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어순아가 옮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야간 비행(Vol de nuit)≫
밤에 관한 최초의 추억
야간 비행에서 지상은 하늘이 된다. 집에서는 불빛이 새어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오고 비행사는 가족의 저녁 식탁 대화를 듣는다. 하늘에는 길이 없다. 대지를 방랑하는 순례자처럼 야간 비행사는 별과 나침반 그리고 사유의 길을 걷는다.
저 멀리서 희망을 주는 약한 불빛을 따라 비행하고 있었지만, 그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에 ‘빠져나갈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소. 후방 날씨가 어떤지 알아봐 주시오’라고 끼적거린 쪽지를 무선사에게 주었다.
답변 쪽지가 그를 아연실색케 했다.
‘코모도로에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음. 폭풍우’라고 통보해 왔습니다.’
그는 폭풍우가 엉뚱하게도 안데스산맥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리라고 예측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시에 도달하기도 전에 태풍이 먼저 도시를 휩쓸어 버릴 것이다.
‘산안토니오의 날씨를 물어보시오.’
‘산안토니오에서는, ‘서풍이 일고, 서쪽에 태풍. 하늘 전체가 온통 구름’이라는 회신이 왔습니다. 산안토니오 쪽은 잡음 때문에 잘 듣지 못합니다. 저 역시 잘 들리지 않습니다. 방전 때문에 안테나를 다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되돌아가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닥치고 바이아블랑카의 날씨나 물어보시오.’
≪야간 비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어순아 옮김, 79~80쪽
≪야간 비행≫을 다시 번역할 필요가 있었는가?
이미 많은 번역본이 있다. 생텍쥐페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작품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싶었다. 이 소설은 복종, 희생, 책임, 행동, 공익을 묘사한다. 강한 리더십으로 야간 비행을 개척하는 항공우편회사 이야기지만 사랑, 행복, 공포, 죽음, 영원성을 성찰한다. 인간의 근본 문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번역에 사용한 텍스트는 무엇인가?
갈리마르 출판사가 1996년에 부록 자료를 덧붙여 재발행한 ≪Vol de nuit, Préface d’André Gide≫다. 이미 1959년에 ‘생텍쥐페리 작품집’을 출판했다.
앙드레 지드가 쓴 서문도 작품의 일부인가?
작품의 주춧돌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야간 비행≫ 중에는 지드의 서문을 빼고 편집한 것도 많다. 프랑스에서는 1931년 첫 출판부터 이 서문이 수록됐다. 1959년에 출판된 ‘생텍쥐페리 전집’에서는 빠졌지만 1994년 재발행 때 부록에서 서문에 대한 설명을 밝혔다.
한국에서 ≪야간 비행≫은 언제부터 번역되었는가?
1975년 이경애, 안응렬 선생 번역이 처음인 것 같다. 그 후 조규철, 전채린, 민희식, 허희정, 배영란 선생이 번역했다. 하지만 지드의 서문을 싣지 않은 책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번역본은 안응렬 선생 것이다.
이번 번역은 지금까지 번역본과 무엇이 다른가?
≪야간 비행≫은 소설이지만 문체는 시와 같다. 상징과 은유가 풍부한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번역이 어려웠던 첫 번째 이유다. 다른 어려움은 ‘인간’에 대한 성찰의 묘사 장면이었다. 생텍쥐페리가 실제로 죽음과 직면한 극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깨달았던 내용이다. 이 느낌을 독자한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번 번역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은 무엇이었나?
작가가 직관으로 성찰한 사상을 묘사하는 것이 난제였다. 단어 해석만으로는 이해도 어렵고 전달도 어렵다. 작가가 비행 중에 깊이 명상하거나 전투기 옆으로 적탄이 날아오는 극한 상황 속에서 내면을 성찰하였다는 실제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죽음에 직면한 조종사의 의식을 어떤 방법으로 이해했는가?
그동안 명상 수련하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봤던 경험이 있다. 그 기억으로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물론 번역자의 편견이겠지만.
번역 기술에서 기존 번역과 이 책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원전이 프랑스어 동사 시제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린 문체라는 점에 주의했다.
프랑스어의 동사 시제는 이 책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나?
예를 들면 반과거로 서술하다가 단순과거로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조종석의 모든 계기판들을 어둠 속에서도 익숙하게 사용하거나 조작할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각종 스위치를 하나씩 켜며 손전등을 잡고 놓는 동작이다. 단순과거의 짧은 문장으로 나열했다.
시제 활용은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가?
문장을 짧게 끊어서 단순과거 효과를 높였다. 촉각적·시각적으로 생생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당신은 스스로 비행기를 조종한 경험이 있는가?
없다.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공군부대를 방문했다. 교관에게 자이로스코프에 대해 물어보았다.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보았다.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좁은 조종석에서 수많은 계기판과 전선을 보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비행기는 1930년대 것이 아닌가?
물론이다. 내가 경험한 조종석은 최첨단의 비행기의 내부다. 감정이입을 통해 작가의 심정과 비행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었다. 비행기 조종에 관해서는 자동차 운전 경험을 자주 활용했다.
이번 번역의 차별점을 확인할 수 있는 예를 하나만 제시한다면 어떤 것인가?
