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향인 천줄읽기
고운선이 옮긴 중리허(鍾理和)의 ≪원향인(原鄕人)≫
아시아의 고향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타이완에 정착한다. 손자의 손자는 중국을 찾아간다. 고향에서 그는 이방인이다. 전쟁과 재해, 수탈과 가난은 기억, 곧 고향을 지워 버린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서 나는 곧장 할머니께 이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다 듣고 나서 웃으면서, 우리들도 원래는 원향 사람이며, 우리들은 원향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럼, 우리 아빠도 이사 온 거예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니란다!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란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왜 이사 온 거예요?”
“이 할미도 잘 모르겠구나.” 할머니는 한탄하시며, “아마 그곳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어서였겠지”라고 대답하셨다.
“할머니.”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 다시 말했다. “원향은 어디에 있어요? 아주 멀어요?”
“서쪽에 있지. 아주아주 멀단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여기로 올 때 배를 타야 한단다.”
원향, 바다, 배! 이것은 정말이지 일종의 거대한 학문이었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문이 막혀서 또 멍하니 있었다. 할머니는 예전에 나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가르쳐 주신 적이 없었다.
<원향인>, ≪원향인(原鄕人)≫, 중리허 지음, 고운선 옮김, 27쪽
나는 누구인가?
타이완에서 태어난 여섯 살 난 아이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원향 출신 교사가 처음 출근했다. 원향인을 처음 봤는데 교사의 생김새가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원향이 어디인가?
중국을 가리킨다.
그는 어디서 왔는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중국 광둥성(廣東省) 자잉저우(嘉應州)에서 건너왔다. 중국을 동경하게 된다.
중국을 향하는가?
아버지에게 중국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승낙받지 못한다. 둘째 형이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에 맞서 중국으로 싸우러 간다.
원향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가?
아니다. 얼마 안 있어 중국으로 건너간다.
무엇 때문에 중국에 간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애국자는 아니었지만, 원향인의 혈통으로서, 반드시 원향으로 돌아가야지만 들끓는 마음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 민족주의인가?
일부 평론가들은 그렇게 평가하기도 한다.
다른 시각은 뭔가?
작가가 중국인과는 다른 타이완인의 정체성을 고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작품의 결말이 민족과 혈연으로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고향인 조국에 대한 의식과 이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작가가 타이완인의 정체성을 고민했다고 생각한다. ‘고향’과 ‘뿌리’는 어떤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고향은 수적으로 ‘오직 하나’인 것인지,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고 본다.
정체성 고민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타이완 사회가 민족적·문화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정체성 문제가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타이완의 민족, 문화 정체성의 현실은 어떤가?
혈통적·문화적으로 중국인과는 전혀 다른 토착 원주민이 있다. 또 오래전에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와 뿌리는 한족이지만 중국인도 아니고 토착 원주민도 아닌 민난인이 있다. 여기에 1949년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후퇴할 때 대량으로 이주한 외성인이 있다. 혈연·언어·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산다.
작가의 자전인가?
그렇게 볼 수 있다. 중리허는 1938년 타이완에서 만주로 갔다가 베이징을 거쳐 1946년 타이완으로 영구 귀국한다. 그가 타이완을 떠난 것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나?
중리허는 같은 성씨의 농장 여공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당시 타이완 사회에서는 동성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는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집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대륙으로 갔다. 이 책에 실린 <도망>이란 작품이 동성이란 이유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해야 했던 작가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 단편소설이다.
중리허가 타이완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타이완인들이 중국에 대해 느꼈던 것이 ‘상상된 향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상된 향수란 어떤 의미인가?
타이완에서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막연히 그리워했다. 정작 중국에 가 보니 ‘고향 속의 이방인’이었다. 중국인도 타이완인을 ‘동포’가 아니라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대륙의 중국인들은 타이완인들을 적에게 투항한 ‘민족 배신자’로 취급했다.
그에게 고향은 어디인가?
중국에 가서야 그가 도망쳐 나왔던 타이완 메이눙진을 고향이라고 느낀다. 선조들의 고향인 중국에서도, 본인이 나고 자란 타이완에서도 중리허는 그저 ‘상징적 귀향’밖에 할 수 없었다. 중리허의 삶과 소설 내용을 보면 지금 사는 타향이 고향 아니겠는가?
중리허는 어떤 작가인가?
타이완의 대표적인 향토문학 작가다. ‘타이완 향토문학의 기초를 다진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타이완의 향토문학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농촌 사회와 농민을 제재로 삼은 작품을 말한다. 중리허는 불합리한 사회현상이나 역사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활을 반영한 이야기에서 시대적 배경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고운선이다. 고려대 중문학과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