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시키부 일기
노선숙이 옮기고 해설한 ≪이즈미시키부 일기(和泉式部日記)≫
천 년을 견딘 사랑
마음을 나눈지 사 년 만에 남자는 죽는다. 남은 여자는 소리 높여 운다. 소리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시가 된다. 천 년이 지나고 우리 앞에 있다, 이렇게.
밤이 깊도록
잠 못 이루지마는
그대 생각나
달도 보지 못하네
그대 너무 그리워
ふけぬらむと
思ふものから
寝られねど
なかなかなれば
月はしも見ず
여자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노래를 보낼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가를 받게되자 황자님은 이렇게 마음을 굳히셨다. ‘역시 매력적인 여자야. 어떻게든 가까이에 두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노래를 화답하며 지내고 싶군.’
≪이즈미시키부 일기≫, 이즈미시키부 지음, 노선숙 옮김, 150~151쪽
≪이즈미시키부 일기(和泉式部日記)≫란 어떤 책인가?
1000년 전쯤에 적어 놓은 일본 여인의 일기다.
그 여인의 이름이 이즈미시키부인가?
그렇다. 헤이안 시대 여성 가인이다. 978년 무렵 태어나 58세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름에 무슨 뜻이 있는가?
부친의 관직명 ‘시키부(式部)’와 첫 남편 다치바나노 미치사다(橘道貞)의 부임지였던 이즈미(和泉) 지방의 지명에서 비롯했다.
왜 일기를 썼나?
와카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다지던 아쓰미치 황자가 스물일곱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일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여자였나?
다정다감하고 솔직한 성품이었던 듯하다. 그의 시를 보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이 그녀의 성격을 전하는가?
약용 참마를 부모님께 보내며 읊은 시가 있다.
“부모님 위해/ 어렵게 구했다네/ 내리는 눈에/ 앞뒤를 구별할 수/ 없는 깊은 산에서(君がため/ 求めたるかな/ 雪降れば/ そこどころとも/ 見えぬ山路に)”
또 딸 고시키부를 잃고 통곡하며 읊은 시도 있다.
“먼저 간 딸은/ 누굴 더 애달프게/ 생각할는지/ 어미보다 자식일까/ 역시 자식이겠지(留め置きて/ 誰をあはれと/ 思ひけん/ 子はまさるらむ/ 子はまさりけり)” 등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문 시인이었나?
탁월한 가인이었다. 남긴 와카가 2000수에 달한다. ≪마쿠라노소시≫의 세이쇼나곤, ≪겐지 모노가타리≫의 무라사키시키부와 함께 헤이안 3대 재녀로 불린다. ≪이즈미시키부 가집≫을 남겼고 ≪습유 와카집≫ 외 여러 칙찬 와카집에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다.
시집도 있나?
≪이즈미시키부 가집≫이 있다. 여기에도 황자를 추모하는 만가가 122수나 들어 있다.
위의 인용구에서 말하는 주고받은 ‘노래’가 와카를 뜻하나?
그렇다. 5/7/5/7/7의 31음으로 이루어지는 일본 고유의 정형시다. 앞의 5/7/5구와 뒤의 7/7구를 서로 화답해 짓는 것은 렌가(連歌)라고 한다.
이 일기에서 와카는 어떤 역할을 하나?
스토리의 중심축을 이루며 두 주인공을 잇는다.
이 작품에 실린 와카는 모두 몇 수인가?
145수다. 이즈미시키부 노래 75수, 황자의 노래 68수, 렌가 2수다.
황자와 작자는 와카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황자는 작자의 재치 있는 와카에 감탄하며 사랑을 느낀다. 이즈미시키부는 장마철이나 칠석날 잊지 않고 와카를 보내오는 황자의 세심함에 마음을 연다.
둘의 사랑에 무엇이 있었나?
신분차가 있었다. 이즈미시키부는 중류층이지만 아쓰미치 황자는 천황의 아들이자 유력한 동궁 후보다.
왜 와카를 사랑의 메신저로 사용하게 된 것일까?
와카에는 경어법이 없다. 두 사람은 대등한 위치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분명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있나?
시기별로 삽입된 와카의 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엇갈리며 위기를 맞을 때는 주고받는 와카의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만큼 마음이 멀어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뜨거워졌을 때는 한 달 동안 무려 48수의 와카가 오간다.
황자의 죽음 뒤 그녀의 슬픔은 어디로 가는가?
“나의 이 슬픔/ 말로는 표현할 길/ 없기에 그저/ 이 슬픔 소리 높여/ 울어 보이리라”고 말한다.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생의 질곡에서 느꼈던 슬픔과 인생의 허망함, 기쁨, 설렘을 언어로 형상한다.
당신은 왜 이즈미시키부를 소개했나?
내가 가장 싫어하고 어려워했던 장르가 고전 시가문학, 그중에서도 ‘와카’였다. 그러나 이즈미시키부의 와카는 심금을 울렸다. 그 주옥같은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천 년 전의 사랑은 천 년 뒤에 무엇이 되는가?
사랑은 시간을 견뎌 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을 담은 고전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견딘다. 이 작품에서 신분의 장벽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듯이, 우리도 나이, 성별, 사회제도, 규범, 직업, 종교, 빈부, 국적, 거리 등 헤아릴 수 없는 이유로 사랑을 주저한다. 이즈미시키부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넘지 못할 장벽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신은 누구인가?
노선숙이다.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