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섭 동화선집
한국 아동 문학의 리얼리티
박달나무 문패는 말한다. 나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문패는 없다. 윤사섭은 아이의 눈으로 식민 광복 상잔 혁명 병변 그리고 산업을 본다. 리얼리티에 어른 아이가 다르겠는가?
날이면 날마다 해 질 무렵이면 버릇처럼 정해 놓고 북녘 하늘을 멍청이처럼 바라보는 아저씨의 피곤한 두 눈엔 하얗게 빛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습니다. 열무김치보다 더 서러운 하늘빛…. 하지만, 하지만, 야속하게도 하늘은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제일 기쁜 선물 대신 천벌 같은 전쟁을 몰고 왔으니….
그것도 다른 나라 아닌 동족 간의 싸움입니다. 이게 무슨 변이랴? 서로가 서로를 잡아 삼킬 듯 포 소리, 총소리는 천지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런데 아아, 나는 까무라쳐 숨이 넘어갈 뻔했습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비참한 광경… 팔, 다리가 부러지고 잘려 나간, 그리고 머리가 터진 피투성이 병사들이 들것에 실려 동리에서 제일 큰 우리 집에 연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걸레처럼 포개어져 차에 실려 나갔습니다.
<문패>, ≪윤사섭 동화선집≫, 윤사섭 지음, 김병규 엮음, 190~191쪽
‘나’는 누구인가?
‘김재상’이라 새겨진 박달나무 문패다. “나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문패도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라는 독백처럼 일생을 겨레의 아픈 역사와 함께했다. 작가는 문패의 눈으로 식민 시대, 광복, 동족 전쟁, 그리고 산업화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그린다.
당신이 윤사섭의 동화를 ‘겨레 얼을 지킨 동화’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픈 우리 역사를 자락에 깔고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그 시절 우리 아이들이 겪은 이야기다. 서민 생활을 우리 정서로서 그렸다. 황폐한 땅에서 희망을 찾았다. 잿더미에서 움트는 새싹이 얼마나 순수한지,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증언했다.
우리의 겨레 얼은 어떤 얼굴인가?
순수하고 긍정적이다. 이것이 우리 겨레 정서다. 윤사섭의 동화는 겨레 얼이 마르지 않도록 보듬는 촉촉한 이끼다. 이슬 같은 얼을 고이 받아 자란 동심이 겨레를 중흥한 원동력이었음을 일깨운다.
그의 작품이 곱고 여린 동화로 알려진 사정은 무엇인가?
주제가 뚜렷하지만 어조가 완곡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크다고 내용이 강한 것은 아니다. 큰소리쳐야 귀를 기울였던 우리 사회의 병폐가 문학에도 깊이 스며든 게 현실이다. 그 탓에 주제 의식이 드러나지 못하고 곱고 여린 분위기만 알려졌다.
역사를 이야기하는 윤사섭 동화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광복 직후 활동한 작가들이 꼭 짚어야 할 역사적 문학 주제를 외면할 때 윤사섭은 성실하고 꾸준히 그것을 이야기했다. 그 시대에 동화라는 맑은 음성을 통해 일관되게 바른 소리를 낸 작가는 드물다.
윤사섭이 겨냥한 독자는 누구였는가?
1970년 ≪엄마바람 아기바람≫의 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화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읽혀야 하고 또 읽어서 즐거운 것이라야 한다.” 어린이와 함께 어른에게도 이야기하기 위해 그의 작품은 역사성과 현실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윤사섭표 동심’은 무엇인가?
아동은 동심 그 자체이고, 어른은 그 동심을 이해하고 보호하며 자기 마음의 텃밭에서 동심을 가꾸는 동심 지킴이들이다. 흉내 낸 동심, 속임수로 덧칠한 동심, 거짓 동심으로 포장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순수 덩어리가 바로 ‘윤사섭표 동심’이다. 그에게 동심이란 신앙이다.
그것을 그의 작품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가?
