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집
2452호 | 2015년 2월 16일 발행
고려의 천재 귀족 임춘
진성규가 옮긴 ≪서하집≫
고려의 천재 귀족 임춘
귀하게 태어나 천재의 이름을 얻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설 때 세상이 뒤집힌다.
목숨을 건져 세상을 떠돌았다.
해동에서 벼슬하지 않고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重到京師 다시 서울에 도착해
劉郞今是白頭翁 유랑 이제 백두옹 되었으니,
一十年來似夢中 지난 십 년이 꿈결 같아라.
惆悵玄都仙舘裏 애처롭다! 현도관은
兎葵燕麥動春風 토규연맥이 춘풍에 흔들릴 뿐.
≪서하집≫, 임춘 지음, 진성규 옮김, 354쪽
임춘이 누구인가?
고려 후기의 문인이다. 생몰은 불분명하나 의종·명종 연간 인물이다.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다. 이인로, 오세제 등과 함께 죽림고회(竹林高會)를 결성했다.
≪서하집(西河集)≫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
임춘 사후 이인로가 흩어진 작품을 모아 6권으로 편찬했다. 임춘의 재능을 알아본 최우가 간행을 지시했다. 그 후 몇 차례 개간되었다. 이 책은 1865년 간행된 후손 임덕곤의 목활자본을 대본으로 삼아 옮겼다.
구성은?
권1∼3까지는 고율시 174수가 실렸다. 권4에는 서간 18편, 권5에는 서(序) 6편·기(記) 6편·전(傳) 3편이, 권6에는 계(啓) 15편·제문 6편이 수록되었다.
당대의 평가는 어떠했는가?
최자는 ≪보한집≫에서 “세상 사람들은 그가 고인(古人)의 문체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모두 옛사람들의 말을 빼앗아 썼다. 심지어는 수십 자를 따다가 자기의 말로 삼았으니 이것은 그 문체를 얻은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빼앗은 것이다”라고 혹평했다.
편집자 이인로는?
“선생의 문장은 고문을 배웠고 시는 소아(騷雅)의 풍골이 있어서 해동에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뛰어난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그가 죽은 지 20년,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장차 굴(屈)·송(宋)의 반열에 두려 한다”고 극찬했다.
평의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당시 문단이 두 파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글자를 조탁하고 대구를 다듬어 사어(辭語)와 성률(聲律)을 중시한 이인로와 임춘 계열, 그리고 기골(氣骨)과 의격(意格)을 앞세운 이규보, 최자 계열이 맞섰다.
어느 쪽이 맞나?
임춘은 “문장은 기(氣)가 주(主)가 되니 심중에 감동해 말로 표현한 것이므로 아름다운 문구로써 자랑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문장의 묘미를 음미한 후에 묘(妙)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가 주가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주기사상(主氣思想)이다. 기교보다 ‘기질’이나 ‘개성’을 문장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최자의 말처럼 남의 글이나 빼앗아 옮겨 적었다면 당시 문단을 뒤흔들 수 없었을 것이다.
문단을 뒤흔들 수 있었던 이유는?
임춘의 현실 지향성이다. 가전체 소설의 효시로 알려진 그의 작품, <국순전(麴醇傳)>·<공방전(孔方傳)>에는 타락한 현실을 지적하는 강렬한 비판 의식이 나타난다.
위의 인용시도 어렵다. 이 시를 이야기로 풀면?
유랑이 낭주사마로 폄척되었다가 10년 만에 장안에 돌아왔다. 그동안 어느 도사(道士)가 현도관에 복숭아를 가득 심어 화려한 꽃이 마치 붉은 놀과 같았다. 이를 보고 <유현도관(游玄都觀)>이라는 시를 지었다. 이후 연주자사로 전직되었다. 14년 후 다시 현도관에 이르니 도화는 다 사라지고 토규연맥만 춘풍에 흔들린다. ≪당서≫ 권168, <유우석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랑이 누구인가?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이다. 왕숙문·유종원과 함께 정치 개혁을 기도했지만 좌천되었다.
현도관, 토규연맥은 뭔가?
현도관은 당나라 장안(長安)에 있던 도관(道觀) 이름이다. 토규와 연맥은 둘 다 풀이름이다. 가슴 아픈 황량한 정경을 말할 때 쓴다.
임춘은 토규연맥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조정에 가득한 하잘것없는 무인들이다. 유락 생활 10여 년 만에 다시 개경을 찾았더니 쓰레기 같은 군상만 개경 땅을 주름잡고 있었다.
그는 왜 이 고사를 끌어 썼나?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좌천된 유우석으로부터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지방을 떠도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임춘은 전고를 즐겨 썼나?
그의 작품은 고사를 모르고는 읽기 어려울 정도다. 시는 물론 산문에서도 고사로 대구(對句)를 구성해 만든 사륙문을 즐겨 썼다. 난삽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전고가 자주 등장한다.
바로 말 못하고 비껴 나간 이유가 뭔가?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 지친 심금을 달래고 집권자를 비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얼마나 파란만장했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로 명성을 얻을 무렵, 무신의 난이 일어났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목숨만 간신히 건져 지방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무신 정권 아래 출세는 막혔고 공음전도 빼앗겨 먹고살 길은 막막했다.
당신은 왜 이 작품을 번역했나?
임춘은 무신난으로 고난을 겪었다. 나는 한국전쟁으로 곤궁을 겪었다. 공통점에 관심이 생겼다. 현실의 고난을 문학으로 승화한 글을 통해 고려 시대 대표 지식인의 의식 세계를 엿보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진성규다.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