유곽에서 동생을 만남으로써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의 책임인가?
다나카는 법정에서 천황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엄청난 요구를 한다. “천황이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 발언이 바로 드라마의 핵심이다. 다나카는 동포들이 겪는 모든 불행이 천황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천황을 고발한다.
이 극이 겨냥하는 표적은 무엇인가?
전쟁의 사회적 배경에 주목해 궁극적으로는 침략 전쟁으로 귀착하는 군국주의를 맹렬히 고발하는 사회극이다. 카이저는 1920년대 일본 제국주의를 예로 들어 모든 독재 체제와 민중 착취에 항의한다.
독일을 직접 다루지 않고 일본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 나치즘과 파시즘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독일 동맹국이자 전제군주국가였던 일본을 배경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일본의 사회적 상황을 특별히 염두에 두거나 특정 군대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1940년 취리히에서 초연했을 때 일본은 어떻게 반응하나?
일본 대사관 항의로 이후 공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중립국이라는 위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스위스 당국이 내린 조치였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나?
그는 아륵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자유가 없이는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때문에 나는 감옥 국가인 독일을 떠났다. 그러나 집단적 광기는 전 지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점점 더 증대되고 있다. 미친 자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끔찍하고 비참한 일이다. 현재가 끝장났다면 미래라도 건지련다. (…) 전쟁, 그건 삶과의 이별이다. 병사 다나카가 고발의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다. 무엇에 대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 제복을 입은 자의 비겁함에 대해, 군국주의로 추락하는 것에 대해. (…) 이제 병사 다나카가 온 세계를 향해 흔드는 횃불에 불을 붙여야 할 때다.”
카이저의 다나카는 뷔히너의 보이체크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보이체크와 다나카는 둘 다 군국주의 체제 아래 개인적인 행복과 인간성을 억압당하는 무력한 병사들이다. 그런데 상관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것들을 빼앗는다. <보이체크>에서는 고수장이, <병사 다나카>에서는 하사관이 각각 주인공의 정부와 여동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둘은 사랑하는 여자를 죽임으로써 그들에게 저항한다. 카이저는 이 드라마를 완성된 <보이체크>라고 표현했다. 뷔히너가 <보이체크>를 완성했더라면 두 작품은 상당히 유사했을 것이다.
카이저와 뷔히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행동하는 작가였다. 인간 개혁에 대한 정열적인 요구, 자유 억압에 대한 증오, 행복한 인류에 대한 동경, 나태한 양심에 대한 봉기, 피억압자들에 대한 연민 등 두 작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카이저는 뷔히너를 존경했으며 특히 <보이체크>를 높이 평가했다.
카이저에 대한 평가는 편차가 너무 크다. 어떤 이유인가?
이중적이다. 새로운 인간상을 주창하고 새로운 드라마 형식을 창조한 공로로 칭송받는가 하면 노련한 무대·드라마 제작 기술자로 폄하된다. 독일 연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도의 성장, 다작, 다양한 소재, 독특한 극 형식과 문체가 작가를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관된 주제는 무엇이었나?
새로운 인간과 그에 의한 인류, 세계의 개혁이다. 기독교 구원론이나 니체 사상과도 상통하는 주제다. 하지만 카이저가 그리는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제해야 하며, 특출한 개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독교적 메시아와도, 니체의 초인과도 다르다. 카이저에게 인간 개혁이란 초인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본래의 인간성을 깨워 일으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어떻게 살다 갔나?
25세에 희비극 첫 작품 <클라이스트 교장>을 발표하고 표현주의 시기에는 <칼레의 시민들>, <아침부터 자정까지>, <가스> 삼부작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명성을 쌓았다. 1933년 <은빛 호수>를 초연했으나 나치의 탄압으로 출판과 공연을 금지당하고 프러시아예술아카데미 회원 자격까지 박탈당한다. 가족과 헤어져 홀로 스위스로 망명한 뒤 스위스 각지를 전전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갔으나 1945년 67세 나이에 색전증으로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충남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