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나 동화선집
선안나가 짓고 이은주가 해설한 ≪선안나 동화선집≫
참을 수 없는 자아의 가벼움
그는 민감했다. 닭을 보면 닭이 부럽고 개를 보면 개가 부러웠다. 개처럼 짖어도 보고 닭처럼 홰도 쳐 봤지만 개도 되지 못하고 닭도 되지 못했다. 인간이 그렇게 싫었을까?
자신은 결코 알을 낳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소는 몹시 실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개는 알을 낳지 않고도 주인의 귀여움을 훨씬 더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 쑥스러운 일이지만 나도 한번 해 보는 거야.’
농부가 일을 나갔다 돌아오자, 소는 마당으로 껑충껑충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꼬리를 휘두르며 주인에게 마구 뛰어올랐습니다.
“이놈의 소가 왜 이래. 워−워.”
‘그게 아니에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좋아서 그런다구요. 움머−.’
“당장 저리 가지 못해!”
농부는 당황한 나머지, 옆에 있던 싸리비로 소를 때렸습니다. 소는 깜짝 놀라 외양간으로 도망쳤습니다.
‘주인님은 너무해. 이젠 때리기까지 하다니….’
소는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뒤 농부가 싱싱한 풀을 한 아름 안고 외양간으로 들어왔습니다.
농부는 소의 잔등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묵묵히 있으니 얼마나 너다운 모습이냐? 세상 만물에겐 그 자신만의 본성이 있는 게야. 가장 자기 자신답게 살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은 것이야.”
<나는 나>, ≪선안나 동화선집≫, 선안나 지음, 이은주 해설, 166~167쪽
이 소가 왜 이러는가?
자기다움으로써 충분한데 남들처럼 되려니 이상한 짓을 한다.
개를 보기 전까지 소의 삶은 어떤 것이었나?
행복했다. 주인은 어진 사람이어서 소를 무척 아꼈다.
소의 정체성이 흔들린 계기는 무엇인가?
주인이 사 온 암탉이다. 달걀을 낳아 주니 주인은 닭을 칭찬했다. 그때부터 샘이 나기 시작한다.
닭에 대한 소의 질투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암탉처럼 알을 낳으면 주인님이 좋아하실까? 이럴 게 아니라 나도 한번 해 봐야겠다. 나는 덩치가 크니까, 어쩌면 더 커다란 알을 낳을 수 있을지 몰라.’
소는 큰 알을 낳는 데 성공하는가?
힘을 썼으나 나온 것은 분뇨였다.
개는 무엇으로 주인의 마음을 얻는가?
아양을 떨고 낯선 이가 오면 짖는다.
소는 무엇을 몰랐는가?
‘낯선 이에게 짖는 것’이 개의 소임이라는 것을 모른다. 소는 개가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소가 자기 정체성을 잊은 이유는 뭔가?
자기 안의 자기를 보지 않고 자기 바깥의 자기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의 행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하나?
경거망동이다.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잊은 채 남의 눈에 비친 자기, 곧 명예와 명성에 눈이 먼 것이다.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이 실려 있는가?
새벗문학상 수상작인 <길 잃은 페르시아 왕>과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꽃샘 눈 오시는 날> 등 총 17편을 실었다. 주로 등단 초기에 쓴 작품들이다.
초기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
‘자기다움 찾기’로 함축할 수 있겠다. 당시 거대 서사에서 미시 서사로 전환되던 시대정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기 찾기’는 어디서 시작되나?
‘뿌리 내리기’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현실은 뿌리 내리기에 알맞은 토양이 아니다. <꽃샘 눈 오시는 날>에는 바닷가에서 육지로 옮겨 심겨진 동백이, <길 잃은 페르시아 왕>에는 ‘종일 햇볕 한 자락 들지 않는 구석방에서 일 나간 누나를 기다려야 하는’ 소년이 나온다.
뿌리 내림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심리 상태는 어떤 것인가?
<꽃담>에는 동네 궂은일을 맡는 머슴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소년이, <나는 내 친구>에는 키가 작아 열등감을 느끼는 아이가 나온다. 현실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환경과 자아의 도전을 극복하는 방법은 뭔가?
문제를 마주 보는 데서 출발한다.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면의 힘을 기른다.
내면의 힘을 측정하는 기준이 뭔가?
힘이 생기면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현실 조건이 열악해도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다.
희망과 의지의 동력은 뭔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당신의 작품에서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나를 넘어 타자로 넘치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꽃담>에서 머슴 사는 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받아들여 이사를 간다.
머슴이 이사를 하면 생계는 어찌 되나?
막연하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다. 무능한 아버지 입장에서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어떻게 자기를 넘어 남에게 가는가?
아버지는 이사를 준비하며 빈집에 혹시 누가 와서 살지 모른다며 담을 보수한다.
자아 확인과 넘치는 사랑을 반증하는 작품은 없는가?
<나는 나>에서 소는 자기를 잊는다. <바위와 사과나무>에서 나무는 힘들게 성장해 사과를 맺지만 시간이 흐르자 편하게 살고 싶어 더 이상 꽃도 열매도 맺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선안나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