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안석 시선
중국시 신간, ≪왕안석 시선≫
일창이삼탄
시 한 수 잡아 들고 소리 내어 읊다보면 “아!” 소리가 세 번 나온다는 말이 “一唱而三歎”이다. 왕안석이 자연을 묘사한 서정시가 바로 그랬다고 한다. 맘 편히 한 시절 살다 간 인물인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대를 앞선 정치사상과 실천력으로 소인배, 간신배, 나라 망친 자로 낙인찍혔다. 바로 조선의 왕조가 그를 그리 취급했다. 부끄러운 기록이다.
왕안석은 어떤 시인인가?
소식과 함께 송시를 대표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어떤 시인가?
자연 풍광을 읊은 그의 시는 송시 가운데 가장 서정성이 짙다는 평을 얻었다.
그의 산문은 어떤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므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에도 관여했나?
북송 중기에 개혁 정치를 시행한 정치가다.
정치가로 더 널리 알려진 이유는?
조선 왕조는 왕안석의 신법과 그의 정치적 인격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시와 그의 문학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는데?
≪조선왕조실록≫은 그를 간신배, 소인배, 나라를 망친 인물이라 부른다.
왜 그랬을까?
남송 이후 중국의 편협한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이 그를 매도한 까닭은?
부패한 신법파의 말류가 북송 후기에 정권을 장악하고 구법파를 배척하던 중 여진족의 금나라에 나라가 망한다. 뒤이어 남송이 세워지고 구법파의 후손들이 정권을 장악한다. 그들은 지난 정권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신법을 처음 시행한 왕안석을 망국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신법이란?
대지주와 대상인의 전횡을 방지하고 소농민과 소상인을 보호하는 법이다.
목적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세원을 확보해 북송 중기의 재정 결핍 현상을 해결하려 했다.
왕안석의 사상은?
세상의 경륜을 학문의 제일의에 두는 경세 사상이다.
경세의 핵심은?
학문과 정치적 행위의 가치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판단해야 하며, 법이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상의 배경은?
당시는 북송 왕조가 건국된 지 약 백 년 후로, 국가 경영자들이 구습과 무사안일 풍조에 젖어 있었고 그 결과 사회경제적인 모순은 나날이 심화되어 갔다.
그의 사상과 법의 관계는?
국가 멸망의 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통치 행위가 필요하고 바뀐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법의 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왜 실패했나?
보수파의 격렬한 반대, 절대적 지지자였던 신종의 이른 사망, 보수파에 대한 왕안석의 비타협성, 농민 대중의 지지 획득 실패가 주 요인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신법의 취지가 중국 사회를 지배하던 유가사상의 전통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세기 중국 봉건사회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제도를 주장했다.
그의 신법 사상은 시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북송 중기 사회의 위기 상황을 읊은 시, 대지주의 수탈을 비판한 시, 천재지변은 인사 활동과 무관하다는 점을 설파한 시, 문학 재능만으로 합격자를 선발하는 과거제도를 비판한 시, 보수파의 중론에 휘둘리지 않을 것을 다짐한 시가 있다.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한 그의 시들은 모두 신법의 시행과 관련이 있다.
어떤 시가 그런가?
아래 시는 그의 30대 초반 작품이다.
<빗대어 하는 말>(세 번째 시)
결혼과 초상을 누가 치르지 못하는가?
돈을 대출해 그대의 근심 덜어 주리.
밭 갈고 수확할 때 누가 형편이 어려운가?
관청의 곡식 풀어서 그대의 삶을 도우리.
물자가 넘치면 내가 거두어들이고,
물자가 모자라면 풀어서 돌아가게 하리.
후세 사람들은 이런 일에 힘쓰지 않고,
겸병의 억제를 작은 일로 여기네.
<寓言十五首>(其三)
婚喪孰不供, 貸錢免爾縈.
耕收孰不給, 頃粟助之生.
物嬴我收之, 物窘出使營.
後世不務此, 區區挫兼幷.
이 시와 신법의 관계는?
넷째와 다섯째 구는 훗날 시행될 청묘법을, 다섯째와 여섯째 구는 시역법의 취지를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두 구는 이러한 적극적인 통치와 겸병의 억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위정자들을 비판한 것이다.
문학적 완성도는?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한 시는 논의가 투철하고 표현이 직설적이다. 서정시는 가식적인 표현이 없고 시어가 정제되어 있으며, 장편 시는 시상의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자연 풍광을 읊은 짧은 절구시가 뛰어나다 들었는데?
함축성이 강하고 여운이 풍부해 “한 번 읊조리는 동안 세 번을 찬탄케 한다”, 곧 일창이삼탄(一唱而三歎)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다른 송시와의 차이는?
결백한 지조와 높은 이상의 절묘한 교합이다.
재미는 없겠다.
오락성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당신은 누군가?
경성대학교 중국대학 교수 류영표다. 중국 고전시가를 강의한다.
왕안석에 대해서는?
그와 주변 인물들의 시와 관련해 중국 측의 부족한 연구를 바로잡는 데 연구의 초점을 두고 있다.
왜 그를 연구하는가?
사상과 정치 행위가 시대를 앞서 나갔을 뿐 아니라 시의 작품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떤 시를 골랐나?
정치가이자 문학가의 풍모를 전달할 수 있는 시를 골랐다.
시선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3부로 나누었다. 제1부 <천하 창생은 단비를 기다리는데>에서는 관직 생활을 하던 시기에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 시 15수를 수록했다. 제2부 <반산의 늦봄>에서는 사람과 자연을 읊은 서정시 13수를 수록했다. 제3부 <장시(長詩)의 향기>에서는 비교적 길이가 긴 고시(古詩) 6수를 수록했다. 또 그동안 소개할 기회가 없었던 그의 사와 집구시를 선록해 제4부 <사와 집구>를 구성했다.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의 꿋꿋한 삶의 자세, 높은 이상은 인간의 변치 않는 덕목이다.
독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신법과 그의 정치 인격에 대한 종래의 오해가 풀렸으면 한다. 시인 왕안석의 진면목이 전달되길 바란다.
시 한 수를 추천한다면?
<등비래봉>을 고르겠다.
비래봉에 올라(登飛來峰)
비래봉 위 천 길 높은 탑,
닭 울 때 올라가면 해돋이 보인단다.
뜬구름이 시야 가려도 두렵지 않아,
가장 높은 꼭대기에 서 있으니.
飛來山上千尋塔, 聞說雞鳴見日昇.
不畏浮雲遮望眼, 自縁身在最髙層.
≪왕안석 시선≫, 왕안석 지음, 류영표 옮김,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