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절서
춘추 시대. 오나라와 월나라, 중국 역사 신간 ≪월절서(越絶書)≫
국민 통합의 길
이렇게 6년이 지나니
관리와 백성이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모의하지 않아도 똑같이 말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왔다.
목숨을 건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월왕 구천은 제후를 평정하고
홀로 높은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를 두고 공자가 말했다.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이의 마음을 얻는다.
‘월절(越絶)’이 무슨 뜻인가?
‘절’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 책에서는 ‘뛰어나다’, ‘끊다’, ‘기록하다’는 말로 새긴다. ‘월절’은 월나라 전성기였던 구천 시기 역사 기록이라 보면 될 것이다.
어떤 책인가?
춘추 시대 말기에 오나라와 월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사건을 비롯해, 오월 지방의 정치, 경제, 군사, 지리, 과학기술, 민간 전설 등을 담았다.
어떤 내용인가?
오자서·범려·계예·문종의 언사와 행적을 통해 치국의 도를 설파했다. 오월 지방의 역사와 유적, 지리를 자세하게 다루었다. 오월의 보검과 초나라 공자 춘신군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한다.
≪오월춘추≫의 관계는?
그 책은 편년체 방식인데 반해 이 책은 15권 19편으로 구성되어 편마다 주제를 달리했다. 자매서라는 말도 있는데 그 책이 이 책을 많이 참고했다.
필자는?
의견이 분분하다. 자공, 오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어떤 현인이라고도 하며, 본문의 은어를 분석하여 원강과 오평의 합작이라고도 한다.
본문의 은어란?
다음 구절이다. “이 사람은 ‘거(去)’를 성(姓)으로 삼는데 거기에 ‘의(衣)’ 자를 더하면 성이 완성되며, 그 이름에는 ‘미(米)’ 자가 들어 있고 그 위에 ‘경(庚)’ 자를 덮는다. 우임금이 동쪽으로 순행(巡幸)해, 죽은 후 이 사람의 강토(疆土)에서 안장되었다. 이 사람은 정직하지 않으면 자신을 질책할 사람이어서, 역사적인 일들에 의탁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 정세(精細)하게 써냈지만 어리석음도 드러냈다. 그는 역사적인 일들을 대략 분류해서, 자신을 알아줄 후대 사람을 기다려 그에게 알려 주고자 했다. 그래서 문장을 짓고 언사(言辭)를 다듬어 확정했던 것은 나라 안의 현인에게서 나왔다. 나라 안의 현인은 ‘구(口)’를 성으로 삼고 거기에 ‘천(天)’ 자를 받쳐 주며, 초나라의 보좌(補佐)하는 대신(大臣)이었던 굴원(屈原)이 그와 이름이 같다.”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양신(楊愼)이라는 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去) 자에 의(衣) 자를 더하면 바로 원(袁) 자다. 미(米) 자에 경(庚) 자를 덮으면 바로 강(康) 자다. 우임금이 안장된 강토는 회계이니, 이는 곧 회계 사람인 원강이다.… 구(口) 자에 천(天) 자를 받치면 오(吳) 자다. 굴원과 이름이 같으면 평(平) 자다. 원강과 이 책을 함께 지은 사람은 바로 오평이다.”
사료 가치는?
중국 역사에 처음 나타난 지방지 성격의 책이다. 정사에서 찾기 힘든 사료를 이 책을 통해 많이 보충했다.
어떤 내용이 그러한가?
제10권 제12편 <오왕의 꿈 풀이 전기(외전)>의 내용, 또 오자서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맨발로 오성의 저잣거리에서 구걸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의 독특한 내용이다.
현대 중국에서 이 책의 위치는 어떠한가?
중국 구이저우인민출판사에서 ‘중국 역대 명저 전역 총서 50종’을 선정했다. ≪좌전≫, ≪자치통감≫, ≪주역≫, ≪상서≫, ≪시경≫ 등 현대 중국인들이 우선 읽어야 할 가치 있는 고전을 꼽아 현대어로 번역했는데 ≪월절서(越絶書)≫가 그중 한 권이다.
이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중요한 전적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접할 기회가 없었다. 소설을 연구하던 중 먼저 ≪오월춘추≫를 접했고, 이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 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국내 번역본이 없어 번역하게 되었다.
한 대목 추천한다면?
월왕은 몹시 부끄러워 해자를 메우고 참호를 파괴했으며, 곡물 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에게 양식을 빌려 줬다. 대신을 시켜 병자를 위문케 하고 스스로 사망자의 집을 살폈다. 가난하고 후미진 곳에 사는 사람들을 재앙에서 보호하고 덕 있는 사람을 높였으며 백성과 동고동락했다. 둑을 쌓아 강물을 막고 샘물을 끌어 들이고 우물을 파 자신만 홀로 편히 밥 먹지 않음을 보여 줬다. 이렇게 6년이 지나니 관리와 백성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모의하지 않아도 똑같이 말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와, 모두 오나라를 토벌하고 싶어 했다. 마침내 월왕은 큰 공적을 이루어 제후들을 제패했다. 공자가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는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월절서≫, 원강·오평 지음, 김영식 옮김, 281∼282쪽.
당신은 누구인가?
김영식이다. 중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다. ≪문선≫, ≪박물지≫, ≪열자≫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