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 시선
여름 한시 5. 시 세계의 부처님은 누구인가?
박삼수가 옮긴 ≪왕유 시선(王維詩選)≫
시선, 시성 그리고 시불
이백을 시의 신선이라 하고 두보를 시의 성인이라 할 때 시의 부처로 불리는 것이 왕유다. 몸은 관직에 있으나 마음은 자연에 두었다. 시로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다시 시를 썼다.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길이 되었으니 부처가 아닐 수 없다.
산장의 가을 저녁녘
빈산에 새로이 비 내린 뒤
어스름 저녁이라 가을 기운 물씬 풍긴다
밝은 달빛은 솔숲 사이로 비쳐오고
맑은 샘물은 산석(山石) 위로 흐른다
빨래 나온 여인들 돌아가며 대숲이 떠들썩하고
고기잡이배 내려가며 연잎이 흔들거린다
향기로운 봄풀이 제멋대로 다 시든다 해도
왕손은 의연히 산중에 머무르리라
山居秋暝
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
竹喧歸浣女
蓮動下漁舟
隨意春芳歇
王孫自可留
≪왕유 시선≫, 왕유 지음, 박삼수 옮김, 87쪽
비 온 뒤 가을 저녁의 산촌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시정(詩情)과 화의(畫意)가 넘치는 시다. 시인의 초탈적 정서를 만나게 된다.
왕손이 산중에 머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의 “왕손아! 돌아오소서 / 산중에 오래 머물러선 아니 되오(王孫兮歸來, 山中兮不可以久留)”란 구절을 역용(逆用)한 것이다. <초은사>는 ‘은거한 선비들아, 속세로 나오라’는 뜻이지만 <산장의 가을 저녁녘>에서는 거꾸로 산중 은거의 결심을 표현하고 있다.
왕손이 누구인가?
<초은사>의 왕손은 은사를 일컫는다. 한(漢)나라 이전의 선비는 대개 왕후(王侯)의 후예였기 때문에 이같이 말한 것이다. <산장의 가을 저녁녘>의 왕손은 시인 자신을 비유한다.
당신이 이 시를 꼽은 이유가 뭔가?
세속적인 욕망은 떨쳐 버리고 오직 한가롭고 편안하기 그지없는 시인의 성정(性情)이 여실히 밴 작품이다. 전원 경물이나 산수 풍광의 묘사도 뛰어나다. 왕유의 시정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소동파(蘇東坡)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는 왕유의 시를 보고 시중유화(詩中有畫)·화중유시(畫中有詩)라 했다.
詩中有畫 畫中有詩가 무슨 뜻인가?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말이다. 산수수묵화의 대가이기도 했던 왕유의 예술 세계를 단적으로 평가한 명언이다.
왕유는 어떤 시를 잘 썼는가?
자연시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각각 낭만시와 사회시 창작에 재능을 발휘했다면 왕유가 독보적인 면모를 보인 것은 자연시다. 그는 도연명(陶淵明) 이후 최고의 자연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어찌하여 자연시를 쓰게 되었는가?
역관역은(亦官亦隱) 시기에 자연시를 집중적으로 지었다. 몸은 벼슬하고 있으나 마음은 늘 피세 은둔의 정취를 동경하던 때다.
그의 자연시에는 어떤 정신이 숨쉬고 있는가?
은둔의 초탈 정신과 불도 사상이 깔려 있다. 이백·두보가 각각 시선(詩仙)·시성(詩聖)이라면 왕유는 시불(詩佛)이다.
그가 불교를 믿었는가?
초년에는 진취적인 유가 사상의 소유자였으나 정치적인 실의에 빠지기 시작한 중년 이후에는 불가와 도가적인 경향을 아울러 보였다. 점차 불교에만 심취했다. 이 같은 인생 사상이 왕유 창작 정신의 원천이다.
그의 시는 처음부터 자연시에서 비롯된 것인가?
젊은 시절에는 종군(從軍), 변새(邊塞), 호협(豪俠)을 노래하거나 입공보국(立功報國)의 기개를 떨쳐 보였다. 객관성이 결여된 인재 등용이나 형평성을 잃은 논공행상을 비롯한 정치적 부패상을 풍자·폭로하기도 했다.
성장 환경은 어떠했는가?
701년 당나라 하동(河東)의 하급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여러 동생들과 함께 가난하게 자랐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벼슬길엔 어떻게 나아갔는가?
출중한 문예 재능으로 귀족 사회의 호감을 샀다. 21세 때 궁중 음악을 관장하는 태악승(太樂丞)에 올랐으나, 이후 몇 년간 사건 연루-좌천-사직-은거-부인 사별 등을 겪는다.
‘역관역은’의 시기는 언제인가?
왕유는 742년 좌보궐(左補闕)에 올랐다. 이 무렵 재상 이임보(李林甫)와 양국충(楊國忠)이 전횡을 일삼고 있었다. 이때부터 ‘역관역은’의 삶을 동경했다.
이 책에서는 왕유의 어떤 작품을 볼 수 있나?
현재 최선본(最善本)으로 평가되는 진철민(陳鐵民)의 ≪왕유집교주(王維集校注)≫에 실린 376수를 텍스트로 삼았다. 이 가운데 왕유의 특징적인 시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총 66수를 골라 소개했다.
작품이 ‘편년시’, ‘미편년시’로 나뉘어 있는가?
창작 시기가 고증된 편년시 50수와 그렇지 않은 미편년시 16수로 이뤄졌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삼수(朴三洙)다.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