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의 힘
<419특집> 혁명 이야기 1. 약한 사람을 강하게 만든 것들
장희창이 옮긴 아나 제거스(Anna Seghers)의 ≪약자들의 힘(Die Kraft der Schwachen)≫
혁명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주먹으로 총을 이기겠는가? 학교가 군대를 이기겠는가? 노예가 주인을 이기고 청년이 장년을 이기고 노동이 자본을 이기겠는가? 모순을 인식하고 분노를 느끼고 사랑을 실천하면, 이겼다.
“에른스트는 여기 있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 없어요. 에른스트가 보낸 마지막 편지가 아마도 전달되지 않은 것 같군요. 그는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슈바이게르트 부인이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무엇 때문에?”라고 반문했을 때, 그는 그녀가 그가 전하는 정보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와 에른스트 슈바이게르트를 포함한 동료들이 왜 국제여단에 참여해 스페인 공화국을 위해 싸우기로 결의했는가를 말해 주려고 애를 쓰면서 쉽고 적당한 말을 찾았지만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마디만이라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고통스런 긴장뿐이었다. 그녀가 거듭 물었다.
“어떻게 해서? 무엇 때문에?”
<어머니>, ≪약자들의 힘≫, 아나 제거스 지음, 장희창 옮김, 31~32쪽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스페인내전 상황이다. 인민전선을 위해 싸우는 국제여단에 가담한 아들의 소식이 끊기자 슈바이게르트 부인은 독일에서 프랑스 툴루즈로 온다.
왜 스페인으로 안 가고 프랑스로 갔나?
아들에게 받은 편지 소인에 툴루즈라고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아들을 만났는가?
아들은 이미 스페인으로 떠났다.
스페인까지 쫓아가는가?
갔으나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 아들은 전사했다.
아들의 전사를 확인한 어머니의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
야전병원에 남아 부상병을 돌본다. 그러고는 프랑코 군대를 피해 죽은 아들의 친구를 따라 남아메리카로 간다.
왜 어머니가 아들의 길을 따르는가?
한국 현대사에서 자식의 뒤를 이어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의 부모들을 생각해 보라. 자식의 희생을 통해 부모들이 파시즘 체제의 모순을 자각한 것이다.
이 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모두 아홉 개의 짧은 이야기 모음집이다. <안내자>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 정복자들을 험준한 산으로 유인해 함정에 빠뜨리는 소년의 이야기다. <갈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탈영한 독일 병사를 숨겨 준 착하고 용감한 처녀 이야기다. <대결>은 히틀러 체제에서 투쟁에 매진하다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겪어야 했던 난관을 극복하는 의지의 혁명가들 이야기다.
허구인가, 사실인가?
허구다. 그러나 사실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도 있다. <예언자>의 주인공 슈테판이 프랑스 파리에서 집필 활동을 하는 것은 레닌의 청년 시절을 재구성한 것이다.
<예언자>는 어떤 이야기인가?
열다섯 살부터 기사를 써서 명성을 날린 슈테판이 파리에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나치 수용소에 갇힌다. 어느 날 수용소 사령관이 그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 있으니 3년 뒤의 유럽의 형세를 기록하라고 지시한다.
뭐라고 예언하는가?
히틀러의 권력은 재론의 여지없이 명백히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죽는다.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뭔가?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약자다. 이들이야말로 역사를 이끌어 간 주체였음을 증언한다. 말없이 행동하는 인간들, 어떠한 역사도 남기지 않는 민중의 저항을 기록한다.
아나 제거스는 누구인가?
동독의 사회주의 노선을 대변했던 작가이자 국민 영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를 피해 프랑스, 멕시코로 망명했다. 1946년 동독 베를린으로 귀환했다.
서독은 그녀를 어떻게 보았는가?
공산주의자니 사회주의자니 하며 그녀를 배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그녀의 작품을 수용하는 폭이 점차 확대되었다. 1977년에는 서독에서 제거스 문학 선집이 열 권으로 출간되었다.
서독에서 그녀의 작품을 인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로운 땅에서 평등한 삶을 실현하려는 의지는 동서독을 넘어 인류 보편의 이상이다. 사회 평등을 이루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진보적인 작가들이 동독으로 넘어갔다. 그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녀에게 예술은 무엇인가?
현실 변혁의 도구다.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파시즘을 극복하고 피억압 민족과 약자들을 해방하려 한다. 그녀의 작품은 사회 변혁을 예술의 본질적 기능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전형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희창이다. 동의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