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휴자 담론
성현(成俔)의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부자는 무엇이 만드는가?
의씨의 집에는 돈과 곡식과 고기와 술과 비단과 소와 돼지가 가득했다. 죽었을 때 아무도 찾지 않았다. 복씨의 집은 항상 비었다. 쌀아 있으면 쌀을 주고 돈이 있으면 돈을 주고 죽이 있으면 반 그릇을 나누었다. 죽었을 때 조문객의 수레가 길을 메웠다. 무엇이 부자를 만드는가?
제나라 의씨(猗氏)는 탐욕스럽고 부유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날 그의 집에는 조문하러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위(魏)나라 복씨(卜氏)는 가난하면서도 청렴했다. 그런데 죽은 날 그의 집에는 조문객의 수레가 골목길을 메웠다.
어떤 사람이 후(候) 선생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평소 부유한 자를 좋아하고 가난한 자를 천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죽었을 때와 살았을 때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후 선생이 말했다.
“부유한 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나눠 주고 베풀기 때문입니다. 나눠 주는 것을 끊임없이 한다면 보답하려는 자도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복씨는 본래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곡식이 있어도 쌓아 두기에 힘쓰지 않았고 재물이 있어도 숨겨 두기에 힘쓰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친척이나 동료들은 그의 은혜를 충분히 입었습니다. 마을의 궁핍한 사람들도 모두 그의 은택을 입었습니다. 비록 밥 한 사발과 죽 한 대접이 있더라도 함께 나눠 먹고자 해서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이 의로움으로 남에게 베푸니 사람들도 그에게 의로움으로 대했습니다. 그 자신이 예의로 사람을 대하니 사람들도 그에게 예의로 보답했던 것입니다.
의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만 섬의 곡식이 있어도 나누어 줄 줄 몰랐고, 만 관의 돈이 있어도 쓸 줄을 몰랐습니다. 고기가 썩어 벌레가 생겨 먹지 못하게 되고 술이 시어 거품이 일어나 마시지 못하게 될 정도였지만, 창고에 쌓아 둔 것이 부족하다고 근심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옷과 음식에조차 끊임없이 욕심을 부렸습니다. 이는 남의 재물을 지키는 것이지 제 재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귀는 자들은 모두 이익을 밝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롭다면 사귀고 이롭지 못하면 떠나갔습니다. 그의 삶은 영광도 아니었고, 그의 죽음은 치욕도 아니었습니다. 저 돼지 잡는 백정도 애석해하지 않았고, 까마귀 잡는 포수도 아까워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의씨가 온전한 몸을 지닌 채 죽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부휴자 담론≫, 성현 지음, 홍순석 옮김, 163∼164쪽
≪부휴자 담론≫ 우언(寓言)의 첫 번째 담론 <부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베풀기 때문이다>인가?
성현은 이 글에서 후 선생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의 이치를 설명한다. 물질 운영이 인간관계 운영과 다름없음을 밝힌다.
우리가 부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자를 좋아하는 것은 베풀기 때문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아랫사람에게 무언가 베풀기 때문이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의 권리를 고집한다면 결국 소외될 것이다.
부휴자(浮休子)가 누군가?
조선 초기 대표 문인 성현이다. 부휴자 외에 허백당, 용재, 국오라는 호도 사용했다.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음률에도 정통했다.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慵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등을 남겼다.
그의 저술을 전범(典範)이라 할 만한가?
≪풍소궤범(風騷軌範)≫에서는 문장의 전범(典範)을 보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는 음악의 전범을 보였다. ≪부휴자 담론≫은 정치 사회의 전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당대는 왜 정치 사회의 전범을 요구했는가?
성종조는 여전히 여말 선초의 혼란한 사회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세조 찬탈 이후 오히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분위기였고, 사상적으로는 유불 교체기의 혼란이 막바지에 달했다. 사림파의 세력 확대로 지배 관료층은 더욱 긴장한다. 관료였던 성현은 주자의 성리학을 통해 혼란한 사회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정도전·권근·하윤·서거정의 논리를 계승한 것이다.
사회 질서 회복의 중심을 임금으로 세운 논리는 무엇인가?
책 첫머리에서부터 임금은 하늘과 같아 더없이 높고, 더없이 존귀하며, 더없이 크다고 하면서 하늘의 명령인 천리(天理)에 순응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은 주어진 명분 질서에 따라 그 덕을 행사해야 하며, 천지만물로 하여금 각각 공능(功能)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인간 세계의 질서도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단 말인가?
성현은 인간의 선악 화복에 따르는 감응의 이치까지도 하늘이 주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하늘이 직접 인간에게 일일이 그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늘은 이(理)로써 인군(人君)에게 부가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천리를 따라 인군이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성리학의 인성론(人性論)을 내세워 봉건 질서에 합리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인가?
천리를 내세워 봉건적 사회관계를 절대시했다.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하늘이 주재하지만 개체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했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이 왕권 강화와 신분적 질서를 확고히 하기 위해 특히 강조한 논리다. 성현이 그의 여러 글에서 ‘질서관의 확립’을 운운한 논리도 같은 선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문학사에서 이 책의 가치는?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와 함께 조선시대 필기문학의 특징을 규명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다.
