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의 집
영문학, 미국 희곡 신간 ≪앨리슨의 집≫
사랑은 왜 아픈가?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었으므로 시를 쓴다. 그들은 죽고 사랑도 사라지지만 시는 남아 사랑을 계속한다. 사랑하던 시절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알 수 없다. 죽고 난 뒤 사실을 목격하지만 사랑의 온기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배신감과 연민뿐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
수전 글래스펠은 누구인가?
미국 현대연극의 어머니다.
어떻게 살다 갔나?
1876년 아이오와 주 대븐포트에서 태어났다. 여성의 2%만 대학에 가던 시절에 드레이크대학을 졸업했고 잠시 기자로 활동했다. 시카고대학원을 졸업한 후 유부남인 조지 크램 쿡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쿡이 이혼하자 그와 결혼했다. 둘은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를 창단해 20세기 초 미국 연극을 이끌었다. 극단은 성공했고 다른 브로드웨이 극단의 경쟁을 유발했다. 상업성에 빠져 원래 정신이 희석되었다고 판단, 극단 운영을 중단하고 그리스로 떠난다. 쿡은 이곳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글래스펠은 미국으로 돌아가 소설 창작에 전념했다. 1948년에 사망했다.
중요한 작가인가?
유진 오닐 못지않게 미국 현대연극에 큰 공헌을 했다.
뭘 했나?
남편인 조지 크램 쿡과 함께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를 창단해 미국 현대연극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는?
20세기 초에 극작가, 배우, 연출가들이 모여 만든 미국 아마추어 극단이다. 특히 유진 오닐의 작품을 여러 편 상연하면서 장기 흥행을 기록했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처럼 여기서 히트한 작품은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다시 공연되면서 미국 연극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유진 오닐과의 관계는?
7년간 52명의 작가가 쓴 100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오닐의 것이 14편이었다. 글래스펠의 작품이 11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닐이 이 극단에서 얼마나 중요한 작가였는지 알 수 있다.
글래스펠과의 관계는?
오닐이 위대한 미국 극작가로 탄생하게 된 데는 글래스펠의 숨은 공로가 있다. 트렁크 한가득 대본을 가지고 찾아가 글래스펠 부부 앞에서 <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를 읽었다. 이때 그들은 오닐을 선택했다.
오닐이 더 유명한데?
남성 작가들의 그늘에 가려 글래스펠이라는 이름은 잊혔다.
저평가된 이유는?
극장, 공연, 스태프, 예산 등이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연 시스템은 여성 작가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성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당대 풍토도 원인이 되었다.
새롭게 부각된 이유는?
페미니즘 비평가들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다. 근래 학회도 창립되고 연구서와 논문도 많이 발표되었다.
페미니즘 작가인가?
여성 해방을 주장하던 1960년대,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활약했지만 <사소한 것들>, <앨리슨의 집> 같은 페미니즘 주제가 강한 작품을 썼다.
<앨리슨의 집>은 어떤 작품인가?
1931년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당대 평가는?
발표 당시에는 수준이 전작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었다. 퓰리처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비평가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작가가 자신의 불륜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만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도 있었다.
내용은?
배경은 19세기 마지막 날 앨리슨의 집이다. 앨리슨이 죽은 지 18년이 지난 시점에 그녀의 집이 외부인에게 팔려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대도시에서 신문기자 놀즈가 찾아온다. 그의 등장으로 가족들이 집안의 전통과 명예를 기키기 위해 숨겨 왔던 과거사가 하나씩 드러난다. “그녀의 시가 모두 출판되었느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이 앞으로 벌어질 갈등을 예고한다. 뜻밖에 앨리슨의 미발표 시들을 발견하게 된 가족들은 그녀가 평생 숨겨 왔던, 유부남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솔직한 감정들을 뒤늦게 알고 시들을 세상에 내놓을지 말지를 놓고 갈등한다.
갈등 전개는?
세대 갈등으로 나타난다. 스탠호프와 애거서는 기성세대를 대변한다. 이들은 앨리슨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묻어 두려고 한다. 반면,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엘사와 에벤, 그리고 앤은 새로 발견된 시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등은 어떻게 해소되나?
끝까지 앨리슨의 시를 태워 버리려 했던 스탠호프는 엘사와 앤의 설득으로 그 시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게 바쳐진 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앨리슨은 어떤 인물인가?
