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닌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여행 15. 1900년의 러시아 평원 소지주의 집
추워서 더욱 따스해지는 겨울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안내자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은. 눈과 귀와 코가 살아있었고 수염과 솜털은 아무리 약한 바람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마음이 평온하여 정신이 투철하였으니 미세한 것에 크게 놀라고 거대한 것에 떨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겨울을 기다리는 가을로 간다. 밖은 춥지만 안은 그만큼 더 따스해지는 인간의 겨울이 그곳에 있다.
나는 다시 깊은 가을, 마을에 있는 자신을 본다. 가을날은 푸르고 또 음산하다. 아침에 말에 올라 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소총 한 자루와 뿔피리를 챙겨서 들로 향한다. 맞은편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총구 안으로 파고들어 윙윙 요란한 소리를 내고, 이따금 마른 눈발이 날린다. 하루 종일 텅 빈 평야를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 어둑어둑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에야 잔뜩 허기지고 꽁꽁 언 몸으로 저택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멀리 이주민 촌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저택 쪽에서 연기와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오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쁨이 차오른다. 우리 집은 해 질 녘을 좋아해서 불을 밝히지 않은 채 어둑어둑 깔리는 땅거미 속에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겨울을 대비해 창 틈새를 틀어막아 놓은 것이 보였고, 나는 고요하고 평온한 겨울에 대한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부풀었다. 남자 하인방에서 일꾼이 난로에 불을 지피면, 나는 어릴 때처럼, 싱그러운 겨울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차곡차곡 쌓인 짚더미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푸른빛으로 애달프게 저물어 가는 황혼이 비치는 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 한참을 있다가 하녀들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밝고 왁자지껄 활기가 넘쳤다. 하녀들은 양배추를 칼로 잘게 쳐냈고, 그럴 때마다 칼날이 번뜩였다. 나는 양배추를 칼질하는 규칙적이고 듣기 좋은 울림과 신명 나면서도 구슬픈 노랫가락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이웃에 사는 소지주가 찾아와 나를 자기 저택으로 초대했고, 나는 그곳에 며칠이고 머물곤 했다…. 이만하면 소지주의 생활도 훌륭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