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영화를 바꾼 영화 6/13 : 애니메이션 영화 <바쉬르와의 왈츠(Waltz with Bashir)>
디지털 시네마의 새로운 가능성
오랜 기간 애니메이션은 영화 가문의 의붓자식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사진에서 그래픽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애니메이션은 극영화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래픽은 사진술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용이한 조정과 연출을 통해
육체와 감각에 더욱 밀접해진 디지털 시네마.
그 새로운 가능성을 애니메이션에서 엿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바쉬르와의 왈츠(Waltz with Bashir)>, 2008년, 아리 폴맨(Ari Folman) 연출, 오프닝 시퀀스(2분 57초). 이른 저녁의 어둠 속에서 깡마른 사나운 개가 도시를 질주한다. 개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다. 질주하는 개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사람들은 공포에 떤다. 개들이 멈춰선 곳은 어느 아파트 앞. 창문을 통해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누구인가? 개들은 왜 그를 위협하는가? 이 사건은 실제인가 환상인가?
디지털로 되살려낸 전쟁의 기억
베트남전쟁 이후로 전쟁은 미디어적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에 참여한 당사자들에게 전쟁은 개인적 체험에서 사라진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이미지의 위력(베트남전에 참전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자신의 전쟁 기억이 영화 <플래툰>에 의한 것인지, 개인적인 것인지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끔직한 전쟁의 체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때문이다.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바쉬르와의 왈츠>는 1982년 레바논전쟁에 군인으로 참여한 이스라엘 출신 감독 아리 폴맨의 작품이다. 폴맨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던 재연 장면 대신 자신의 기억을 디지털 작업을 통해서 이미지로 옮긴다. 전쟁은 그가 실제로 느꼈던 것처럼 초현실적 사건, 메타 현실이 되며, 이를 통해 다른 차원의 진정성을 얻는다. 디지털 애니메이션, 꿈과 현실의 병존,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음악은 언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개인적 체험을 형상화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제 전쟁 사진이 등장하면서 트라우마였던 개인적 체험이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되고 이로써 총체적 기억으로서 레바논전쟁의 상흔이 뚜렷하게 제시된다.
– 윤종욱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 강사,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옮긴이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토마스 엘새서·말테 하게너 지음, 윤종욱 옮김, 382쪽,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