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향전 천줄읽기
차충환이 뽑아 교감한 ≪숙향전(淑香傳)≫
서로 좋다면 무엇도 막지 못한다.
숙향과 이선의 사랑은 하늘에서 시작된다. 여인의 사랑은 도를 넘고 둘은 지상으로 떨어진다. 땅이 갈라지고 몸이 부서지는 징벌이 뒤따르지만 둘의 마음을 떼지 못한다. 해피 엔딩, 봉건 조선의 엄중함도 남녀의 사랑은 막지 못했다.
“낭군이 이렇듯 고집하시니 숙향을 아직 이곳에 두고 우리만 가사이다.”
숙향을 바위틈에 앉히고 옥지환(玉指環) 한 짝을 옷고름에 채우고 먹을 음식을 그릇에 많이 담아 주어 왈,
“너는 잠깐 이곳에 있어 배고프거든 이 밥을 먹고 목마르거든 저 물을 떠먹고 있으면 우리 내일 와 데려가마.”
하고 낯을 한데 대고 슬피 울며 차마 떠나지 못하니, 숙향이 제 모친 치마를 잡고 슬피 울며 왈,
“어머님은 날 버리고 혼자 어디로 가시려 하나이까? 나도 함께 가사이다.”
하며 따라 내달으니, 그 참혹한 형상은 귀신도 감동할 듯하며 일광(日光)이 무색하더라. 김전 부처 망극하여 울며 이르되,
“내 딸아, 울지 말고 가만히 앉았거라. 소리 나면 도적이 알고 와서 죽이나니라.”
하고 돌아보니 도적이 벌써 가까이 오는지라. 김전이 망극하여 장씨 손을 이끌고 산중으로 달아나니, 숙향이 소리를 크게 하여 왈,
“어머님은 어찌 나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부디 내일 와 데려가소서.”
≪숙향전≫, 작자 미상, 차충환 옮김, 20쪽
왜 이리 슬픈가?
전쟁 속에서 숙향과 부모가 헤어지는 장면이다. ‘어찌 나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같은 물음을 반복해 숙향의 두려움을 극대화했다.
숙향의 두려움은 어떤 것인가?
고전소설은 대부분 주인공의 고난을 다루지만 그 서술이 판에 박힌 듯한 것이 대다수다. 그러나 ≪숙향전≫은 매우 구체적으로 비극을 형상화한다. 전쟁의 폭력성과 인물의 고통 등을 독자가 생생하게 체감하게 해 몰입과 공감을 이끈다.
일본인 통역관들에게 ≪숙향전≫이 한국어 학습 텍스트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숙향전≫을 가지고 한국어를 익혔다는 직접적인 증언 자료가 있다. 또한 ≪숙향전≫ 이본 중에는 일본 도서관에 소장된 것들이 있는데 한글 원문 옆에 일본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한국어를 익힌 흔적이다.
여러 고전소설 중 ≪숙향전≫이 학습 텍스트로 쓰인 까닭은 무엇인가?
≪숙향전≫에는 다른 국문소설 텍스트에 비해 순 한글 표현이 훨씬 많이 나타난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공통적으로 쓰는 한자어는 많다. 그러나 순 한글 표현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므로 이에 ≪숙향전≫이 적합했다.
영웅소설인가?
조실부모하고 악인을 만나 위험에 처할 때마다 은인의 도움으로 위험을 극복한다는 점에서는 영웅소설 구조다. 그러나 숙향이 영웅은 아니므로 보편적인 영웅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숙향이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숙향전≫이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성 독자에게 어떻게 어필하는가?
사랑 이야기다. 고아 숙향과 귀한 신분인 이선의 애정이 극진하게 그려진다.
러브 스토리는 어디서 시작되나?
숙향은 자신이 꿈에서 본 천상 세계를 수놓는다. 수에는 천상의 태을선과 숙향이 만나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마고할미가 장사꾼에게 판다. 장사꾼은 문장가로 소문난 이선을 찾아가 수에 시를 써 달라고 한다. 이선이 수를 보니 자신이 꿈에서 본 광경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때부터 이선은 숙향을 천생연분으로 생각하고 숙향을 찾아 혼인하는 일에 전력을 바친다.
그들은 어떤 관계였나?
숙향은 월궁선녀, 이선은 태을선이었다. 서로 글을 지어 화답하며 희롱했다. 숙향이 달에 사는 토끼의 약을 훔쳐 이선에게 주었다. 결국 둘은 벌을 받아 지상으로 떨어진다.
사랑의 원죄는 세상에서 어떻게 징벌되나?
전쟁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진다. 다행히 푸른 새와 흰 사슴의 도움으로 장 승상의 집을 찾아가 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시비 사향의 계략으로 장 승상의 집에서 나오게 되어 강물에 뛰어들어 죽으려 한다. 그때 용녀들이 나타나 숙향을 구한다. 또한 노전이란 갈대밭에서 불이 나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화덕진군의 구원을 받아 살아난다.
이선 부모는 어떻게 개입하나?
관계를 반대한다. 숙향을 옥에 가두고 처형하려 했으며 이선은 서울의 태학으로 보냈다.
해피 엔딩인가?
이선은 장원급제해 돌아오고 이선의 부모는 숙향의 됨됨이와 아름다움을 보고 며느리로 인정한다.
이본이 90종이나 만들어졌다는 것이 사실인가?
특급 베스트셀러라는 뜻이다. 이본 중에는 국문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된 것도 있다. 이는 양반 계층에서도 ≪숙향전≫이 인기리에 유통되었음을 보여 준다.
≪숙향전≫의 인기는 어떻게 방증되나?
≪춘향전≫, ≪심청전≫, 봉산탈춤, 각종 사설시조 등에 숙향과 이선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는 ‘고난에 관해서는 숙향’, ‘남녀 간의 절절한 사랑에는 숙향과 이선’이라는 공식을 보일 만큼 두 인물이 유명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을 어떻게 현대화했나?
원전의 맛을 살려 현대어로 풀이했고 내용의 주요 부분을 50% 발췌했다. 고전의 미감을 살리고 일반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작품 전체를 읽고 감상하길 바란다. 이 책은 그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차충환이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