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김미란이 옮긴 외된 폰 호르바트(Ödön von Horváth)의 ≪우왕좌왕(Hin und her)≫
여기도 저기도 아니라면?
다리 위에 남자가 있다. 살던 나라에서 쫒겨나고 태어난 나라에서 거부된다. 그는 갈 곳이 없다. 영원히 길 위에 서 있을 뿐이다.
(밤이 되었다.
하블리체크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콘스탄틴이 들고 있는 권총을 보고 즉시 “손들어!” 자세를 취한다.)
콘스탄틴: (이 동작에 깜짝 놀란다.) 뭡니까? 도대체 두 손으로 뭐 하는 겁니까?
하블리체크: 항복이오.
콘스탄틴: (당황하여) 어째서요?
하블리체크: 쏘지 마시오, 제발!
콘스탄틴: 아하, 이거요! (그는 웃으며 권총을 허리띠에 꽂는다.)
하블리체크: (두 손을 내리고 미소 짓는다.) 그래도 친절하신 분이군요!
콘스탄틴: 그럴지도요. (중략) 하지만 당신에게 난 그저 국경 경비대원일 뿐이오, 그리고 이제 솔직히 내 참을성도 끝입니다! 당신이 자꾸 나타나는 걸 못 견디겠습니다, 저도 결국 인간일 뿐이니까요!
하블리체크: 바로 그겁니다.
콘스탄틴: 그러니, 이제 제발 사라지십시오, 예?
하블리체크: 하지만 저쪽에서는 막 위협하던데요, 다시 나타나면, 대포를 가져오겠다고….
(중략)
콘스탄틴: 내가 미치겠소.
하블리체크: 상관없습니다!
콘스탄틴: 당신 때문이란 말이오, 나 때문이 아니라!
하블리체크: 그럼 나보고 어디서 자란 말입니까?
콘스탄틴: 다리 위에서요! 끝냅시다.
(침묵)
하블리체크: 그럼 끝냅시다. (위협적으로) 이젠 나도 더 이상은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럼 이제 다리 위에 있겠소! 다리 위에서 자겠소, 알겠소?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당신들은 그걸 보게 될 거요, 당신들은! (빨리 퇴장한다.)
≪우왕좌왕≫, 외된 폰 호르바트 지음, 김미란 옮김, 68∼69쪽
하블리체크는 어쩌다 다리 위에서 자야 하는 처지가 되었나?
30년간 잡화점을 운영하며 살아온 나라에서 추방당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려 하지만 거기서도 입국을 거부당한다. 살아온 나라, 태어난 나라,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하블리체크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양국 경계인 다리 위에서 지내기로 한다.
추방 사유가 무엇인가?
파산했기 때문이다. 30년간 꼬박꼬박 세금을 내 왔지만 이제 그는 파산한 이주민으로, 당국의 복지 예산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외국인을 위해 복지사업을 해야 하는가?” 경비원이 밝힌 추방 이유다.
출생지는 왜 그의 입국을 거부하나?
외국에 지속적으로 거주할 경우 5년 내에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국적을 상실한다는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신고 기간을 놓친 하블리체크는 법에 따라 국적을 상실했다. 경비원은 그를 다리 위로 몰아내며 ‘법은 법’이라고 말한다. 갈 곳이 없어진 하블리체크에게는 그런 법이 비정하게만 느껴진다.
그는 계속 도피해야 하는 운명인가?
여기서도, 저기서도 입국을 거부당한 하블리체크는 다리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비밀 회담을 위해 정체를 숨기고 국경을 빠져나온 양국 수상과 대면한다. 그의 입국을 거부하던 오른쪽 나라 수상이 이 일로 하블리체크의 사연을 알게 된다. 수상은 퇴임 전 전보를 쳐서 그를 구원한다. 입국을 허가한 것이다.
호르바트 자신의 이야기인가?
하블리체크의 처지는 당시 호르바트가 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나치가 공연을 저지하고, 독일 부모 집을 수색하자 호르바트는 오스트리아로 도피한다. 한편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헝가리 국적을 유지하기 위해 그 기간에 부다페스트를 여행해야 했다. 초연 당시 프로그램 소책자에서 호르바트의 이런 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처지를 뭐라고 표현했나?
“그는 막 여행 가방을 싸고 있었다. 15년간 외국에서 살아온 그는 이제 가급적 빨리 부다페스트로 떠나야 했다. 헝가리 국적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중략)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서 다리 위에 서 있어야 하는 남자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는 호르바트 자신이다.”
1934년 초연이 취리히에서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나치 독일에서 출판, 공연이 금지된 작가들의 작품은 중립국이었던 스위스 취리히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이 작품도 1934년 구스타프 하르퉁 연출로 취리히 샤우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이 크게 성공한 뒤 1948년에는 핀란드에서 테오 링겐 감독이, 1954년에는 독일 에리히 가이거 감독이 각각 영화로 제작했다.
나치가 호르바트를 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으로 정치 현실을 다룬 작품 <슬라데크, 검은 제국 군인>에서 그는 주인공 슬라데크를 오직 먹고살기 위해 나치 신봉자들과 결탁하고 눈앞에서 여자 친구가 위험인물로 몰려 숙청당하는 것도 외면한 채 파시즘을 위해 행진하는 인물로 그렸다. 이처럼 그는 ‘민중극’이라는 사회 비판적 시대극 형식을 통해 소시민층에 내재한 파시즘 요소를 폭로했다. <빈 숲 속의 이야기>로 클라이스트상을 수상하는 등 독일에서 호르바트의 문학적 영향력이 커지자 나치는 그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독일 내 작품 활동을 금지했다.
호르바트의 ‘민중극’은 어떤 점에서 기존 형식과 다른가?
그는 시대극은 계몽적인 인상을 줘야 하고, 의식의 정체를 드러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오래된 민중극을 형식적으로, 윤리적으로 파괴했다. 또한 당대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교양 은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교양 은어’는 소시민이 사용하는 상투어가 아닌가?
비개성적이고, 내용 없고, 의식과 사고를 위축시키는 고정된 표현 방식이다. 이런 교양 은어 사용은 당연히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대화가 발생하고 극적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로 도주한 뒤 그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헨도르프에 잠시 정착한다.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독일어권 극장에서 작품이 공연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시대 비판적인 장편소설 ≪신 없는 청춘≫과 ≪우리 시대의 아이≫를 써서 성공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되면서 호르바트는 또다시 도주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헝가리, 프라하, 암스테르담을 거쳐 파리로 간다.
그에게 독일은 무엇인가?
하블리체크가 30년 동안 살아온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게 보기보다 간단한 일은 아니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라. 오랫동안 베를린에서 활동하며 큰 명성을 얻었던 호르바트가 독일에 보내는 마지막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헤어졌는가?
오스트리아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피하다 파리로 간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벼락을 맞고 쓰러지는 나무에 치여 죽는다. 1938년 6월 1일 사망할 당시 그는 겨우 36세였다. 하블리체크가 “경계선도 없이 사랑하는 고향에서” 모두와 함께 살아가리라 노래하며 피날레를 장식한 ≪우왕좌왕≫과는 사뭇 다른 결말이다.
현재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고전 작가 반열에 올라 있다. 사후 완전히 잊혔다가 1960년대에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는 ‘호르바트 르네상스’라 할 만큼 작품과 작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독일에서는 크뢰츠, 슈페어, 투리니 같은 신민중극 작가들이 연극계를 휩쓸면서 1930년대 비판적 민중극 작가였던 호르바트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미란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독일언어문화학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