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둘리나 시선
2680호 | 2015년 7월 13일 발행
조주관이 소개하는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시
조주관이 옮긴 벨라 아흐마둘리나(Белла А. Ахмадулина)의 ≪아흐마둘리나 시선(Б. А. Ахмадулина Избранное)≫
그녀가 속물근성과 싸우고 있을 때
그녀의 영감은 등 뒤에 숨어 어린 딸처럼 숨 쉰다.
이제 사방은 덥기만 한데 비 때문에 당황하는 도시.
가뭄에 찌들어 모든 것이 건조한데 나만이 속살까지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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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날 따라다니는 비.
“아, 도망가야지!”
비는 물러섰다가는 다시 슬픈 듯
어린 딸아이처럼 따라붙는다.
날개처럼 내 등에 자리 잡은 비.
비를 나무란다.
“부끄럽지, 요 망나니야!
정원사가 네게 눈물로 호소하지 않니
화초에게나 가보렴!
나한테 무얼 찾을 게 있다고?”
이제 사방은 덥기만 하다.
지상의 모든 것을 잊은 채 나와 함께 있는 비.
물뿌리개가 빙글빙글 돌듯이
아이들은 내 주위를 춤추듯 돌며 걸어간다.
음침한 생각으로 카페에 들어가
조용한 구석 테이블에 앉아본다.
창문 너머로 연방 내리는 비
잔을 통해 내게로 오고 싶어 한다.
밖으로 나가니
습기가 볼을 때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비는 이내 내 입술을 핥으며
비 맞은 강아지처럼 따스한 냄새를 풍긴다.
내 꼴이 우스울 거야.
젖은 수건을 목에 둘러본다.
비는 원숭이처럼
내 어깨 위에 앉아 있다.
비 때문에 당황하는 도시.
연약한 나를 보고 즐기는 비가
아가의 손가락으로 내 귀를 간질인다.
가뭄에 찌들어 모든 것이 건조한데
나만이 속살까지 젖어 있다.
<비 이야기>, ≪아흐마둘리나 시선≫, 아흐마둘리나 지음, 조주관 옮김, 25∼27쪽
시에 등장하는 나는 누구인가?
시인이다.
비는?
시적 영감이다. 시인이 속물근성과 싸울 때 영감은 가는 곳마다 그녀를 따라다닌다.
나는 비와 언제 만나는가?
비는 시인의 등 뒤에 숨어 따라다니다 시인의 용서를 얻는다. 이제 비는 시인과 하나 되어 춤추며 밀어를 속삭인다.
밀어의 결과는?
고독한 시인에게 오한이라는 육체의 고통을 안겨 준다. 오한과 고독은 시인에게 술을 권한다.
술은?
술은 물과 향기로 되어 있다. 시인은 술을 마시고 물의 근원을 찾는 깊은 사념에 빠진다. 샘에서 출발한 물은 바람 소리, 산새 소리를 새기고 강과 바다로 흘러간다. 냇가에서 아이들과 놀던 기억, 강과 바다에서 경험한 새로운 세계의 기억을 간직한 채, 물은 상승하여 구름이 된다. 구름은 인간 세계를 관조하다가 비로 하강한다.
술과 구름, 비와 물은 하나인가?
‘나’까지 모두 하나다. “수치를 모르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한다!/ 나의 포옹은 하늘같이 둥글다./ 우리는 같은 샘에서 나왔으니 모두 형제다./ 나의 아이, 비 얼른 이리 오라!”
<비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시인에 대한 알레고리다. 아흐마둘리나는 비와 창작의 문제를 교묘하게 관련시켜 시적 영감에 대한 시인의 사랑을 끈끈하고 밀도 있게 표현한다.
아흐마둘리나의 시는 무엇을 말하나?
창작의 고통, 시적 영감의 문제가 절대적인 모티프가 된다. 많은 시가 육체적 고통과 질병의 차원으로 전이된 창작의 어려움을 그린다.
특징은?
대상을 신선한 이미지의 언어로 표현한다. 파스테르나크가 진정한 예술의 특징이라고 믿었던 물체와 감각에 대한 ‘감정의 환치’를 즐긴다. 그녀에게 내용은 형식이며, 세계는 단어로 시작한다. 언어는 하나의 독립적인 본질이고 단어들의 새로운 조립으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아흐마둘리나는 어떤 인간인가?
배우, 시나리오 작가이자 시인이었다. 1937년 모스크바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 2010년 타계했다. 1962년에 첫 시집 ≪현악기(Стурна)≫를 발표해 좋은 평을 받았다. ≪시(Стихи)≫(1975), ≪촛불(Свеча)≫(1977), ≪그루지야의 꿈(Сны о Грузии)≫(1977), ≪눈보라(Метель)≫(1977), ≪비밀(Тайна)≫(1983)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그녀의 시를 “러시아 시의 보배”라고 표현했다.
당신은 어떻게 아흐마둘리나의 시를 번역하게 되었나?
러시아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시를 번역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모스크바 콘서트홀 무대에 붉은 머리의 미인인 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몸에 꽉 끼는 검은 실크 옷을 입고 나오면 청중은 매혹되어 조용해졌다. 그녀는 커다란 눈을 가진 인형처럼 비스듬히 서서 마이크를 잡고 자작시를 낭송했다.
이 책에 실은 시는 어디에서 골라 뽑았나?
≪벨라 아흐마둘리나(Белла Ахмадулина)≫(1988), ≪오한(Озноб)≫(1968), ≪그루지야에 대한 꿈(Сны о Грузии)≫(1977)에서 엄선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주관이다.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