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작품집
2519호 | 2015년 4월 1일 발행
주인공 X, 대한민국 지식인의 정체
방민호·권채린이 엮은 ≪염상섭 작품집≫
주인공 X, 우리 지식인의 정체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 곧 X는 광기를 존경한다.
내면의 절망은 현실의 길을 잃고 소외, 반복되는 죽음 충동을 경험한다.
자유 의지와 권한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 식민지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 누가 말하고 있나?
김창억이다. 조선 사람은 조선말을 중시해야 한다며 변사처럼 열중해서 떠들고 있다. 그는 주인공 X가 여행 중에 만난 인물이다.
여행의 목적은?
술과 담배로 무질서한 생활을 하다 피로와 무기력에 빠졌다. 그런 차에 친구 H가 평양 여행을 권했다. X는 “어대던지 가야 하겟다”는 생각에 바람을 쏘이러 나섰다.
X는 김창억을 어디서 만났나?
친구 H와 기차를 타고 대동강에 갔다가 다른 친구 Y, A가 사는 남포로 옮긴다. 여기서 김창억을 처음 본다.
만남의 연유는?
이들은 자기들이 지식인이라고 대낮에 위스키를 기울이며 허황된 이야기를 일삼는다. 그러다가 근처에 ‘광인’, ‘비상한 공상가’가 산다는 얘기가 나온다. X는 그의 인생 내력에 관심이 생긴다. 만나러 간다.
김창억의 비상한 공상이란?
절대적 자유와 세계 평화를 도모해 ‘동서친목회’를 만들겠다고 하며 유곽 뒤편에 3층 원두막을 지어 칩거한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 3원 50전으로 3층집을 지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비상해진 이유가 뭔가?
유복한 가정에서 총명하게 자란 김창억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보통학교 훈도가 된다. 그때 3·1 운동이라는 ‘불의의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옥에 갇혔고, 4개월 뒤 나와 보니 아내는 가출해 창녀가 되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김창억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몽환의 세계에 빠진다.
그에 대한 X의 태도는?
연민과 함께 외경심도 느낀다. 그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출구이자 이상적인 ‘승리자’라 생각한다.
뭐가 승리란 말인가?
심리를 들여다보면 둘은 쌍생아다. X가 식민지 상황이라는 현실의 중압감에 억눌렸다면, 김창억은 현실의 압력을 ‘광기’라는 방식으로 초월한다. 김창억은 현실로 외화되어 투영된 X의 내면 풍경이다.
X의 내면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중학생 때 보았던, “해부(解剖)된 개고리가 사지(四肢)에 핀을 박고 칠성판(七星板) 우에 잣바진 형상(形狀)”이다. 피로, 권태, 절망에 휩싸여 있었다.
개구리는 무엇인가?
반복적인 강박과도 같은 죽음 충동의 발현이다. 이것은 자유 의지와 권한을 상실한 당대인의 존재 자체를 상징한다.
주인공과 개구리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확실치 않다. 소설은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표지들을 지우거나 희미하게 남긴다. 불안과 고뇌의 정체를 짐작할 만한 객관적 정황은 별로 없다. 그래서 평론가 김윤식은 “생활 문제와 관련이 없는 자리에서 비로소 내적 고민이 문제되는”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소설사적으로 매우 낯선 자리에 서 있다고 말했다.
생활 문제와 관련이 없는 자리란?
관념성을 가리킨다. ‘생활’이 휘발된 관념 편향성은 당대 지식인이 경험한 무력과 혼돈을 가장 핍진하게 보여 준다. 여기에 강렬한 호소력이 있다.
염상섭의 다른 단편도 그런가?
이 책 ≪염상섭 작품집≫에 함께 묶인 <검사국 대합실>과 <임종> 역시 ‘내면’에 대한 치밀하고 정치한 접근과 묘사를 보여 준다.
그의 특징인가?
그의 소설 세계는 민족주의와 리얼리즘을 보인다고 평가되어 왔다. 이 책에 실린 세 단편은 그런 면에서 보면 다소 낯설지만, 염상섭 문학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가늠하는 유용한 사례다.
염상섭은 어떤 작가인가?
신소설의 뒤를 이어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하고 완성했다. 픽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인물과 플롯을 창조했으며,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작가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권채린이다. 문학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