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의학전문용어 만들기
한국어 확장 신간 ≪아름다운 우리말 의학전문용어 만들기≫
국내 최초, 의학과 언어학의 만남
좌창, 단골, 와우. 무슨 말인가? 여드름, 짧은뼈, 달팽이다. 의사가 하는 말을 환자가 알기 힘들다. 질 좋은 맞춤 진료가 어려워지는 이유다. 병원과 의학뿐만 아니지만 우리에게 전문용어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은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통섭과 소통, 이해와 효율은 길보다 말로써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리말 의학전문용어 만들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언어학과 의학의 만남이다. 함께 용어를 만들어 가야 할 필요와 당위를 제시한다. 기존 용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용어의 적절성 평가 기준, 한국어 전문용어의 역사적 특수성, 쉬운 우리말 전문용어가 세계 다른 언어의 민주화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앞으로 우리말 전문용어의 미래를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노력이 없었나?
기존 연구는 전문용어의 표준화 노력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용어의 표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어 어법에서 벗어난 용어를 바로잡을 필요도 있었고.
당신들의 노력은 뭐가 다른가?
전문용어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새 용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다. 기존 용어는 물론이고 앞으로 만들어질 용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언어학과 분야 연구자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전문용어란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인가?
그렇지 않다.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 사물 모두를 포괄한다. 일상생활부터 학술 연구까지, 전문용어가 쓰이지 않는 곳은 없다. 우리는 전문용어 속에서 산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전문용어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산업사회까지는 소수 전문가의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소통되는 정보의 양과 질은 기하급수로 많아진다. 전문용어를 모르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전문용어가 쉬워질 수 있는가, 원래 어려운 것 아닌가?
소통될 수 있는 용어만이 가치가 있다. 정보지식사회에서 전문용어는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용어의 벽은 낮아져야 하며 일반인의 어휘 세계에 전문용어가 들어와야 한다.
전문용어 담론은 시대의 요청이란 뜻인가?
이치티오시스 벌가리스, 곧 심상성어린선은 의사가 쓰는 말이다. 보통 사람은 모른다. 보통비늘증이라고 하면 쉽게 안다. 쉬운 전문용어는 소통을 보장하는 토대이자 시대 요청이다.
의학용어에 한자어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어 단어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자어가 55%쯤 되고 고유어가 45% 정도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의학용어는 한자어가 압도적이다.
의사가 한자어를 쓰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의학용어는 복합어가 많다. 한자어를 쓰면 단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장간막동맥간신경총이라는 용어를 처음 보면 한국사람은 대개 장간/막동/맥간/신경/총으로 끊어 읽거나 장/간막/동맥/간신/경총으로 끊어 읽는다. 정확히는 장/간막/동맥/간/신경/총으로 구성된 용어다. 이를 창자간막사이신경얼기로 고치면 오류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전문용어에서 고유어를 사용하면 뭐가 달라지나?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동음이의어가 많은 한자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초상돌기라는 용어에서 초상은 初喪, 肖像, 初霜, 草床, 鞘狀 등이 있는데 해당 한자는 鞘狀이다. 이것을 칼집으로만 바꾸어도 이해가 쉽다.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고유어 ‘앞’에 대응하는 한자어 용어는 前域/前層/前索이 있다. 이것을 ‘앞’으로 써도 해부학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은 단어로 많은 용어를 만들 수 있어 언어 경제성이 높아진다.
쉬운 의학용어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간과 관심이다. 쉬운 우리말 용어를 만든 지 20년이 넘지 않았다. 학문의 세대 교체를 생각하면 정착되기에 아직 이르다. 의사들의 무관심도 문제다. 자신이 처음 배운 용어를 그대로 쓴다는 관성이 작용한다. 의학용어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립도 문제다.
영어를 쓰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의과대학이나 대학병원 의사들이 영어로 이야기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환자와의 대화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한자 용어가 너무 어려워 영어를 쓰는 사례도 눈에 띈다.
완전히 고유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은 어떤가?
