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촌만록
2449호 | 2015년 2월 13일 발행
수촌만록과 계집종의 시
윤호진이 옮긴 임방(任埅)의 ≪수촌만록(水村漫錄)≫
조선 사람들의 시 사랑
조선은 계급 사회다.
문인 승려야 그렇다 치고 기녀와 계집종까지 시를 썼다면 놀랍다.
안동 권씨 집안의 종 얼현의 작품을 보라.
조선의 문화 수준이 이 정도였다.
“우재 송시열 선생은 당시 도학의 종주일 뿐만 아니라 문장도 동방 제일이었다. 금석문자가 그의 손에서 나오지 않으면 세상에서는 대개 부족하다 여겼다. 그가 지은 공사의 비갈이 몇백 편 되는지 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두 뛰어나 외울 만했으니 실로 천고에 드문 일이다. 시 역시 전중하여 법도가 있었는데 <유풍악>이라는 작품은 이렇다.”
陳篇聞有古人心 옛글 속에 고인 마음 있다는 말을 듣고
半世牢關字字尋 반평생 문을 닫고 글만을 읽었네.
却怕埋頭無了日 여기 묻혀 끝나는 날 없을까 걱정 되어
更將閑脚逐飛禽 다리 끌고 날짐승을 좇아 이곳에 왔네.
楓山灝氣千年積 풍악산엔 맑은 기운 천 년이나 쌓였고
蓬海滄波萬丈深 동해의 푸른 파도 만 길이나 깊었네.
此地最宜南岳句 이곳이 남악구 외기 제일 적당하니
每登高處費長吟 날마다 높이 올라 길이길이 읊조린다.
≪수촌만록≫, 임방 지음, 윤호진 옮김, 40∼41쪽
‘수촌만록’이 무슨 뜻인가?
수촌(水村)은 임방의 호(號)다. 만록(漫錄)은 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이다.
임방은 이 책에 무엇을 썼나?
시와 관련된 이야기, 곧 시화만 55편 실었다. 만록이지만 다른 잡기는 보이지 않는다.
시는 누구의 것을 골랐나?
자기 집안사람과 동시대인의 작품이다. 김수항(金壽恒)·김만중(金萬重)·홍만종(洪萬宗)·김득신(金得臣) 등 이름난 서인계 문인, 황진이·매창 등 기녀와 계집종 얼현(孼玄)같은 여성, 처묵(處黙)·묘정(妙靜) 같은 승려, 신두병(申斗柄)과 같은 기인들의 시를 만날 수 있다.
≪수촌만록≫이 다른 만록, 만필(漫筆)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자신의 친인척과 스승의 시가 많이 실린 것이 특징이다. 당시는 직계존속과 같은 지친(至親)에 대해서는 기휘(忌諱)를 하여 자신의 저술 속에서 평론은 물론 언급조차 삼갔다. 그것이 추세였는데 임방은 그러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시의 작가 우재와 수촌은 어떤 관계였는가?
송시열이 스승이다. 그의 시를 놓고 수촌은 주자를 불러 비한다. “<소리 내어 읊조리며 나는 듯 축융봉을 내려간다(朗吟飛下祝融峰)>라는 시와 그 기상이 완연히 한가지”라고 찬한다.
<낭음비하축융봉>은 어떤 시인가?
그 작품은 이렇다.
我來萬里駕長風만 리 길을 바람 타고 오니
絶壑層雲許震胸깊은 골짝 층층 구름 가슴 뒤흔드네.
濁酒三杯豪氣發탁주 석 잔 들이켜자 호기가 솟아
朗吟飛下祝融峰낭랑하게 시 읊으며 축융봉을 날듯이 내려가네.
기녀와 계집종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가?
취죽의 <방석전고거>를 보자.
訪石田故居석전의 옛집을 찾다
十年曾伴石田遊,십 년 전에 석전과 함께 노닐던 곳,
楊(揚)子江頭醉幾留.양자강 가에서 취하여 몇 번이나 머물었던가?
今日獨尋人去後,지금 그 사람 떠나간 뒤 홀로 찾으니,
白蘋紅蓼滿汀秋.흰 마름 붉은 여뀌 물가에 가득한 가을이라네.
취죽이 누구인가?
안동 권 아무개의 계집종 얼현(孼玄)이다. 취죽은 그녀의 자호다.
계집종이 시를 썼는가?
임방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 남용익(南龍翼)이 선집한 한시집 ≪기아(箕雅)≫에 두 편이 실려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이 몹시 낯선 까닭이 무엇인가?
이 시가 무명씨의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임방이 설명한다.
임방은 어떻게 살다 갔나?
1640년, 인조 18년에 태어났다. 정랑, 의금부 도사, 사간(司諫) 등부터 시작해 공조판서(工曹判書), 우참찬(右參贊)까지 지냈다. 1721년 겨울에 건저(建儲)에 얽힌 사건으로 노론 대신들이 모두 귀양을 가면서 더불어 삭출되었다. 1724년(경종 4) 귀양지 김천(金川)에서 85세를 일기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신원(伸冤)되었다.
≪수촌만록≫은 어디서 볼 수 있나?
홍만종의 ≪시화총림≫, 임방의 현손인 임렴(任簾)이 편찬한 ≪양파담원(暘葩談苑)≫ 등에 수록되어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호진이다.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