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기 외국영화
영화를 바꾼 영화 12/13 미군정기 미국영화 <서스픽션(suspicion)>
미국식으로 말하고 연애하기
해방과 함께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영속화하는 데
문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정기 동안
무려 422편의 미국 극영화가 상영되었다.
대중은 이 영화들을 통해 근대성을 상상하며
“말하고 연애하고 가정을 꾸미는 법”을 경험하고 배웠다.
근대화는 미국 따라잡기, 곧 미국화였고,
그 과정에서 미국영화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서스픽션(suspicion)>, 1941년,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연출. 거부의 딸인 조앤 폰테인(Joan Fontaine)이 첫눈에 반한 캐리 그랜트(Cary Grant)와 결혼하는데, 건달인 남편이 자신의 보험금을 노리고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긴장을 만들어내는 심리 스릴러 영화다.
근대화의 박람회장
일제강점기 동안 억눌렸던 문화적 욕구는 1945년 해방과 함께 터져나왔다. 태평양전쟁 이후 수입이 금지된 미국영화에 대한 갈망도 높았다. 당시 미국영화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근대적 인간관계, 그 성과물인 신기한 물품을 보여주는 근대화의 박람회장과 같았다. 미국에서 새로운 영화가 들어온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었다. 특히 장르 영화는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장르 영화는 계몽적이고 신파적인 한국영화에 질린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 경험을 선사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대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가 대표적이다.
1947년 11월 13일 ≪한성일보≫에는 히치콕 감독의 <서스픽션>(1941)(당시 개봉 제목 <의혹의 애정>)이 상영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영화의 원작, 감독, 줄거리를 소개하고 이 영화가 심리적 스릴러라는 점을 해설해주고 있다. 현재 이 영화는 원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검색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흥행을 위해 스릴러와 멜로가 혼합된 장르임을 암시하는 제목을 전략적으로 채택했다. 스릴러는 남성 관객, 멜로는 여성 관객에게 소구해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멋진 남성의 대명사 캐리 그랜트가 히치콕과 만나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한 영화임에도 그런 언급은 제외한 채 그의 이름과 얼굴을 광고 상단에 올린 것도 하나의 흥행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_ 이명자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강사, ≪신문, 잡지, 광고 자료로 본 미군정기 외국영화≫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