여류 시인이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모델로 했다. 작품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그와 도피하려 했지만 동생 스탠호프의 만류로 집에 남았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사람들의 비난은 면했지만 그때의 감정들을 시로 남겨 놓았다. 그녀가 죽은 지 18년이 지나서야 시들이 발견되면서 집안사람들이 갈등하게 된다.
에밀리 디킨슨은 누구인가?
미국을 대표하는 19세기 여류 시인으로 독특한 시적 언어와 주제, 스타일을 사용했다.
앨리슨과 어떤 면에서 닮았나?
평생 은둔하며 살았고 사후에 여동생 라비니아에 의해 미발표 시들이 출간되면서 재평가되었다.
작품의 주제는?
세간의 이목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앨리슨과 집안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자유와 결정권 문제를 다루었다. 앨리슨의 유고 시를 두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작품이 작가 개인의 것인지, 모두가 공유해야 할 공적인 재산인지의 문제도 대두된다.
작가의 선택은?
스탠호프가 앨리슨의 유고를 엘사에게 넘겨주는 극의 마지막 장면은 자주적인 삶을 옹호하고 문학작품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글래스펠 자신의 생각을 보여 준다.
왜 이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나?
미국의 중요한 현대 극작가인데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현대연극의 특징들이 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나?
가족 간 갈등을 소재로 한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처럼 가족 사실주의 전통이 이 작품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공연은?
1930년 12월, 에밀리 디킨슨 탄생 100주년에 맞춰 ‘시빅 레퍼토리 테아트르(Civic Repertory Theatre)’에서 초연되었다.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2000년에는 뉴욕 민트 극단, 2009년에는 오렌지 트리 극장에서 호평 속에 리바이벌되었다.
작품의 독법은?
한 세기 전에 여성이 지고 살아야 했던 삶의 굴레와 멍에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던 선각자적인 여성 작가의 노력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놓칠 수 없는 한 장면은?
앨리슨의 유고 시를 불태워 버리려던 스탠호프가 앤과 엘사의 설득으로 “엘사를 위해…. 앨리슨으로부터”라는 대사와 함께 원고를 넘겨주는 장면이다.
엘사: 전 앨리슨 고모가 이 시들을 저를 위해서 쓰신 것 같아요.
스탠호프: 난 그녀가 나를 위해서 쓴 것 같은데.
엘사: 그렇다면 미래에 많은 다른 사람들도 “그녀는 나를 위해 이 시를 썼어”라고 말할 거예요.
스탠호프: 나는 느낀단다. 뭔가 옳은 것, 줄곧 너와 나 속에, 이 방에 홀로 있어야 했던 어떤 것, 그녀가 느끼면서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그녀의 세기에 되돌려준다고.
엘사: 하지만 그녀는 말을 했어요.
스탠호프: 그녀 자신만을 위해서지.
엘사: 그걸 어떻게 알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생명을 타고 태어난 것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돼요.
(스탠호프는 난로로 가 나무를 더 넣는다.)
스탠호프: 난 내가 너와 또 다른 일을 같이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너를 사랑했나 보구나. 그렇다면 그녀를 지켜 주렴. 나를 따라 줘. 이 방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이 방에서 끝나게 해 주자꾸나. 그게 옳아.
(그는 탁자로 가서 서류 가방을 잡는다.)
엘사: (그와 난로 사이에 서서) 아버지! 30년 전에 노래했던 새. (팔을 새처럼 펼친다.) 바람에 꺾인 꽃.
(그녀는 바람을 맞는 것처럼 몸을 숙인다. 시계 종은 12시를 울리기 시작한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듣는다.)
엘사: (눈물에 목이 메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버지.
스탠호프: (기계적으로) 새해 복…. (멀리서 마을의 종소리가 들리고 휘파람 소리와 축포 소리도 들린다. 그는 종소리를 들으며 방을 둘러본다. 그리고 엘사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네가 말한 것 때문이 아니야. 앤의 말 때문도 아니고. 그녀 때문이지. 그것은 간다. 가고 있어. 가 버렸어. 그녀는 작은 선물들을 만들기를 좋아했지. 그녀가 그녀의 세기에서 너의 세기로 선물을 하나 더 만들 수 있다면…. 그녀는 떠나지 않은 거야. 나머지는 너무…. 외로워. (그는 시들을 그녀에게 건네준다.) 엘사를 위해…. 앨리슨으로부터.
≪앨리슨의 집≫, 수전 글래스펠 지음, 이형식 옮김, 158∼160쪽
당신은 누구인가?
이형식이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다. 문학과영상학회 회장,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