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육필시집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봄> 전문
이성부(1942. 1. 22 ~ 2012. 2. 28)
바로 1년 전입니다. 봄을 기다리던 시인은 봄의 문턱에서 서둘러 떠났습니다. 향년 70세. 한 후배 시인은 “봄의 시인 봄에 떠나다”는 추모 글로 슬픔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시인은 이제 없지만 그와 그의 시를 품은 대지는 봄 햇살로 더욱 따스하게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