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유 시선
2475호 | 2015년 3월 4일 발행
중국 최대 시인 육유의 단심
주기평이 옮긴 ≪육유 시선≫
1만 수에 담은 뜻
육유는 가장 많은 작품을 쓴 중국 시인이다.
남송 이후 남은 것만 9136수,
이미 77세에 1만 수를 썼다고 스스로 말했다.
중원 회복의 염원과 우국충정은
눈감는 날까지 변치 않았다.
長歌行 긴 노래
人生不作安期生, 사람의 인생 안기생과 같이
醉入東海騎長鯨. 취해 동해로 들어가 큰 고래를 타지 못할 것이라면,
猶當出作李西平, 다만 서평왕 이성(李晟)과 같이
手梟逆賊淸舊京. 손으로 역적을 죽여 옛 도성을 깨끗하게라도 해야 하리.
金印煌煌未入手, 빛나는 황금 도장은 손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白髮種種來無情. 가닥가닥 흰머리만이 무심하게 찾아왔네.
成都古寺臥秋晩, 늦가을, 성도의 오래된 절에 누워 있노라니
落日偏傍僧窗明. 지는 해 옆으로 비끼어 승방 창이 밝아 오네.
豈其馬上破賊手, 어찌 말 위에서 적을 격파할 손으로
哦詩長作寒螿鳴. 오래도록 시나 읊조리고 가을 매미의 울음을 울리!
興來買盡市橋酒, 흥이 나면 시교의 술을 다 사 버리니
大車磊落堆長甁. 커다란 수레에 하나 가득 긴 술병들이 쌓여 있네.
哀絲豪竹助劇飮, 애절한 현과 호방한 피리 소리가 폭음을 도우니
如鉅野受黃河傾. 마치 거야 못으로 황하가 기우는 듯.
平時一滴不入口, 평상시에는 한 방울도 입에 넣지 않다가
意氣頓使千人驚. 의기 발동하면 돌연 천 사람을 놀라게 한다네.
國讎未報壯士老, 나라의 원수 갚지 못하고 장사는 늙어 가니
匣中寶劍夜有聲. 갑 속의 보검은 밤마다 울어 대도다.
何當凱還宴將士, 어느 때에나 이기고 돌아와 장사들에게 잔치를 베풀거나.
三更雪壓飛狐城. 삼경의 깊은 밤, 눈 덮인 비호성에서.
≪육유 시선≫, 주기평 옮김, 74~76쪽
‘장가행(長歌行)’이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 ‘긴 노래’다. ‘행’은 악부시의 형식 중 하나다. 길고 자유로운 형식을 빌려 안기생처럼 속세를 떠난 신선이 아닌 바에야 서평왕 이성처럼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해 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안기생이 누군가?
전설에 나오는 진시황 때의 신선이다. 진시황이 동해로 놀러 갔을 때 그와 사흘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서평왕 이성은 누군가?
당나라의 명장군이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3년(782) 경원절도사 주체(朱泚)의 반란을 평정하고 장안(長安)을 수복해 서평왕(西平王)에 봉해졌다.
이성처럼 공을 세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을 매미와 같은 처량한 울음의 시를 쓰기보다는 말 위에서 적을 직접 격파하고 역적을 죽이는 것이다.
역적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금나라 오랑캐다. 당시 북송 정권이 멸망하고 임안을 도읍으로 삼은 남송 정권이 금나라와 대치하고 있었다. 육유는 평생 금에 대한 항전과 잃어버린 중원 땅의 회복을 주장했다.
잃은 땅을 찾았나?
“늦가을(秋晩)”, “지는 해(落日)”가 암시하듯 중원 회복은 가망이 없었다. 조정은 주화파가 장악했고 “나라의 원수 갚지 못하고 장사는 늙어” 갈 뿐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청나라 마성익(馬星翼)은 <동천시화(東泉詩話)>에서 이 시를 육유의 시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으며 원진이나 백거이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했다. 오개생(吳闓生)도 이 시를 ‘호방하고 종횡무진하다’고 하며 육유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았다.
육유가 누구인가?
남송의 시인이다. 1125년에 태어나 1209년 사망했다. 자는 무관(務觀)이고 호는 방옹(放翁)이다. 중국 역대 시인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작품 수가 얼마나 되나?
77세에 쓴 <술 약간 마시고 매화 아래에서 쓰다(小飮梅花下作)> 시에서 이미 ‘60년 사이 1만 수를 썼구나(六十年間萬首詩)’라 했다. 죽기 전 직접 작품을 선별한 문집 ≪검남시고(劍南詩稿)≫에 실린 시만도 9136수에 달한다.
1만 수의 시로 무엇을 노래했나?
중원 회복과 오랑캐 섬멸을 주장했다. 비분강개의 심정이 가득하다. 항전 의지와 열망을 드러내는 우국시를 끊임없이 썼다. 한적한 전원시에도 조국과 백성에 대한 심려와 애정을 담았다. 중국 최고 애국 시인이라 할 만하다.
중원 회복에 대한 그의 의지는 어느 정도였나?
1209년 12월, 85세로 임종하기 직전 여섯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절명시를 보면 죽을 때조차 중원의 수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원한을 토로한다. 사후에라도 중원 회복을 갈망하고 있겠다는 불멸의 애국심이 보인다.
절명시는 어떤 것이었나?
이런 것이다.
示兒 아들들에게
死去元知萬事空, 죽고 나면 만사가 헛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但悲不見九州同. 다만 구주가 하나 됨을 보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
王師北定中原日, 왕의 군대 북벌해 중원을 평정하는 날에
家祭無忘告乃翁! 집에 제사 지낼 때 잊지 말고 네 아버지에게 일러라.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나?
우국충정의 심정이 잘 드러나고 표현이 뛰어난 시 50수를 골라 시기별로 배치했다. 시체(詩體) 또한 고체시와 근체시를 망라해 5언, 7언, 잡언체와 가행체 시까지 포괄했다. 전체 작품 수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육유 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주기평이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