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육필시집 유등 연지
얼음꽃
빈 나뭇가지에 맺힌 얼음꽃들이/ 이른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잠을 털고 막 뛰어내리는 햇발 사이로/ 새들이 퍼덕이며 새 길을 트고 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날갯짓하다가/ 차고 투명하게/ 얼음꽃에 매달려 맺히고 있다.// 간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는데/ 천장에 올라붙은 잠이 되레 새날이 밝도록/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오늘 아침, 마을을 벗어난 눈길은/ 탱글탱글한 용수철 같다. 낮은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는 새의 흰 깃털 같다.//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동안에도/ 새들은 허공에 둥근 길을 트고 있다.// 얼음꽃들이 눈부시게 햇살을 받아 되쏘고/ 내 마음도 거기 매달려 글썽이고 있다.
≪이태수 육필시집 유등 연지≫, 96~99쪽
시인은 생각한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시를 쓴다는 건 그런 물 위에 마음을 끼얹는 행위가 아닐까. 하지만 어쩌랴.” 첫 시선집을 육필시로 묶으며 새 길을 새롭게 나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