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육필시집 쇠기러기의 깃털
가을 저녁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우수수 몰려다녔습니다/ 그대에게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갑니다/ 이런 날 저녁에 그대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지요/ 혹시 자신을 잃고 바람 찬 길거리를 터벅터벅/ 지향 없이 걸어가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이 며칠 사이 유난히 수척해진 그대가 걱정스럽습니다/ 스산한 가을 저녁이 아무리 쓸쓸해도/ 이런 스산함쯤이야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 그대를 믿습니다 그대의 꿋꿋함을 나는 믿습니다
≪이동순 육필시집 쇠기러기의 깃털≫
그대를 믿는 건 나를 믿는 것.
그대의 꿋꿋함은 나의 꿋꿋함.
바람 찬 가을 저녁이 뭐 대수라고,
자신을 잃지 않도록 옷깃을 꼭 여민다.
2772호 | 2015년 10월 17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