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보프스키와 대령
독일희곡/ 화해의 조건
프란츠 베르펠의 신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Jacobowsky und der Oberst)≫
베르펠의 ≪야코보프스키와 대령≫은 독일어로 쓴 가장 훌륭한 희곡이라는 명예를 얻는다. 프라하의 독일 문학은 그와 또 한 사람, 카프카에 의해 완성된다.
영원한 유대인: 비스바덴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어요. 독일인들이 프랑스 대부분과 해안 전체를 점령할 거예요. 우린 지금 시간이 없어요. 벌써 선발 부대가 시청에 도착했어요. 포로 교환 명부와 함께!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야코보프스키: (이마를 닦으며) 두 가지 가능성이라….
영원한 유대인: 하나는 프랑스 시내로 들어가는 거죠. 그건 좋지 않아요! 아니면 이룬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바욘에서 비자를 얻는 거죠….
대령: 그리고 생장드뤼즈…. 위급한 경우에는….
영원한 유대인: 누가 알겠어요? 바다는 언제나 수수께끼 같아요….
마리안: (눈물을 머금은 채 성 프란체스코 앞으로 간다.) 신부님! 전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요. 전 프랑스 여자예요. 죄 많은 인생을 살고 있어요. 이미 오랫동안 미사를 보지 않았고 고해도 하지 않았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게 축복을 내려 주시겠어요?
성 프란체스코: 내 딸, 프랑스 여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겁니다. 그 죄는 악의가 아니라 신심이 약한 데서 비롯된 거니까요. 얼굴을 보니, 당신은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겁니다, 프랑스 여인이여!
(강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영원한 유대인: 돌풍이오! 자 내 말을 믿겠지요. 신부, 바욘으로 갑시다! 우리가 떠날 시간이오….
(두 사람이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퇴장한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져서 음식을 쌌던 종이들이 무대 위에서 소용돌이친다.)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란츠 베르펠 지음, 김충남 옮김, 134~135쪽
어떤 장면인가?
종교 화해라는 주제 의식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르펠은 수십 년 동안 유대교와 가톨릭교의 불가분 관계를 설파했다. 스스로도 ≪베르나데트의 노래≫ 성공 이후 차츰 유대 사상에서 가톨릭으로 옮겨 갔다.
≪야코보프스키와 대령≫은 어떤 작품인가?
종교와 세계관이 다른, 모든 면에서 대조되는 두 망명자 야코보프스키와 스테르빈스키의 유랑을 탁월한 유머와 아이러니로 그려 낸 드라마다.
이 작품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베르펠은 독일군을 피해 도피 중인 유대인의 모험 이야기를 망명 은행가인 슈테판 야코보비츠에게 직접 들었다. 이 모험담에 자신의 도피 체험을 담아 희곡을 완성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1940년 독일군 침공으로 혼란에 빠진 프랑스다. 유대인 야코보프스키와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스테르빈스키 대령이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한다. 야코보프스키는 차를 가졌지만 운전할 줄 모르고 대령은 운전할 줄 알지만 이동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피난길에는 당번병과 대령의 연인 마리안도 함께한다.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데다 독일군 추적까지 따돌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야코보프스키는 매번 기지를 발휘해 위기의 순간에 기적을 만들어 낸다. 반목을 끝내고 극적으로 화해한 두 사람은 함께 프랑스를 탈출하는 배에 오르고 조국에 남기로 한 마리안이 이들을 전송한다.
마리안은 왜 탈출하지 않는가?
유대인 야코보프스키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그녀는 고통 받는 이들을 두고 조국을 떠날 수 없다며 대신 승리하고 돌아올 대령을 기다리겠다고 맹세한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구국의 화신이자 프랑스 자유의지의 상징처럼 보인다.
두 남자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야코보프스키는 유대인이고 대령은 비유대인이다. 둘은 똑같이 독일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는 처지지만 최후 심판의 날까지 고통 받을 운명인 유대인은 결코 히틀러가 될 수 없는 반면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비유대인은 언제나 히틀러가 될 수 있다.
결정적 차이가 화해할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인가?
살고자 하는 의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시적이고 낭만적인 감정, 기사도 정신이라는 공통점이 두 사람을 결합시킨다.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생명을 건 탈출에 성공한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화해할 수 있는가?
야코보프스키와 대령의 대립은 유대교와 기독교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다. 두 사람의 화해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며 대립하던 유대교와 기독교가 언젠가는 접점을 찾게 될 거라는 암시다. 두 종교를 상징하는 ‘영원한 유대인’과 ‘성 프란체스코’가 이인승 자전거를 타고 등장해 이 같은 비유를 뒷받침한다.
이인승 자전거가 의미하는 바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화해, 헤어진 것이 재결합하는 유토피아를 상징한다.
‘독일어로 쓴 가장 훌륭한 희극’이라는 평은 정당한가?
‘베르펠 후기 작품 중 최고작’, ‘독일 망명문학 중 국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탁월한 드라마’라는 평도 있다.
무엇이 그렇게 훌륭하다는 말인가?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의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두 가지 극적 표현을 종합했다. 생명을 건 도피, 망명이라는 비극적인 소재를 절묘한 희극적 터치로 갈무리하는 식이다.
이 작품에 극적 요소는 없는가?
야코보프스키의 낙천적인 기질과 재기 발랄함 때문에 도피와 전쟁에 대한 공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대령의 우스꽝스러운 영웅 심리에 대한 풍자도 웃음 포인트다. 이런 코미디 요소는 일상적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절망적인 현실을 견디기 위한 비장의 수단이다.
어디서 처음 공연되었나?
샘 베어맨이 각색해 1944년 3월 뉴욕 마틴벡극장에서 초연했다. 이 공연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1947년 이후에는 방송극, 영화, 텔레비전 영화로도 방영되었다.
미국에서 먼저 공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베르펠은 ≪베르나데트의 노래≫가 미국 서적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무대에서도 이어 가고자 했다. 미국인 기호에 맞는 상업적인 작품을 쓰겠다는 인식이 있었으며,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미국 공연 성공을 위해 영어 번역자와 각색자를 신중하게 골랐다.
각색에 충돌은 없었나?
베어맨은 대중성과 상업성을 고려해 ‘영원한 유대인’과 ‘성 프란체스코’가 등장하는 장면을 삭제했고 베르펠은 이를 못마땅해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결합, 화해라는 작품의 기본 구상을 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란츠 베르펠은 누구인가?
체코 프라하 출신 시인, 극작가, 소설가다. 릴케, 카프카와 함께 프라하의 독일문학을 꽃피워 세계문학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어떻게 살다 갔나?
체코 프라하에서 부유한 유대 상인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계 유대인이 모여 사는 문화 공간에서 성장했다. 카페 아르코에서 브로트, 카프카 등과 친교를 맺었다. 첫 시집 발표 이후 승승장구하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지만, 나치 집권으로 도피길에 오른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고, 1945년 일요일 오후, 비벌리힐스 자택 서재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카페 아르코’가 무엇인가?
1907년에 문을 연 문학 카페다. 당시 프라하 독일 문학 구심점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부터 중반까지 수많은 독일 작가들이 활동하면서 프라하에서 독일 문학을 꽃피웠고, 그 결실인 카프카, 베르펠, 마이링크, 릴케의 시와 소설은 현대 독일문학과 세계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독자와의 공감대는 어디서 찾아지나?
야코보프스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분별력과 유머를 잃지 않고 실패와 성공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끝내 성공을 끌어낸다. 그의 이런 낙천적인 사고가 독자에게 감동과 용기를 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충남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봉직했다. 지금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