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작품집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
국군의 날 4. 조윤정이 엮은 ≪송병수 작품집≫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
이름을 팔고 몸을 팔고 마음까지 팔아서 살았던 사람들. 왜 살아야 했을까?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동생과 형 때문에 그리고 전쟁 때문에.
알룩달룩한 꽃밭인지, 파란 잔디밭인지? …그런 곳에서 따링 누나하고 ‘서산 넘어 햇님’을 신나게 부르는 꿈을 또 꾸었다. 예쁜 동무들도 같이 불렀다. 빨갱이가 쳐들어왔을 때 다락에 숨어 있다가 잡혀간 아버지도 있었고 애기 젖 먹이다가 폭격에 무너진 대들보에 깔려 죽은 엄마의 얼굴도 꼭 거기서 본 것 같은데… 눈을 떠 보니 땅구뎅이였다.
<쑈리·킴>, ≪송병수 작품집≫, 송병수 지음, 조윤정 엮음, 45쪽
쑈리 킴이 누구인가?
“펨프(pimp)”다. “따링 누나”의 매춘을 알선하며 살아가는 전쟁고아다. 양키 부대 근처 옛 중공군 참호에서 따링 누나와 지낸다.
어쩌다 펨프가 되었나?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청계천 다리 밑 왕초한테 지독히 얻어맞다가 딱부리와 함께 도망을 쳤다. 교통순경에게 붙잡혀 청량리 고아원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보름을 지냈다. 배를 곯다 못해 다시 도망쳐 나왔다. 마침 지나가는 양키 트럭에 올라타 미군 기지에 들어왔다. 딱부리는 캡틴 눈에 들어 하우스보이가 되었고, 쑈리 킴은 따링 누나를 만나 펨프가 되었다.
꿈에서 깬 쑈리 킴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가?
야전용 휴대 식량 “레이숑” 통조림과 비스켓이 전부인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따링 누나는 병이 든 것처럼 맥없이 하늘만 본다. 그는 생계란, 칠면조 넓적다리, 마이신을 얻어 와야겠다고 미군 기지로 간다.
생계란, 칠면조 넓적다리, 마이신을 얻어 오는가?
가는 길에 있는 언덕 위 고목나무에서 ‘재수 보기’를 하다 깜짝 놀라 참호로 되돌아갔다.
재수 보기는 재수를 어떻게 보는 것인가?
고목나무에 돌멩이를 던져 하루를 점치는 것이다. “돌을 던져 첫 번에 맞으면 그날 재수는 아주 장땡이고, 두 번이나 세 번에 맞으면 그저 그렇고, 세 번 다 안 맞으면 그날은 재수 옴 붙은 날이라 했다.” 두 번째 돌까지 안 맞고 마지막 돌을 던질까 고민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이유가 뭔가?
헌병 차가 참호 옆 밭고랑에 있었기 때문이다. 양공주를 잡기 위해 온 것이다. 그들이 보이면 숨으라는 신호로 휘파람을 연달아 두 번 불었다.
따링 누나는 휘파람 소리를 들었나?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찔뚝이의 밀고를 받은 헌병들은 따링 누나를 찾아내 데려갔다. 누나는 “얘- 서울로 오라 잉-, 피액쓰 앞에서 만나자 잉-, 저기 구뎅이에 있는 팔백 딸라 뭉치 꼭 가지고 오라 잉-, 꼭…” 하고는 떠나갔다.
그들은 다시 만나는가?
찔뚝이가 구덩이에서 돈을 훔쳐 나오는 것을 보았다. 딱부리가 칼로 그를 찌른다. 쑈리 킴은 찔뚝이도 돈도 다 버려두고 따링 누나를 찾아 딱부리와 도망을 쳤다.
작가 송병수는 누구인가?
살아야만 했던 자들과 공존한, 인간애를 간직한 작가다.
살아야만 했던 자들은 누구였는가?
해방과 전쟁 이후의 혼란과 상처 속에 남겨진 이들이다. 남북한의 이념적 대치나 타의 때문에 경계에 서 있거나 이방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인물들이다. <쑈리·킴>의 쑈리 킴과 따링 누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왜 이방인인가?
진짜 이름을 잃고 ‘쇼티(shorty)’와 ‘달링(darling)’처럼 미군들의 눈에 비치는 대로 불린다. 이방에 주둔한 미군의 삶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또 다른 이방인이다.
송병수의 인간애는 어디에서 발견되나?
쑈리 킴과 따링 누나의 행위를 도덕적인 규율로 매도하지 않았다. 쑈리 킴은 시대가 강요한 조숙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서산 넘어 햇님’을 그리워하고 <보물섬>이나 <백설공주>를 좋아하는 천진한 열 살 남짓 소년이다. 그를 어린 소년으로 봐 주는 사람은 따링 누나뿐이다.
송병수는 어떻게 살다 갔는가?
1932년 3월 7일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해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했다. 1957년 ≪문학예술≫에 <쑈리·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부조리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풍속을 사실적 문체로 담아냈다. 1977년 MBC 제작위원이 되어 방송계 일에 전념하다 2009년 별세했다.
≪송병수 작품집≫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나?
<쑈리·킴>, <인간신뢰(人間信賴)>, <탈주병(脫走兵)>, <잔해(殘骸)>, <유형인(流刑人)> 다섯 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윤정이다. 서울대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