<외갓집 가는 날>에는 잠시 엄마와 떨어진 어린아이의 심리 변화가 잘 나타나 있다. 아침 일찍 외갓집에 가려던 용이와 엄마. 하지만 달구지가 오지 않는다. 다음에 가자는 엄마의 말에 용이는 ‘오늘 가야 한다, 혼자라도 갈 테다’ 하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노마 아버지가 그들을 보고 용이만 먼저 들머리까지 태워다 주기로 한다. “눈 깜짝하는 사이” 자전거에 태워진 용이는 엄마랑 헤어지는 게 무서워 겁먹은 포도알 같은 눈으로 꽈리마냥 다문 입술만 샐룩거린다. ‘자전거를 안 탄다고 울며 떼를 쓸걸’ 하는 후회도 잠시, 금세 원망스러운 마음에 엄마가 미워진다. 이제 애꿎은 노마 아빠에게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며 심통을 부린다. 노마 아빠의 자전거에서 내려 혼자 엄마를 기다리게 되자 걱정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엄마가 날 버린 것은 아닐까, 엄마가 없으면 혼자서 어쩌나’ 하며 속을 태우고서야 저 멀리 엄마 양산이 점으로 보인다.
‘아동 문학이 쉬운 문학일 수는 없다’는 말로 그가 뜻한 것은 무엇인가?
문학관을 드러낸 작가의 글에서 알아볼 수 있다. 1990년 ≪따구새≫에 실린 ‘책 끝에’ 일부다. “인간 형성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동 문학이다.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는 문학, 그것은 곧 자아의 확충과 발전을 꾀하는 영혼의 양식이다. 동화의 세계도 동심의 세계이자 꿈의 세계이며 시 정신과 상징의 예술이다. 그리고 여기엔 시종 ‘리얼리티’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 그리고 어디까지나 독자층이 연소자이기 때문에 문장 또한 그들의 특성에 맞아야 한다. 즉 쉬운 문장이어야 한다. 그렇다 하여 그것이 곧 쉬운 문학일 수는 없다.”
유독 기차와 관련된 작품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철도국 기술원 생활을 16년간 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타는 열차>, <차장과 소년>, <돌이의 아버지> 등을 썼다. 기차를 타기는커녕 구경도 못한 아이들이 많던 그 시절에 기차는 환상이 가득한 동화 소재였다. 기차가 나오는 동화 가운데 그의 작품만큼 사실적이면서 상상이 깃든 예를 우리 아동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등단 기록이 분명치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창작집마다 약력이 나와 있지만 등단에 대해서만은 언급이 없다. 다만 1958년 대구아동문학회 회원이 된 것을 아동 문학에 전념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소개하고 있다. 자술 연보에서는 1959년 ‘철도 창설 60주년 기념 현상 문예’에 당선했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아동문학사전≫에서는 1955년 ≪어린이신문≫에 동화 <인숙이>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고 기술했다.
인간 윤사섭을 사람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나?
동시인 박경용은 이렇게 돌이킨다. “그는 사슴으로 불린다. 또 그렇게 불리기를 즐겨 한다. 사섭이 사슴과 어감이 비슷한 데서 얻어진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한 마리의 사슴에 비유되고, 또한 그를 연상시킴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순박한 모습이며, 온후한 성격하며, 어느 모로 보나 사슴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 그는 꿈 많고 착하디착한 어린아이다. 세속에 욕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안분하며 자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어둡고 외로웠다고 반추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1988년 ≪목각인형≫에서 그는 “돌아보면 내 인생은 마냥 어두운 뒤안길을 기구하게 헤매면서 외로움 하나만을 모래 씹듯 씹으며 살아왔다”라고 고백한다. 자술 연보를 따르면 1931년, 생후 1년 되던 해 악성 질환으로 대수술을 받으면서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1945년 부친이 요절하면서 집안이 몰락했고, 맏이로서 어린 나이에 일곱이나 되는 대식구를 부양한다.
윤사섭이 평생 없을 기회를 포기한 일이 있었나?
1950년 부산 피란 시절이었다. 지인이 관비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서울대 공대 위탁생으로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한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식구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자술 연보에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러나 그것이 공과가 아니고 문과였다면 나는 어떠한 희생도 감내했을 것이다.” 문학을 향한 그의 염원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병규다. 동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