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의 학교
이상우가 옮긴 몰리에르(Molière)의 ≪아내들의 학교(L’Ecole des Femmes)≫
너는 나를 만들지 못한다
그가 먹는 것이 그이고 그가 보는 것이 그이며 그가 사는 곳이 그라고? 육체와 정신은 경험과 학습의 소산이라고? 그런데 그것은 얼마나 오랜 경험이고 얼마나 오랜 학습인가?
아르놀프: 온유하고 침착한 모습 덕분에 그 아이가 네 살일 때부터 그 아이를 사랑할 마음이 생겼다네. 그 아이의 어미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아이의 어미에게서 그 앨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네. 그런데 그 선량한 농부의 아낙이 내 소망을 알아차리곤 그 책임을 더는 데 큰 기쁨을 느꼈다네. 나는 아무하고도 교제할 수 없도록 멀리 떨어진 한 작은 수녀원에서 내 원칙대로 그 애를 키우게 했지. 다시 말하자면, 가능한 한 그녀를 멍청이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보살피라고 지시해 키웠네. 천만다행으로 나는 기대했던 결과를 얻었지. 그리하여 그 아이가 그렇게 순진하게 성장하는 것을 봤는데, 내가 염원하던 여자를 만들기 위해 내 할 일을 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했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왔네. 내 저택은 온갖 사람들에게 늘 개방되어 있어서 모든 것을 미리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 외딴집에 그녀를 데려다 놓았네. 그리고 그녀의 자연스러운 선량함을 조금도 해치지 않기 위해 그녀만큼 순진한 하인들만 거기에 두었어. 자네는 “왜 이런 설화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지?” 하고 말하겠지. 자네에게 나의 신중함을 알리려는 것일세. 자네는 충실한 친구니까 오늘 저녁에 그 아이와 식사하는 자리에 초대할 테니 모든 결과를 지켜보게나. 자네가 그녀를 좀 살펴봐 주게. 그리고 사람들이 내 선택을 비난해야 하는지 아닌지 봐주길 바라네.
≪아내들의 학교≫, 몰리에르 지음, 이상우 옮김, 38∼39쪽
그 아이, 또는 그녀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아녜스다. 아르놀프에 따르면 그녀는 이상적인 배우자감이다.
무엇 때문에 이상적 배우자인가?
무지와 어리석음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나?
오라스를 만나면서 끌린다. 아르놀프의 안락한 삶을 위한 피조물에 불과했던 아녜스는 이때부터 본성과 자발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거듭난다.
오라스는 누구인가?
아르놀프 친구의 아들이다. 아녜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아르놀프가 그녀와 정혼한 사실은 모른다.
뜻밖의 사랑에 대한 아르놀프의 반응은 무엇인가?
아녜스와의 관계를 숨긴 채 오라스를 돕는 척하지만 속셈은 방해하는 것이다.
사태는 어떻게 진행되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상황은 오라스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오라스의 정혼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반전인가?
아르놀프는 기회를 잡는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적극적으로 둘을 떼어 놓으려 한다.
사랑은 끝장인가?
아녜스가 농부의 아낙에게 맡겨진 오라스의 정혼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아르놀프는 할 말을 잃고 자리를 떠난다.
아르놀프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진실을 자각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를 간과했다. 오랫동안 구속, 고립된 상태에서 기성 가치를 주입했지만 아녜스는 오라스를 만나 본성에 충실해지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자발성을 찾은 것이다.
이 자발성에 대한 각성이 몰리에르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인가?
그는 이 작품에서 자연과 반자연, 자유와 구속, 자연스러움과 인위성을 대립시켰다. 아녜스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인간 존엄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그 어떤 이념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만천하에 고발했다. 당대인들에게는 문화 충격이었을 것이다.
금욕주의에 대한 비판인가?
그는 모든 금욕주의적 논리를 배척하고 무지와 인습, 외압과 맹목적인 복종에 조화할 수 없는 본성을 제시했다. 자연 섭리에 반하는 것은 모두 파괴되고 만다는 자연철학의 일면이 엿보인다.
이 작품의 공연 반응은 어땠나?
1662년 12월에 왕립극장에서 초연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663년에는 책으로도 인쇄되었다. 하지만 발표 직후 내내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1664년 초반에야 논란에 결말이 났다.
무엇에 대한 논란이었나?
독신자(篤信者)들이 몰리에르를 ‘경건하지 않은 자’, ‘무신앙가’, ‘풍습 교란자’로 간주해 그의 도덕성을 공박했다. 이에 대해 몰리에르는 세속적 도덕과 종교적 도덕 사이에서 올바른 처신 방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세속적 도덕과 종교적 도덕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어느 것 하나를 강조하기보다 인간 본성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논쟁의 끝은 어디였는가?
<아내들의 학교 비판>이라는 희곡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희곡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다.
몰리에르에게 이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이전부터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아내들의 학교>가 대성공을 거두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희곡의 천재가 나타났다고 할 정도였다. 몇몇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몰리에르의 걸작이자 가장 순수한 희극이라고 평했다.
어떻게 살다 갔나?
1644년 몰리에르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연극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극작가로서, 배우로서, 극단 운영자로서 30년간 오직 연극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다가 51세 때 공연 도중 죽음을 맞이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상우다. <몰리에르와 ‘자연주의적’ 미학>으로 파리3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