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신화
언어의 ‘동음이의성’은 모든 신화의 원천이다. 뮐러가 이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예들은 자신의 연구 방법의 특색을 잘 보여 준다. 예컨대 그는 데우칼리온과 피라의 전설을 든다. 이 두 인물은 인류를 멸망케 한 대홍수 때 제우스한테 구출된 뒤 돌들을 주워 올려 힘껏 멀리 던졌는데, 그 돌들이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언어와 신화≫, 에른스트 카시러 지음, 신응철 옮김, 8∼9쪽
돌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신화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뮐러는 동음이의성으로 설명한다. 그리스어에서 돌과 인간은 각각 라아스(λα̃ας)와 라오스(λαòς)다. 뜻은 다르지만 비슷한 음을 내는 두 단어를 연결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의 여러 신화를 언어와 연관해 해석한다.
언어와 연관해 어떤 신화를 해석하는가?
다프네 신화다. 다프네는 구애하는 태양신을 피해 월계수로 변신한 요정이다. 월계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다프네(δάϕνη)의 어원은 새벽의 붉은 기운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하나(Ahanâ)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뮐러는 월계수와 새벽이 동일하다는 논리적 필연성에 주목했다.
어원에 주목한 이유가 무엇인가?
신화가 적극적 창조 능력이 아닌 언어의 애매성이라는 결함에서 탄생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기 때문이다.
카시러는 뮐러의 주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의 주장을 따르면 인류 문명의 역사는 낱말과 용어의 단순한 오해와 그릇된 해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카시러는 비교신화학, 정신분석학, 철학 등에서 행한 기존 신화 해석을 비판한 뒤 독자적 신화관을 내놓았다.
기존 신화 해석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신화의 모든 대상과 동기를 한 가지 유형으로 해석한다. 비교신화학은 이론화할 수 없는 신화의 관념을 통일하고 이론화한다. 프로이트는 신화가 만들어 낸 모든 것이 성욕의 여러 변화상이라고 주장한다. 철학은 신화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며 실재를 위한 거짓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카시러는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
신화의 동기보다는 기능을, 내용보다는 형식을 탐구했다. 신화적 사고의 주제, 주장과 동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기능과 형식을 탐구해서 무엇을 얻었나?
추상화하고 분석하여 분리하는 과학과 달리 신화가 정서에 근거해 서로 얼굴을 맞대는 상모적(相貌的) 세계관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혀냈다.
상모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대상을 감정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신화에는 언제나 희로애락의 분위기가 있고, 돌이든 태양이든 모든 대상은 “다정하거나 악의에 차 있으며, 우애적이거나 적의를 가졌으며, 친밀하거나 무서워서 기분 나쁘며, 또는 마음을 끌고 황홀하게 하는 것이 아니면 징그럽거나 위협적이다”.
언어는 신화와 어떤 관계인가?
“가까운 친척”이다. 신화는 언어의 상징 기능을 이용해 정서를 객관화한다. 둘은 상징 형식을 대표한다.
상징 형식이 뭔가?
인간의 원천적 행위인 언어·신화·종교·예술·과학 등 흔히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징적 동물인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형성하기 위한 근본 형식이다.
인간을 상징적 동물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상징을 통해 단순한 자연적·생물학적 상태를 벗어나 정신적·문화적 단계로 이행하며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어떤 철학자인가?
20세기 문화철학의 창시자다. 초기에는 칸트 철학에 몰두했고, 중기에는 칸트의 방법론을 문화에 확대 적용해 문화철학을 수립했으며,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후기에는 문화철학을 사회와 역사에 도입했다.
카시러 철학에서 이 책, ≪언어와 신화≫의 자리는 어디인가?
중기에 위치한다. 세 권으로 구성된 주저 ≪상징 형식의 철학≫의 방대한 논의가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신응철이다. 대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다.
2781호 | 2015년 10월 28일 발행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신응철이 옮긴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언어와 신화(Sprache und My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