내용은 어떤 구조인가?
6권 1책으로 <아언(雅言)> 2권, <우언(寓言)> 2권, <보언(補言)> 2권이다. <아언>은 권1 18항목, 권2 22항목, <우언>은 권3 17항목, 권4 20항목, <보언>은 권5 16항목, 권6 16항목의 담론이다.
<아언>은 ‘바른말’인가?
그렇고 또는 ‘평소에 하는 말’이란 뜻이다. 여기에 실린 담론은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주다. 자신의 정치관을 성리학 논리를 펴면서 직설적으로 피력한다. ‘하늘[天]−임금[君]−신하[臣]-백성[民]’의 관계를 일관된 시각에서 기술한다.
무거운 주제인데 레토릭은 어떻게 구사되었나?
≪좌전(左傳)≫이나 ≪장자(莊子)≫ 등 중국 고전에 나오는 옛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활용한다. 또 경구나 속담 등을 삽입해 구어(口語)에 가깝게 서술해 전혀 심각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모든 이야기가 ‘부휴자왈(浮休子曰)’로 시작하나?
≪논어≫에서 공자가 평소에 하던 말을 기록할 때 ‘자왈(子曰)’이라는 어구를 서두에 사용한 것과 같다. 간혹 ‘유생문왈(柳生問曰)’, ‘동리선생문왈(東里先生問曰)’이라 해서 문답식으로 전개된 담론도 눈에 띈다.
<우언>은 ‘우의(寓意)를 지닌 말’인가?
≪장자≫ <우언>편에서 전례를 살필 수 있다. 장자는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직설적인 담론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적인 이야기를 꾸미고 이를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이 책의 <우언>에도 ‘부휴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허구로 설정된 다른 인물들의 상호 대화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저산생(樗散生)’, ‘공동자(空同子)’, ‘동고자(東皐子)’, ‘녹비옹[鹿皮翁]’, ‘동구선생(東丘先生)’, ‘강상노인(江上老人)’ 등이 실제 인물처럼 등장한다. 배경이 중국 전국 시대로 설정되어 있지만, 등장인물이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은 아니다.
사회와 정치 풍자가 숨은 목적인가?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가 함께 등장해 어리석은 자의 행동을 풍자하거나 비판한다. 군왕의 실정, 가렴주구를 일삼는 권신을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공훈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탐내는 자들을 공박하며, 권귀한 자들의 비윤리적인 삶을 질타한다.
<보언>은 무엇을 ‘보충한 말’인가?
중국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가필(加筆)해 당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폈다. 구체적으로, ≪좌전(左傳)≫, ≪사기(史記)≫, ≪열녀전(烈女傳)≫ 등에서 역사적 사건을 사례로 취하고,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 어떤 문제에 대한 담론을 펼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담론을 개진하는 특정 인물이나 담론 자체는 실제 역사서에서 살필 수 없는 가공의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된 우언집이라 부를 수 있나?
조선 시대 문인들의 문집 가운데 한두 편의 우언 작품이 수록된 사례는 있지만, 여러 우언 작품을 한데 모아 놓은 우언집(寓言集)은 없다. 이와 유사한 양식의 글은 성현 이후에야 눈에 띈다.
박지원(朴趾源)의 <호질(虎叱)>에 등장하는 북곽선생도 ≪부휴자 담론≫의 <우언>에서 가져간 것인가?
<호질>의 주인공 북곽선생(北郭先生), 동리자(東里子)는 이미 ≪부휴자 담론≫에 등장한 허구 인물이다. 장유(張維)는 <우언>이란 작품에서 초(楚) 공자와 영인(郢人), 동곽선생(東郭先生) 등 허구 인물을 등장시켜 ‘무위(無爲)’가 ‘인위(人爲)’보다 우수하다는 담론을 개진했다. 구한말 이건창이 지은 <녹언(鹿言)>이나 장지연의 <아환선생 문답(亞寰先生問答)>도 유사한 형식이다. 이와 같이 성현의 ≪부휴자 담론≫은 조선 시대 우언문학의 전통을 제시했다.
조선의 봉건 이념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나?
봉건 이념의 기본은 ‘질서’에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조화(調和)’를 이룰 때 이상(理想)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본분을 다해야 하며, 음악에 장단 고저 청탁의 차이가 있으나 어우러짐이 완벽할 때 훌륭한 음악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조화’를 추구한다. 한 국가의 구성원도 각기 다르지만 질서와 조화를 통해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 공자의 왕도 정치다. 오늘날은 민권의 시대지만 ‘질서’와 ‘조화’의 기본 이념은 절대 필요한 사회 요인이다.
옛글인데 쉽고 재미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글이 짧아서가 아니다. 시간 갭을 넘어서 보면 지금 우리의 실체가 바로 여기 있다. ≪부휴자 담론≫을 통해 현실 속의 ‘우리’와 ‘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에 소개된 옛사람들의 사례를 거울삼아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 속에 함께하는 ‘나’를 형성하길 바란다.
당신은 누군가?
홍순석이다. 강남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