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네
영혼이 있는 인간이 갖지 못한 것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e) 의 <<운디네(Undine)>>
물의 정령, 영혼을 얻자 자연을 잃다
물은 만물의 뿌리다. 스스로 변하고 생명을 잉태하며 자라게 하고 정갈하게 씻어낸다. 그것은 자연이다. 인간을 배려해서 흐르거나 멈추지 않는다. 빠름과 늦음, 많고 적음, 높고 낮음은 모두 자연의 선택이다. 그곳에 인간의 소망은 없다.
바로 그때 하일만 신부가 손짓을 하며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다. 봉분 위에 흙이 쌓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조용히 고인을 생각하면서 시신을 위해 기도하려는 참이었다. 베르탈다는 입을 다물고 무릎을 꿇었다. 다른 모든 사람도 무릎을 꿇었다. 무덤 파는 사람들도 삽질을 마치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섰을 때, 흰옷을 입은 낯선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가 무릎을 꿇었던 풀밭에서는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샘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샘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또 흘러 기사의 봉분을 거의 에워쌌다. 그러고도 계속 솟아나와 묘지 옆에 있는 고요한 연못으로 흘러 들어갔다.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가리키며 가련하게 버림받은 운디네가 아직도 이렇게 사랑하는 이를 다정한 팔로 감싸 안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고 전해진다.
≪운디네≫,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지음, 이미선 옮김, 193~194쪽
운디네가 남편을 죽인 것인가?
남편은 물가에서 아내 운디네를 절대로 모욕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지켜야 한다. 훌트브란트는 이 금기를 깸으로써 그녀를 잃고 만다. 운디네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죽지 않았는데도 훌트브란트는 다른 여인과 혼인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법칙 모두를 어긴다. 운디네는 자신을 배반한 남편에게 반드시 복수해야 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분노한 물이 모든 것을 파괴하듯 배반한 남편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하는 것이다.
샘물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운디네는 이미 인간의 영혼을 가짐으로써 순화된 자연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남편을 자신의 눈물로 질식시켜 죽인 뒤에도 무덤을 에워싸고 흐르는 샘물이 되어 한없는 슬픔을 간직한다.
당신은 왜 이 대목을 인용했는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면, 그대는 행복하다. 사랑에서는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더 복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고 푸케는 독자에게 말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오래 잊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외롭고 슬픈 것 같다. 인용한 이 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마다 김소월의 시 <못 잊어>와 그 노래가 생각난다.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운디네≫에서는 환상과 동화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물의 정령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의 정령 운디네가 기사 훌트브란트를 사랑해 그와 결혼하나 행복한 생활도 잠시뿐 끝내는 기사를 죽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푸케의 이름을 알리게 했다.
하이네가 푸케에게 그렇게 열광한 이유가 무엇인가?
‘낭만주의 서사 작가들 중 유일하게 모든 대중을 감동시킨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아이헨도르프는 푸케가 대중에게 낭만주의의 중심인물로 인식된다고 했다. 월터 스콧은 “매혹적”이라고 평했다. 에드거 앨런 포도 “높은 창조 정신”을 칭찬하면서 ≪운디네≫는 “기존의 것 중 최고의 로만체”라고 했다. 하이네가 열광할 만하지 않은가?
물의 정령에 대한 이전의 담론, 특히 파라셀수스의 생각은 무엇이었나?
고대인들은 공기, 물, 불, 흙을 우주의 기본 요소로 여겼다. 엠페도클레스는 사랑과 미움의 두 힘에 의해 이 원소들은 분리되고 결합하며 바로 이것이 만물의 생성과 소멸 원리라고 말했다. 파라셀수스는 스위스의 의사였는데 4원소에 깃든 정령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글을 썼다.
파라셀수스가 묘사한 물의 정령은 어떤 것인가?
물의 정령 님프는 여성이다. 이름은 운디네다.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고 윤리와 도덕을 지녔으며 말하고 지식이 있다.
인간이 가진 것 가운데 정령 운디네가 갖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영혼이 없다. 인간의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이 불멸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볼 때 자연의 정령은 일시 현상일 뿐이다. 인간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다.
정령이 인간 남성과 결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녀와 그녀의 자손은 불멸의 영혼을 가질 수 있다. 인간과 결혼한 운디네는 보통의 인간 여성처럼 신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
푸케는 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4원소에 깃든 정령 중 물의 정령을 택했나?
파라셀수스의 작품을 통해 유추해 본다면 땅의 정령 퓌그메는 난쟁이, 불의 정령 잘라만더는 도마뱀으로 묘사되니 두 정령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공기의 정령 쥘페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일반적으로 물은 여성으로 생각된다. 생명의 싹을 틔우는 물이 아이를 낳는 여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물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자 동시에 무덤이며 물질의 최초 형태다. 탄생, 여성적 원칙, 세상의 품을 상징하고 항상 바뀌며 파괴하고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절대 손에 잡히지 않는 공기와는 다르다. 물은 대지를 떠날 수 없다.
푸케가 묘사한 운디네는 어떤 모습인가?
운디네는 물이라는 자연 요소가 가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힘을 대표한다. 어부의 양녀로서 철없는 행동만 일삼는 그녀는 열여덟 살이나 되었지만 살림을 돕거나 예절을 지키지 않는다.
운디네의 비사회적, 비상식적 행동이 의미하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자연 그대로의 천성이다. 자연 속의 물은 인간을 배려해서 흐르거나 고이지 않는다. 운디네는 본성 그대로 행동할 뿐이다. 비록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의 영역에 살고 있지만 그녀는 아직 물, 즉 순수한 자연에 속한 존재다.
운디네는 어떻게 영혼을 얻는가?
기사 훌트브란트와 결혼한다. 영혼을 얻은 운디네는 인간, 특히 남성이 바라는 최고의 여성으로 변한다. 남편이 “내가 그녀에게 영혼을 주었다면, 분명 내 영혼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준 게 분명해”라고 말할 정도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정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며 신을 경외하는 여성이 된 것이다.
영혼은 얻은 정령은 인간이 된 것인가?
항상 운디네의 주변을 도는 삼촌 퀼레보른은 그녀가 물의 속성, 자연의 힘과 절대 분리될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힘은 결국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를 두렵게 만든다. 비극의 출발이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미선이다. 홍익대 국제언어교육원에서 독일어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