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연극은 학습인가?: 문화예술 경험에 대한 평생교육학적 해석
연극, 평생학습 신간 ≪어떻게 연극은 학습인가?≫
사람은 어떻게 변하나?
김경애는 극단을 연구했다. 연극은 상황을 조성하고 등장 인물의 삶을 산다. 참여자들은 기억하는 어떤 세계를 모방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세계를 창조한다. 행동은 개인이지만 작업은 공동이다. 실존부터 사회까지 그들은 또 하나의 삶을 경험한다. 그러고나서 자신의 변화를 깨닫는다. 여기 학습이 있다. 배움은 삶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연극은 학습인가?≫라는 책 제목은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연극’ 활동이라 생각하는 일을 ‘학습’ 과정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설명 방식을 제시했다.
어떤 책인가?
연극은 공연예술이다. 그런데 연극 과정에서 연기자들은 배우고 변한다. 이 책은 그 배움과 변화의 과정을 포착했다.
교육학에서 이런 접근이 이전에도 있었나?
적어도 평생교육학자들은 끊임없이 일상에서 학습을 읽어내고자 노력해 왔다. ‘학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것들을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학습이 아니었던 것을 학습의 눈으로 연구한 다른 사례는?
불치병 때문에 하루아침에 인식이 변하는 것을 ‘관점전환학습’이라고 이론화했고, 일상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변화하는 것을 ‘경험학습’이라는 논의를 통해 발전시켜 왔다.
평생교육학 영역에서 문화예술 경험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인가?
‘최초’인지는 모르겠다. 문화예술 경험을 두껍게 묘사하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연구인 것은 맞다.
왜 ‘연극’을 선택했나?
연극은 종합예술이다. 인간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장르다. 작품 창조에는 경험의 의미화가 압축되어 있다. 연극은 앙상블을 추구하는데, 그 과정이 역동적이고 흥미로워 참여자들이 또다시 참여하기를 원하는 공동경험이다. 학습자 개인에게 충만하면서 동시에 집단으로도 충만한 학습 양상을 보여 줄 수 있는 적격 사례였다.
‘학습’이라는 관점의 접근은 어떤 강점이 있나?
학습을 이해하면 그 사람이 왜, 어떻게 지금 이 모습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삶은 경험으로 점철된다. 그 경험을 통해 사람은 변한다. 이 변하게 하는 과정의 비밀을 ‘학습’을 포착하면서 알 수 있다.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떻게 내가 되었는지? 메커니즘을 알면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더 잘 배울 수도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평생교육 연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
일상의 곳곳에 편재해 있는 활동 속에서 학습의 양상을 읽어 내고 이를 이론화하는 것은 평생교육학의 본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극적인 공동경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학습현상을 ‘공조학습’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설명함으로써 학습이론의 지평을 넓혔다. 이는 교육학의 영역과 설명력 또한 확대한다.
‘공조학습’이란 무엇인가?
개인과 집단에 일방적으로 환원되지 않고, 개인 학습자에게 충만하면서 동시에 집단적으로도 충만한 학습 양상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학습자들이 자신의 경험세계를 공유해 통일된 경험을 직조하는 가운데 하나의 유기체의 일부인 것처럼 기민하게 호흡을 맞추게 되는 과정에서 각자의 경험과 공동체 경험이 재구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 경험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흔히 학습은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설명된다. 집단학습에 관심을 가지지만 ‘공동성’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학습에 공동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은 상당 부분 간접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과서가 대표적인 간접경험 매개체이다. 학습자는 간접경험을 통해서 자기경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험세계에 들어감으로써,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한 학습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간접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학습자에게 ‘죽은 텍스트’이고 ‘박제화된 지식’이라는 점이다. 교육학에서는 직접경험의 생생함, 전인적 참여성, 맥락성을 살리며 간접경험을 겪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때, 공조학습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간접경험을 생생한 직접경험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있다. 스스로 그 상황 속 인물 ‘되기’를 통해 접근하는 공감적 앎이라는 공조학습의 방식을 생각해 보자. 학습자는 상상력을 동원해 작자의 원래 경험, 즉 텍스트 혹은 예술품으로 형상화된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 작품의 맥락 속에서 그 사람이 ‘되어 봄’으로써 공감한다. ‘대화’를 통한 접근을 넘어선다. 간접경험을 통해서도 직접경험의 전인적 지식과 의미화를 생성할 수 있다.
연극에서 발견한 학습 기회는 어떤 것인가?
인격적 관계를 통한 공감, 관계를 통한 자기 혁신 방법, 몸학습, 공동체 일원이 되는 방법, 창발적 학습, 성찰의 여섯 가지 차원, 몸으로 가능한 모든 소통 방식의 의미, ‘타인되기’를 통한 ‘내가 되기’의 과정, 몸 바꾸기를 통한 마음 변화, 간접경험의 직접경험화, 자기 호흡 인식을 통해 깨어 있는 삶 등.
기회는 학습자를 어떻게 바꾸게 되는가?
이런 과정이 일어난다. 꼼꼼히 얘기하면 이렇다.
1) 사람은 타인과 인격적 관계를 통해 온몸으로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다.
