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관한 판타지
음악처럼 기본 재료 자체가 신적인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술은 없다. 소리를 내는 그 재료는 풍부한 화음으로 잘 정리되어 창조하는 손과 일치를 이루고, 우리가 쉽고 단순하게 그 화음을 건드리기만 하면 아름다운 느낌들을 표현해 낸다. 그래서 여러 음악 작품과 그 소리들은 작곡가들에 의해 마치 계산하는 숫자나 모자이크 그림을 그리는 연필처럼 단지 규칙대로 그러나 풍부한 감정으로 행운이 따르는 순간에 구성되는 것이다.
≪예술에 관한 판타지(Phantasien über die Kunst)≫,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지음, 임우영 옮김, 141쪽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어떤 작품인가?
1부는 전작에서 이어지는 수도사의 글로, 회화에 관한 내용이다. 2부는 지휘자 베르크링거의 이야기를 발전시킨 것으로 음악에 대한 글이다.
‘전작’이 있었나?
있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속편인 셈이다.
그 책은 어떤 책인가?
18세기 말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여는 새로운 예술 이념을 제시한 비평서다.
전작과 속편의 차이는 어디 있는가?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는 회화 예술을 주로 다뤘지만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음악에 더 비중을 두었다.
음악이 더 중요해진 이유가 뭔가?
바켄로더와 티크에게 최고의 예술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들에겐 음악이 최고의 예술인가?
회화는 자연의 모방이다. 자연의 광채에 미치지 못한다. 음악은 음 자체로 모든 자연의 소리를 넘어선다. 예술의 ‘새로운 수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술의 ‘새로운 수용’이 뭔가?
예술을 ‘의미나 이성’으로 경험하지 않고 ‘감정’으로 경험하는 수용 태도다. 음악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다. 회화나 문학은 구체적이기 때문에 얽매이기 쉽다.
예술에서 언어의 역할을 부정하는가?
그렇다. 오페라나 합창, 가곡의 가사는 듣는 사람의 느낌을 방해하고 제한한다. 순수한 기악곡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티크는 연극 <맥베스>를 보러 갔다가 이런 사실을 체험했다.
어떤 체험이었나?
<맥베스 교향곡>이 너무나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그 뒤에 공연된 연극은 시시하고 공허했다. 위대한 교향곡은 “어느 작가도 우리에게 결코 보여 줄 수 없는 화려하고, 다양하고, 혼란스럽고 아름답게 전개되는 드라마”를 소리로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음악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음악은 감정에서 비롯한다. 음은 작곡가의 ‘감동한 영혼’에서 흘러나와서 느낌을 그려 낸다.
당신이 이 책을 소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18세기 말 독일 낭만주의 시대를 연 획기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제시한 새로운 예술 이념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예술 이념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술은 인간의 정신이 인식하고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며 ‘신적인 것’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예술의 사회적 지위는 어디쯤이었나?
음악과 회화는 귀족들의 심심풀이 오락에 불과했다. 문학은 신앙심을 돈독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예술에 관한 판타지≫가 서양 세계에 미친 영향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예술은 차가운 이성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열광하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새로운 미학의 지평을 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예술 창작을 규정하는 이 생각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호프만과 쇼펜하우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에서 정점에 달했다. 오늘날에도 시민 사회의 전문적인 문화 영역에서 이런 이념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우영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다.
2740호 | 2015년 9월 10일 발행
음악의 정체와 본질, 그리고 미학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와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가 짓고 임우영이 옮긴 ≪예술에 관한 판타지(Phantasien über die Ku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