예를 들면 “Pourtant la nuit montait, pareille à une fumée sombre”는 조종사가 초저녁에 이륙하면서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어둠은 지상에서부터 시작되고, 집집마다 등불을 켜면 조종사에게 그 등불은 별이 된다. 그래서 밤이 올라오고 있다는 뜻으로 작가는 ‘monter’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이 문장을 “어둠이 깔리고, 어둠이 찾아들고” 하는 식으로 의역한 것을 자주 본다. 나는 이 소설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직역과 의역의 경계선을 넘으려 노력했다.
위의 인용문은 폭풍우에 갖힌 비행기의 내부 상황인가?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가던 우편기가 폭풍 구름대에 갇혔다. 파일럿 파비앵은 긴급 피난할 곳을 찾지만 사방이 막혔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고도 3800미터까지 상승, 구름대 위의 맑은 하늘로 피신한다. 곧 연료 부족에 봉착한다.
작품 출간 당시의 비행기 사정은 어떠했는가?
≪야간 비행≫은 앙드레 지드의 서문을 붙여 1931년에 출간했다. 그해 페미나 문학상을 받았다. 항공 산업 초창기, 우편물 수송을 위해 야간에도 비행기를 띄우던 때다. 이 작품은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2시 15분까지 일어나는 약 8시간 동안의 일이다.
당시 야간 비행은 어떤 일이었나?
1920~1930년대의 비행기는 지금에 비해 꽤 원시적이다. 당시 각국의 교통당국은 안전성을 이유로 야간 비행을 금했다. 야간 비행은 군사 분야에서만 허용되었다. “밤이 몰래 숨기고 있는 폭풍우와 안개와 온갖 장애물들을 향해서 시속 200킬로미터로 비행기를 날려 보내는 일은 군사비행에서나 허용될 모험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군사비행도 “맑은 날 밤에 비행장을 이륙해서 폭격하고 같은 비행장으로 되돌아”오는 식이었다.
이 작품에서 ‘밤’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밤’은 공간과 시간의 이미지로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생텍쥐페리는 어머니에게 ‘이 소설은 밤에 관한 최초의 추억’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우편물 배달보다는 밤이라는 무형 공간에 더 탐닉했던 듯하다.
리비에르는 실존 인물인가?
생텍쥐페리가 1926년에 툴루즈의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하여 상사로 모셨던 디디에 도라가 모델이다. 정기 항공로 개발에 참여했던 경험을 반영한 이 소설의 맨 앞에 헌사로 언급하는 그 사람이다.
리비에르는 어떤 인간 전형을 표현하는가?
시간이 없어 사랑도 못하고 동정도 받지 못하고 사업에만 몰두하는 비정한 인물로 묘사된다. 인간적인 고뇌를 스스로 삼켜야 하는 고독한 리더의 전형이다. 개인의 행복보다 사업을 중시하는 투철한 직업인이다.
리비에르는 어떤 성격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오래전부터 더 이상 행복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기로 하였다. 오로지 내 사업만을 생각하였다”라는 니체의 사상을 대변하는 듯한 사람이다.
당시 파일럿의 가족에게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
‘유럽행 조종사의 아내’와 ‘파비앵의 아내’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 아내는 자정에 일어나서 잠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밤하늘로 내보내거나, 남편이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꽃과 따뜻한 커피와 음식을 준비하고 맞이한다.
생텍쥐페리는 언제부터 비행기를 탔는가?
12세에 집 근처 비행장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21세에 입대, 스트라스부르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면서 조종사 면허를 획득한다. 23세에 첫 비행 사고로 예비역 중위로 제대한다.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정비사로 채용되고 툴루즈 항로 개척 책임자인 디디에 도라와 함께 정기 항공로 개발에 참여한다. 27세에 툴루즈-카사블랑카 간 정기 항로 조종사가 되고, 스페인령 서부사하라의 주비곶 비행장 책임자로 18개월 동안 근무한다. 이때 사막 환경에서 지냈던 특별한 체험은 생텍쥐페리의 철학적·문학적 사유의 근간이 된다.
실제로 그의 비행 사고 경력은 어떤가?
1933년, 라테코에르 비행기 제조회사의 시험비행사로 근무하던 중 수상비행기 사고를 당한다. 34세에는 베트남의 메콩강에 불시착하여 부상당한다. 35세 때 파리-사이공 간 비행기록 갱신에 도전하다 실패한다.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닷새 동안의 사투 끝에 기적적으로 구조된다. 이 극적인 이야기는 ≪인간의 대지≫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에 실린다. 38세 때는 뉴욕-남미 최남단 항공노선을 개척하기 위해서 1만 4000킬로미터 장거리 비행을 시도하다가 과테말라에서 이륙 중에 추락한다.
밤의 명상가는 현실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39세 나이에 공군 대위로 참전, 알제리 2/33정찰비행대에 합류한다. 이듬해 아라스 상공에서 피격된다.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으로 제대하고 비시 정권이 제안한 정부 관료직을 거절한다. 1943년 5월, 연령 제한으로 조종사 자격이 정지되었으나 지인의 도움으로 알제리 2/33정찰비행대에 복귀한다. 정찰비행 중 사고를 두 번 당한 후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다음 해에 복직을 간청하여 5회 이상 비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2/33비행대에 복귀했다. 그러나 그해 6∼7월에만 8회나 비행을 나갔다. 1944년 7월 31일 비행기를 타고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순아다.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