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별
눈을 뭉치며
아들과 함께 눈을 뭉친다./ 아들은 작게/ 나는 조금 크게/ 눈을 뭉치는 동안 세상은 둥글고 아름답다./ 나는 아들에게 썰매를 만들어 주고 싶은데/ 눈이 자꾸만 내려 나 대신/ 썰매를 만들어 준다./ 서둘러라, 지금 출발하면 날이 저물기 전에/ 사슴뿔에 높이 달린 마을에 닿으리라./ 나는 내 자그만 추억의 열쇠를 꺼내어/ 아들의 허리에 동여매 준다./ 오늘 밤 아들의 머리맡 양말 속엔/ 온갖 별들이 가득 차겠지./ 벌써 아들의 눈 뭉치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둥글게 뭉쳐져/ 아들은 앞발로 신나게 쳇바퀴를 돌린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너도밤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아들에게 나는 이 숲에 살았던 새들의 이름과/ 나비의 날개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아들의 귀는 이쁜 방울 종 위를 깡충 뛰어넘는다./나는 저만치 앞서 가는 아들을/ 눈송이들이 털복슬강아지처럼/ 따뜻이 품어 주는 것을 보며/ 내가 뭉친 눈 뭉치를 힘껏 하늘을 향해 던진다./ 아마 눈은 저녁을 지나 한밤중까지/ 펑펑 쏟아질 모양이다.
≪이준관 육필시집 저녁별≫, 28쪽~31쪽
눈을 뭉치는 동안 세상은 둥글고 아름다웠다. 아비는 자식에게 그런 세상을 안겨주고 싶었다. 오늘도 눈은 그날처럼 내리는데, 아들아, 안녕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