그동안 추진해 온 쉬운 우리말 용어 만들기는 한자어 추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쉬운 용어를 만들어 쓰자는 것이다. 한자어라도 널리 사용하고 인지도가 높은 말이 많다. 이런 말을 용어에 반영해 투명한 용어를 만들자는 것이다. 의학용어를 둘러싼 대립은 고유어와 한자어가 아니라 쉬운 용어와 난해한 용어의 대립이다. 보수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이를 외면하고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립이라고 주장한다.
쉬운 전문용어 만들기가 성공한 사례는?
여드름이다. 과거엔 좌창이라 했다. 쉬운 용어를 전문가가 사용하면 그것이 학술용어가 된다. 기상용어 이안류가 역파도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것도 좋은 예다.
갑상선을 갑상샘으로, 골다공증을 뼈엉성증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나?
의사들은 갑상선이라고 많이 쓰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갑상샘으로 바뀌고 있다. 신문도 갑상샘을 쓰는 신문과 갑상선을 쓰는 신문으로 나뉜다.
골다공증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지 않는가?
골다공증은 뼈에 구멍이 많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구멍이 많은 것이 아니고 뼈조직이 줄어들어 엉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글을 검색하면 골다공증이 646만 개, 뼈엉성증이 6만 2300개 검색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골다공증이 이미 널리 정착되어 확고한 기득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들이 앞장서고 언론이 민다면 뼈엉성증이 일반화될 것이다.
쉬운 용어 만들기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은 무엇인가?
한국어의 언어 체계와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는다고 해도 한국어의 언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과거 코너킥을 모서리차기로 바꾸려고 했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드로잉, 패스, 파울과 같이 이미 축구에는 외래어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고 또 이들이 그렇게 난해한 용어도 아니었다. 따라서 괜한 반발만 사게 되면서 수용되지 않았다.
의학용어 사례가 다른 전문 분야에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의학용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의학은 물리, 화학, 생물 등 다른 분야와 공유할 수 있는 용어가 많다. 인문학에서도 다르지 않다.
비의학 분야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는가?
관광진흥법에 ‘유원시설업’, ‘유기시설’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를 ‘놀이동산시설업’이나 ‘놀이공원시설업’, ‘놀이시설’로 고유어나 쉬운 한자어를 사용해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법제처의 사업으로 이렇게 바꾸려고 했으나 유기당했다. 영어 전문용어가 hydro-, aqua-에서 water로 바뀌고 있는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쉬운 전문용어 만들기는 시대적 요청이다.
의학자와 언어학자인 저자들은 어떻게 만났나?
2004년 ≪필수의학용어집≫ 발간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용어위원회에 함께 참여하면서 보게 되었다. 의사 사회에는 난해한 기존 일본어 음역어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영어를 쓰자는 사람들, 그리고 쉬운 우리말 용어를 만들어 쓰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 속에서 진지하게, 때로는 격하게 논쟁을 하며 비록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었고 2006년 ≪필수의학용어집≫이 완성된 뒤에도 개별적인 만남을 이어 갔다.
저술을 결심한 결정적 동기는?
시대에 역행하는 용어의 보수화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 중 한 사람인 은희철 교수의 제안으로 왜 쉬운 용어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선언하고 입증하는 책을 만들게 되었다.
용어의 보수화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의학계는 광복 이후 끊임없이 의학용어 정비와 표준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의학용어집≫ 4판은 알기 쉬운 우리말 용어를 적극 담은 용어집이다. 그런데 ≪의학용어집≫ 5판에서 일본식 한자 용어가 많이 부활했다.
이 책에서 세 명의 저자는 무엇을 썼나?
송영빈은 일본에서 들어온 전문용어의 문제점과 쉬운 우리말 전문용어의 정당성을 언어학의 입장에서 입증하려고 했다. 정인혁은 한국어 전문용어의 역사적 변천과 쉬운 우리말 해부학 용어 만들기의 실제를 제시함으로써 쉬운 용어 만들기의 실천적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다. 은희철은 용어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문제가 있는 용어에 대해 쉬운 우리말 용어 만들기를 위한 구체적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은희철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다. 송영빈은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인문학부 교수다. 정인혁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초빙교수이자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