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김명화가 해설한 윤영선 작 ≪여행≫
죽음은 얼마나 심각한가?
누구도 웃지 않는다. 잡스런 생각도 스스로 거두고 숨소리도 조심한다. 얼마나 흘렀을까? 죽음은 산 사람의 것이 된다.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죽음은 산 사람 속에서 다시 시작한다.
누이: (태우에게) 그러고 보니 오빠 얼굴 참 많이 상했소. 옛날에 얼마나 예뻤는데. 그 얼굴 다 어디 가 버렸을까.
태우: 그렇게 많이 변했어?
양훈: 그럼. 그전에 기집애 같았잖아.
만식: 순둥이였지….
누이: 결혼은 했고?
태우: 그럼.
누이: 애들은?
태우: 아들하고 딸 하나.
누이: 아이구, 이쁘겠다. (사이) 참,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러 버렸네. 그 이쁘던 오빠 얼굴도 이제 많이 늙어 버렸고, 나도 살다 보니 어느 사이에 엉덩이에 살찌고 뱃살 늘어나고 이렇게 술 담배 다 하는 처녀가 되어 버렸고….
만식: 지금도 예뻐.
누이: 아이구, 내가 그 말에 속아 넘어갈 나이요?
대철: (분위기를 띄우려고 과장되게) 정말이야. 지금도 예뻐. (모두, 웃음)
≪여행≫, 윤영선 지음, 33∼34쪽
상갓집 분위기 같은데 맞나?
죽은 친구의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이다. 평범한 듯한데 실제로 객석에서 보고 듣고 있노라면 묘한 감흥을 주는 장면이다. 오빠는 죽었고 곱디곱던 소녀가 거친 중년 여인이 되었다. 소복을 입고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물고 한때 좋아했던 오빠 친구와 이야기 나눈다.
어떤 느낌이었나?
덤덤하고 쓸쓸하고 복잡했다.
상갓집 이야기인가?
경주가 간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등학교 동창들이 장례식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 모인다. 기차 안, 장례식장, 화장터와 관광버스 안, 터미널로 공간이 이어진다.
죽음을 타고 가는 여행인가?
역과 기차, 버스는 모두 제목인 ‘여행’과 관련 있다. 이들 공간은 여행처럼 세상에 왔다 사라지는 우리들 인생의 메타포이고, 일상인 삶과 비일상인 죽음을 형상화했다.
어느 것이 삶이고 또 죽음인가?
역과 기차 안, 버스 안은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고 상갓집과 화장터는 죽음의 공간이 된다.
일상과 비일상의 오디세이라는 말인가?
인물의 여정은 서울역이라는 일상에서 출발해 죽음의 공간인 상갓집과 화장터를 거쳐 다시 버스를 타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극은 어떻게 전개되나?
양훈, 대철, 태우, 만식, 상수의 대화로 극이 흘러간다.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가?
우리는 구분하는 데 익숙하다. 삶과 죽음, 자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일상과 비일상으로. 하지만 이 작품은 어깨에 힘을 뺀 듯 시시하게 일상을 펼쳐 놓다가 문득 두 세계를 넘나들고, 그 경계에 관객을 불시착시킨다.
왜 불시착인가?
관객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삶과 죽음 어느 한 곳이 아니라 그 경계에 떨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이 언어가 가진 야성의 힘이다.
언어가 가진 야성의 힘이 뭔가?
어느 포럼에서 작가가 직접 한 말이다. 우리들의 삶은 틀 안에서 경계를 나누고 단정하게 구획을 짓는 일에 익숙하다. 언어는 그 경계를 뛰어넘는 야성을 가지고 있다. 윤영선은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야성을 질서 속에 가둘까 봐 후기로 가면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지 않으려고 했다. 연출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틀에 갇히게 되니까.
작가 윤영선에게 삶과 죽음은 무엇이었나?
모든 작가에게 삶과 죽음은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그 주제가 강렬하게 부각되는 순간이 있다면, 윤영선의 작품에는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런데 그것이 초기에는 실험적이고 관념적인 형식으로 빚어졌다면, <여행>은 그의 작품이 아닌 것처럼 편안하고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단단하고 서늘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이 작품은 윤영선이 친구를 문상한 뒤에 쓴 작품으로 알고 있다.
당신은 왜 이 작품을 추천했나?
윤영선의 후기작이다. 초기작들과 달리 많은 것을 비워 낸 담백함 속에 존재의 심연을 성찰했다. 그의 작품 중 연극계에서 가장 많은 인정을 받았고 대중과 소통에도 성공했다.
대중과 소통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편성이 있었고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였다. 윤영선은 연극 언어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 작품도 많이 썼지만 또 반대로 사실적인 경향의 작품도 쓰곤 했다. ≪여행≫은 후자에 속한다.
2005년 초연은 어떤 상황이었나?
소박한 몇 개 소품 말고는 아무 장식이 없는 헐벗은 무대에서 진행되었다. 이성열이 연출을 맡아 극단 백수광부 워크숍으로 초연했다.
반응이 궁금하다. 어땠나?
이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공식 초청되었고, 국내에서는 연극평론가협회에서 발표하는 공연베스트 3에 선정되었다.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작품상과 희곡상을 수상하면서 이후로도 여러 차례 재공연했다.
‘나무 윤영선 꽃’은 작가의 다른 이름인가?
임종 직전에 스스로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다. 작가는 나무를 사랑한 반면 세상의 동물성을 잘 견뎌 내지 못했다.
세상의 동물성은 어떤 것을 말하나?
폭력, 전쟁, 권력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세상의 동물성을 응시하면서 존재 내면에 자리 잡은 설명할 수 없는 균열과 심연을 포착하려고 했다. 초기에는 특히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런 경향은 후기로 갈수록 유연해졌다.
간암으로 별세한 것이 2007년인가?
그해 8월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후배들이 지속적으로 추모 행사를 개최하며 고인을 기리고 있다. 2012년에는 작가 5주기를 추모하는 ‘윤영선페스티벌’이 열렸다. 후배 연극인 손호성이 극장 로비에 작가가 좋아했던 보드카를 갖다 놓고 원하는 관객들이 마시게 했다. 덕분에 추운 겨울날 나도 보드카를 한잔 얻어 마셨다.
그 후배 연극인들이 누구인가?
작가는 생전에 프로젝트그룹 파티를 결성해 활동했다. 그 동인들이다. 현재는 각자 독립된 극단을 이끌고 있다. 백수광부의 이성열, 그린피그의 박상현, 코끼리만보의 김동현, 무대 디자이너 손호성, 조명 디자이너 김창기 등이다. 그 밖에도 윤영선 작가를 좋아했던 배우들과 동료들이 기꺼이 추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윤영선은 어떤 작가였나?
개성이 강한 작가였다. 그는 안정적인 글쓰기를 하지도 않았고, 어떤 경향에 명확히 편입되지도 않는다.
한국 연극에서 그의 의미는 무엇인가?
형식에 대한 열린 시선으로 극작 초기에는 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했다. 내적 의식의 흐름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 반영되기도 했다. 이런 작업이 한국 연극의 다양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윤영선은 누구인가?
대부분 술자리 기억들이다. 다변이었고 권위적이지 않았고 아이 같았다.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웠다. 그가 토지문학관에 나타나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글쓰기를 멈추고 그와 함께 매일 술을 마셨다는 풍문도 들은 것 같다. 백지를 꺼내 들고 4B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그림을 그려 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신은 누구인가?
극작가 김명화다. ≪돐날≫, ≪침향≫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