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자 동화선집
동심은 동정이 아니다
어른처럼 아이들도 비극적 상황을 맞는다. 그것은 더욱더 비극적이다. 그래서 동정이 필요한 것일까? 손수자는 아니라고 답한다. 세계에 대한 주체의 역동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동심도 같다.
집에다가도 전화를 했는데 거기도 잘못 걸었다는 거야.
난 미칠 지경이었다네.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회복병원’으로 가자고 했지. 그런데 택시 기사까지 그런 병원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는 거였어. 개인 병원으로는 이 고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병원을 운전기사가 모른다니 난 아득해졌어.
<시간 여행>, ≪손수자 동화선집≫, 손수자 지음, 김종헌 해설, 60쪽
치매인가?
그건 아니다. 성공한 의사 문영호 원장은 우연히 어릴 적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한다. 과거의 현실에서 지금의 현실을 찾으려 하니 난감해진다.
과거로 가서 뭘 하는가?
어릴 적 고향 모습을 본다. 어린 문영호가 누렁이와 노는 모습도 본다. 일 때문에 잊었던 추억을 되찾는다. 문영호의 기억에는 추억이 결핍돼 있었다.
‘결핍’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동화를 쓰면서 높은 것보다 낮은 것, 큰 것보다 작은 것, 풍요로움보다는 결핍된 것에서 글감을 찾는다. 사람들이 함께 울고 기뻐하면서 마음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시간 여행>은 결핍을 극복하려는 ‘동심이라는 안경’ 덕에 탄생했다.
다른 작품에서는 결핍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꽝꽝나무와 막대사탕>이 있다. 이혼과 가정 파탄이 배경이다. 엄마 없는 아동, 보배의 핍진한 삶과 외로운 동심을 달래는 작품이다.
보배의 결핍은 무엇이 되는가?
보배는 “교실에서 오줌 싸고, 걸핏하면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구르”는 정화를 돌본다. 정화는 정신의 결핍은 있으나 엄마가 있다. 보배는 정화를 돌보면서 엄마의 결핍을 자각한다. 정화를 통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달래게 된다. 해설자 김종헌은 외로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달래는 과정이 긴장감 있는 스토리를 끌어냈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바다>도 정신 결핍 아동의 이야기 아닌가?
‘성우’는 어릴 때 큰 병을 앓았는데 지금도 가끔씩 자기 자신을 추스르지 못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 곧 서술자인 지희는 흑산도 할아버지 댁에서 살다가 그렇게 바라던 도시로 전학을 왔다. 전학 와서 처음 만난 아이가 성우다. 지희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성우를 미워한다.
더 미워하는 이유는 지희 속에 성우가 있기 때문인가?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장애 친구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린이의 모습이다.
편견의 반전 내러티브는 뭔가?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동시를 암송케 했다. 지희는 한번 해 보고 싶지만 틀릴까 봐 자신이 없어 눈치만 본다. 그런데 성우가 나선다. 동시 <걸어 다니는 바다>를 큰 소리로 외웠다.
지희에게 무엇이 일어나는가?
성우가 암송하는 동시를 따라서 “흙빛 산과 오밀조밀한 해안 그리고 짙푸른 바다”가 있는 그 흑산도를 그리워한다. 여기서 동심의 ‘자기 찾기’가 나타난다. 지희는 현실적으로 ‘도시 아이’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가 성우의 암송을 통해 성우에 대한 편견을 잊어 간다.
반전의 동력은 무엇인가?
지희는 주변 환경을 통해서 착한 주체가 되어 간다. 장애와 거리를 두는 인물의 구도이지만 주체의 자기 찾기를 통해서 동심으로 조화를 이룬다. 이런 변화는 세계에 대한 주체의 역동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김종헌은 ‘이것이 손수자 동화의 특징’이라고 했다.
독자가 인물의 주체 내면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독자가 주체의 내면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깃발>이 있다. 함묵아(緘黙兒) 영아가 주인공이다. 영아는 나부끼는 태극기와 바람이 나누는 얘기를 알아듣고 아름답게 느낀다. 이러한 인물의 심리 묘사는 독자가 등장인물과의 거리를 좁혀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인물에 대한 당신의 시선은 무엇인가?
해설자의 평을 빌리고 싶다. “비극적 상황에 처한 동심을 보살피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더욱 혹독하게 처리하여 세계와 직접 소통하는 동심을 바라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세계를 읽는 방식이다. 그 한가운데 동심이 있다.” 틀리지 않다.
누가 당신의 문을 열어 주었는가?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이 꿈과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작은 길을 열어 주었다. 어릴 적에는 <꿈을 찍는 사진관>의 배경과 비슷한 작은 동산에 올라가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작품 속 그 어설픈 화가의 흉내를 냈다.
지금 무엇이 부족한가?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외할머니의 무릎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새로 구성한 글이다. 써서 읽어 보니 내 글이 할머니 이야기보다 감칠맛이 떨어진다. 아쉽다.
당신은 누구인가?
손수자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