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언
2488호 | 2015년 3월 12일 발행
율곡이 소개하는 조선의 노자
조기영이 옮긴 이이(李珥)의 ≪순언(醇言)≫
조선의 노자
율곡은 도가의 이로움을 말한다.
자기 자신을 이겨 사사로운 욕심을 막고,
고요함과 무거움으로 자신을 지키며,
겸손함과 무욕으로 스스로 기르고,
자애로움과 간소함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
이것은 노자의 주장이 아닌가?
그렇다. 도의 실행을 형상하여 설명하는 구절이다. ≪도덕경≫ 제11장에 있는 구절에 율곡이 토를 달았다.
도가 뭔가?
사람과 사물을 낳는 것이다. 존귀한 것이고 묘하게 작용한다. 행하지 않는 일이 없다.
도를 실행하려면 어떻게 하는가?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운 뒤에 사욕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선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학문이 나아가고 행실이 이루어진다.
마음이 비지 않으면 어쩌나?
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바퀴통이 비지 않으면 수레가 움직이지 못하고 그릇이 비지 않으면 담을 수가 없으며 방의 가운데가 비어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방이 되는 것과 같다.
비우는 방법이 있는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행하는 것이다. 율곡은 손(損)과 색(嗇), 곧 덜어내고 아낄 것을 당부한다.
어떻게 덜고 아끼는가?
스스로를 다스릴 때는 욕심을 내지 않고 정신을 기르며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한다. 남을 다스릴 때는 법도를 삼가고 명령을 간소하게 하며 많은 조목을 줄이고 낭비를 없앤다.
≪순언≫은 어떤 책인가?
노자의 ≪도덕경≫을 율곡이 재편성한 책이다. 직접 베끼고 풀이하고 토를 달았다.
왜 제목이 ‘순언’인가?
유가에 맞는 순일(醇一)한 내용을 취해 실었기 때문에 제목을 ‘순언(醇言)’이라 붙였다. 도가 사상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유학자 입장에서 재해석했다.
재해석의 방법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 그리고 자아, 세계, 조화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추구하는 유가의 이치에 초점을 맞춰 교훈을 주려고 했다.
노자가 유학자에게 교훈을 줄 수 있나?
후서(後序)를 보면, “무위를 종지로 삼았지만 응용에 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무위인데 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도덕경≫의 본체인 무위를 유지하면서도 실질적인 측면에서 응용되지 않는 곳이 없어 허무한 데로 빠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허무 지향의 이단이나 방외의 학문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어디에 응용되는가?
극기질욕(克己窒慾), 정중자수(靜重自守), 겸허자목(謙虛自牧), 자간임민(慈簡臨民)이라는 네 가지 뜻이 배우는 사람에게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네 가지가 어떻게 보탬이 되는가?
자기 자신을 이겨 사사로운 욕심을 막고, 고요함과 무거움으로 자신을 지키며, 겸손함과 무욕으로 스스로 기르고, 자애로움과 간소함으로 백성을 다스린다.
이 책은 조선의 도가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박세당(朴世堂)의 ≪신주도덕경≫, 서명응(徐命膺)의 ≪도덕지귀≫, 이충익(李忠翊)의 ≪담로≫, 홍석주(洪奭周)의 ≪정로≫와 같은 도가 주석서의 바탕이 되었다. 도가 철학에 대한 주석과 이해에 새 지평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기영이다. 한국고전교육원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