2) 사람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이전 경험을 발굴하고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구성할 수 있다.
3)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면 관계의 양쪽 당사자가 함께 변화하고, 이러한 변화와 성장을 서로 지켜보는 만족감은 공조를 더욱 촉진한다.
4) 공동체 일원은 저절로 단번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자신의 기존 경험의 유산을 발굴해 해체함으로써 시작되고, 타인의 경험세계를 적극적으로 공감함으로써 전개된다. 이렇게 상호 경험의 발굴과 파괴를 융합과 창발로 진화시키면서 공동경험을 구성할 때 비로소 공동체 일원이 된다.
5) 공동경험 속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해석하고 반응하면서 일련의 행위이 도미노처럼 창발된다.
6)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근거리부터 원거리까지 다양한 준거에 비추어 보면서 성찰할 수 있다.
7) 경험의 암묵적 질성을 공유하기 위해 언어뿐 아니라, 몸으로 가능한 모든 소통 방식을 매개로 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8) 연기는 결국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으로 나오고, 연기자가 되는 과정은 ‘타인되기’를 통한 ‘내가 되기’의 과정이다.
9) 호흡을 통해 ‘살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숨을 인식하는 순간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며, 역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 순간부터 일상의 맥 놓은 태도와 달라진 연기적 태도가 가능하다.
10) 몸을 통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비슷한 몸 상태를 만들면 이에 맞는 생각과 느낌을 찾을 수 있다.
‘경험’과 ‘경험학습’의 중요성을 언제 발견했는가?
학습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습생활, 학습사에 대해 공식적인 형식교육 졸업장이 밝혀 줄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선배의 모습은 그들이 받은 학교교육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다양한 영역에 걸친 수준 높은 그들의 역량은 함께 작업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방법, 어떻게 그러한 역량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이 경험이 필자를 ‘경험’이라는 주제어로 이끌었다.
경험학습과 예술 경험의 관계는?
실상 경험이라는 용어만큼 학습의 많은 측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경험학습론 분야는 교육학 이론이 미치지 못하는 황무지처럼 보였다. 경험학습은 필자의 탐구열을 불태우는 주제가 되고도 남았다. 경험학습을 연구하는 데 가장 좋은 분야는 예술적 경험이다. 예술적 경험은 교육적 경험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기 때문이다.
극단 예단은 공동생활을 한다. 이 점이 연구대상 선택의 기준이 되었나?
연극은 공동작업이다. 어떤 극단을 봐도 공동경험의 양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동생활까지 하는 극단이라면 ‘공동성’의 극단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 줄 수밖에 없는 최고의 사례가 된다.
이 책의 내용은 보편 결론인가? 문화 예술은 특수 경험 아닌가?
이 질문은 책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직접경험을 통해 절절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간접경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연기자들은 작품 속 인물 ‘되기’를 통해서 그 인물의 삶의 절절함을 자기 것으로 체화한다. 필자는 ‘연기자 되기’를 시도해 이들의 경험을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분석했다.
어떻게 개입했나?
이들은 대도시에 극장을 가지고 있고, 지방 소도시에 폐교를 개조해 연극촌을 만들어 함께 살면서 공연한다. 신입 연기자들이 대도시에서 출퇴근하면서 진행했던 8주간의 연기자 훈련 과정을 관찰했고, 합숙하는 연극촌에서는 연기자들과 같이 한 방에서 자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초기에는 집중적인 현장 방문이 이루어졌으나, 이후 집필 과정에서 부족한 것이 발견되거나 극단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추가 방문을 했다. 전체 현장자료 조사기간은 1년 4개월이었다.
무엇을 보았나?
한 여자 연기자와 인터뷰를 해보니 용어나 말투가 다른 남자 연기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두 분 사귀시냐고. 얼굴이 벌게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연극 배우의 경험이 일반 학습자들에게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나?
과학자들도 공동연구를 한다. 축구나 농구 등 팀워크로 수행하는 스포츠도 많다. 기업에서는 일상이 협력적 작업으로 점철된다. 이 책에서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개인이 만나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유기체의 부분이 된 것처럼 호흡을 맞춰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의미인가?
사람에 따라 지금의 경험을 학습하고 변화하는 방향과 방식이 다르다. 문화예술교육은 일상의 경험을 학습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장이다. 학습자로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문화예술 경험으로 스스로 인도해 보는 것은 괜찮은 전략이다.
왜 지금까지 평생교육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지 않았나?
평생교육은 비교적 신생 학문 영역이다. 앞으로 연극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교육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예술 경험 속에서 단계, 원리, 방법, 구조 등을 찾아내 설명할 수 있으면 그만큼 인간의 학습에 대한 이해를 구체화할 수 있다. 그 방법론적 시사점이 교육 실천의 다양한 차원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인가?
연기자들과의 만남도, 그들의 생활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작업도, 그리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작업도 필자에게는 가슴 벅찬 환희의 순간이었다. 그들이 각종 껍데기를 벗고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찾아가며 전력투구를 접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연극하듯이 사는 일상’, 순간순간의 작은 일상을 의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은 하나의 삶의 지표가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김경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