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딜리와 형들
박정경이 옮긴 샤반 로버트(Shaaban Robert)의 ≪아딜리와 형들(Adili na Nduguze)≫
스와힐리어, 어느 나라 말이야?
말이 있으니 나라가 있겠지만 스와힐리는 나라가 아니다. 동아프리카 해안 도시국가들의 공용어다. 오래된 국제어이고 아프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고유언어다. 영어도,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아프리카 말로 아프리카 문학을 즐겨 보시라.
아딜리가 자고 있을 때, 그의 방이 크게 요동쳤고 마루가 갈라졌다. 몸을 일으키자 후리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딜리의 얼굴은 희망에 차 있었고 후리아의 얼굴은 분노로 부풀어 올랐다. 둘은 서로를 살펴보며 상대방이 평소와 다른 점을 밝혀내려 했다. 아딜리는 세 번째로 명령을 어겼다. 후리아는 그가 불복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습관적인 불복을 끝내기 위해 그 역시 형들처럼 원숭이로 변하는 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후리아는 벌을 내리기 전에 아딜리에게 변명을 듣고 싶었다. 아딜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확신에 찬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 그는 라이 왕의 편지를 후리아에게 건넸다.
≪아딜리와 형들≫, 샤반 로버트, 박정경 옮김, 75~76쪽
스와힐리 문학은 낯설다. 이것은 어떤 이야기인가?
아딜리와 형들은 장사를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그러던 중 형들은 동생의 여인을 빼앗으려고 그를 죽이려 했다. 이때 후리아가 아딜리를 구해 줬다. 형들에게는 원숭이로 변하고 매일 밤 아딜리에게 채찍으로 맞아야 하는 벌을 내렸다. 라이 왕은 아딜리의 처지를 측은하게 여겨 후리아에게 용서를 권하는 편지를 썼다. 형들은 용서받고 인간이 된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하는 전개 방식은 원정 모티프를 내포한 스와힐리 민담과 유사하다.
아딜리가 무슨 명령을 어겼다는 것인가?
정령인 후리아에게 매일 밤 형들을 때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았다.
스와힐리는 어디인가?
‘스와힐리(Swahili)’의 어원은 아랍어로 해안을 뜻하는 ‘사힐(Sahil)’이다. 예로부터 인도양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동아프리카 해안의 무역 거점에 도시국가들이 형성됐다. 이 지역이 스와힐리 문화권이다. 이 도시국가의 거주자들을 스와힐리인, 이들의 언어를 스와힐리어라 칭한다.
이 작품은 어느 나라 것인가?
탄자니아 작품이다.
샤반 로버트는 이 소설의 모티프를 어디서 찾았나?
민담에서 찾았다. 마법과 정령의 세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환상소설 또는 샤머니즘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스와힐리 민담의 흔적은 또 어디서 발견되는가?
의미와 구조상의 대구로 형성되는 문장, 속담 사용, 단어 열거를 통한 상황 묘사 등이 있다. 서구 소설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산문체와는 다르다.
스와힐리 문학에서 원정 모티프는 어떤 것인가?
주인공이 원정을 떠나서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용기, 착한 마음씨 등의 자질을 보여 문제를 해결하고 고향으로 귀환한다. 여행은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계기다.
사건을 겪는다는 것은 사회화를 의미하는가?
사회적 성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타낸다. 주인공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자신이 성인이 될 자질을 갖추었음을 증명한다. 이야기 결말에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것은 그가 성공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딜리가 왕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액자소설 구조도 민담의 영향인가?
액자소설 형태는 전 세계 초기 소설에서 두루 나타난다. 구비문학에서 구연자가 청중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 문자문학인 소설에 반영된 것이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도 같은 구조를 찾을 수 있다.
스와힐리 소설의 민담 수용은 아프리카 문학의 어떤 전략 행동인가?
스와힐리 전통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작가인 샤반 로버트의 모국인 탄자니아를 비롯한 스와힐리 지역은 서구 열강에 의해 희생된 식민지였다. 스와힐리 작가들은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서구 문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스와힐리 문학은 식민 지배의 역사를 어떻게 소화하는가?
식민 통치 기간에 스와힐리어가 로마자로 표기되고 인쇄술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스와힐리어를 매개로 한 출판문화가 동아프리카에 정착했다.
아프리카인은 어떻게 스와힐리어를 지켰나?
식민 통치 전부터 동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교통어(lingua franca)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식민 통치기에 지방행정과 공교육 언어로 사용하면서 그 쓰임이 확대되었다. 독립국가 형성기를 거치면서는 더욱 널리 퍼졌고, 현재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었다.
샤반 로버트는 누구인가?
시, 소설, 수필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해 스와힐리 문학을 발전시켰다. 월프레드 화이틀리는 그를 ‘아프리카의 셰익스피어’라고 칭송했다.
아프리카의 셰익스피어는 무엇을 했는가?
첫째 작품에 스와힐리어를 썼다. 복잡한 아프리카의 언어 상황에서 수많은 아프리카 작가들이 식민 종주국 언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샤반은 스와힐리어의 가치와 역할을 인식한 작가였다. 둘째 동아프리카스와힐리위원회, 탕가니카언어위원회에 참여해 스와힐리어 발전을 도왔다.
아프리카 문학에서 그의 의미는 무엇인가?
스와힐리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이었다. 스와힐리 고전 시문학 형식인 ‘우텐지’와 ‘샤이리’부터 새로운 장르의 산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의 작품을 창작했다.
한국에서 스와힐리 문학의 사정은 어떤가?
유럽이나 북미, 아시아 문학에 비해 미미하다.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다. 국가의 힘에 따라 문화의 힘도 결정되므로 식민지 체제의 스와힐리 지역에 대한 소개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으로도 멀어 생소했다.
당신은 왜 한국에 스와힐리 문학을 소개하는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험과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스와힐리어다. 그들의 삶과 호흡하는 토착어다. 이 언어에는 오랜 고전문학의 전통이 배어 있다. 현재도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문학작품 창작 언어로 활발히 사용된다.
어떤 번역 기준을 적용했는가?
스와힐리어권에서 통용되는 관용적 표현과 속담, 스와힐리 서정시인 샤이리를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관용적 표현과 속담은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다듬었다. 시는 함축적인 의미를 설명하려다 보니 원문보다 번역문이 길어졌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정경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