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함께하는 유럽 여행 9.
보스니아 트라브니크
세르비아 문학의 깊은 우물이 된 작가 이보 안드리치는 1892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트라브니크는 슬라브와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를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보스니아로 태어난다. 1961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조국의 역사와 관련된 인간의 운명의 문제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서사적 필력”이라고 불렀다. 그의 문학은 트라브니크에서 출발해 보스니아를 거쳐 세르비아에 도착한다. 수많은 탑과 성과 모스크는 인간의 존재성이 역사로부터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를 증언한다.
트라브니크
마을 어귀 습기 찬 계곡에 한때 세워진 오래된 터키 화약고를 소년들은 탑이라고 불렀다. 당시에 탑은 이미 예전에 버려져서 모두 폐허가 되었고 안팎으로 덤불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건축물의 외곽은 이중으로 된 석조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람, 비, 눈, 사람들과 동물들이 돌로 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가져갔고, 벽보다 훨씬 더 힘겹고 서서히 부서지고 사라져버렸을 가운데 부분의 천장이 오래전에 부러져 벽 전체가 점점 더 많이 무너지고 있었다. 두 개의 똑같은 폐쇄된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벽에 홈을 판 죽은 오크 나무 기둥만이 있었다. 그 벽들 사이 공간은 두 걸음도 되지 않았다. 두 개의 벽으로 싸여 있고 그 안에 한때 화약과 군수품이 있었던 중앙 공간은 이제 깨진 기와와 나무 더미로 막혀 있다. 돌이 많은 지형에서는 엉겅퀴와 푸성귀 같은 잡초가 자라났다. 지붕 대신에 위에는 밝은 하늘이 보였다. 무너진 지붕의 무언가가 두 벽 사이의 좁고 둥근 통로 위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때문에 그 통로는 한낮에도 어두침침했는데 사방에 아예 눈먼 쥐들이 둥지를 틀고 있을 정도로 깜깜했다. 커다란 목재 문의 양 날개가 예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입구 가까이에만 약간의 빛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탑으로 가축들, 양치기들이 들어와서는 불을 지피고, 봄과 여름의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동안은 도시 아이들에게 늘 놀이터 구실을 했다.
모든 것이 소모되어 낡아 허물어지고 깨끗하지 못하며, 빛을 보지 못한 이끼와 마른 풀들로 습기가 차서 미끈거리는 그 어두운 탑 안에서, 소년들은 길고 환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냈고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놀이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아주 드물고 어두운 순간들까지도 경험하면서 보냈다.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122~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