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 천줄읽기
이을상이 뽑아 옮긴 아르놀트 겔렌(Arnold Gehlen)의 ≪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Der Mensch, seine Natur und seine Stellung in der Welt)≫
인간은 왜 동물이 아닌가?
인간은 무능한 동물이다. 빠르지 못하고 강하지 못하며 높이 날 수 없고 깊이 헤엄칠 수 없다.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그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길은 보편 기능과 문화 창조다. 퇴화함으로써 진화했다.
형태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모든 고등 포유동물과 달리 주로 결핍(Mängel)으로 규정된다. 이 개념은 엄밀한 생물학적 의미에서 이따금 비적응성, 비전문성, 원시성, 즉 비발달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소극적이다. 인간에게는 날씨에 따라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털이 부족하다. 자연적 공격 기관도 없지만, 도망가기에 적합한 체격도 아니다. 동물 대부분은 인간보다 감각이 훨씬 더 예민하다. 그러나 인간은 바로 이러한 참된 본능이 결핍되어 있고, 본능의 결핍은 생존에 위험한 것이다. 인간은 유아기와 아동기에 걸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보호가 필요하다.
≪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 아르놀트 겔렌 지음, 이을상 옮김, 76쪽.
겔렌이 인간을 결핍 존재로 파악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생물학과 형태학의 관점에서 인간을 고찰했다. 결핍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 인간은 생존에 가장 불리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다. 둘째, 자립하기까지 긴 성장기를 거쳐야 한다. 셋째, 환경의 다양한 요소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헤르더의 결핍 존재 개념을 이어받은 것인가?
그렇다. 헤르더는 ≪언어 기원론≫에서 인간에게 신체의 고통과 영혼의 격정을 드러내는 기관이 없다고 했다. 동물이 자연에서 발달시켜 온 감각의 탁월성과 본능이 인간에게는 결핍되어 있다고 본 점에서 겔렌도 마찬가지다. 둘 다 인간이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언어와 문화를 창조했다고 설명한다.
≪인간, 그 본성과 세계에서의 위치≫는 어떤 책인가?
인간학적 원리를 해명하는 책이다. 겔렌은 철학이 궁극적으로 인간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학의 원리에 입각해 근대 서구 기술 문명의 본성을 드러내려 했다. 이 책은 그 선행 작업이었다.
인간학적 원리를 해명하기 위해 어디서 출발하는가?
인간과 동물의 생물학적 근본 차이를 규명한다. 다른 생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나타나는 생물학적 원리를 찾고자 했다.
인간은 동물과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동물은 자연 환경에 적응하기 쉽도록 종에 따라 특수화한 기관과 본능을 가졌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기관을 갖지 못했다.
왜 인간에게는 자연조건에 적합한 기관이 없는가?
퇴화했기 때문이다. 동물이 공격과 방어, 도피를 위한 기관을 특수화했듯, 인간도 합목적적 활동으로 자신의 기관을 특수화한 것이다.
퇴화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네덜란드 해부학자 볼크의 발견을 예로 든다. 엄지손가락이 짧아진 점, 몸에 털이 없는 점, 두개골이 튀어나오고 그 아래에 치아가 배열되어 있는 점, 골반의 구조 등이다.
퇴화한 신체 구조는 인간 활동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엄지손가락이 짧아져 손놀림이 한결 정교해졌다. 몸에 털이 없기 때문에 불을 사용하게 되었다. 두개골이 튀어나와 전두엽이 발달했다. 치아 배열은 말하는 기능과 관련된다. 골반 구조가 바뀌어 직립보행이 가능해졌다.
인간이 자연적 무능력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전략은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예견하고 학습하는 능력이 있다. 자연조건을 자의적으로 구성하고, 자연을 예측하고 변경해 생존을 위한 기술과 수단을 마련한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싸워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불을 사용했기 때문에 추운 지방에서도 살 수 있었다. 지구 전역에 걸쳐 계속 번식하고 자연을 정복했다.
겔렌이 인간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아무리 먼 곳이라도 자신의 힘을 미치고, 전혀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에도 힘을 미친다. 동물과 반대로 인간은 미래를 지향하면서 살고, 현재 시간 속에 갇혀 살지는 않는다.”
인간의 문화 창조력을 암시하는 말인가?
그렇다. 동물은 환경이 바뀌면 죽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조건에서도 살아남는다. 기술과 문화 때문이다. 겔렌은 문화를 ‘제2의 자연’으로 규정했다. 문화는 기술적으로 가공하고 적합하게 만든 대용 세계다.
문화 창조 가능성을 설명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세계 개방성’과 ‘부담 면제’다.
세계 개방성이란 인간의 어떤 태도를 가리키는가?
동물은 특수화한 유기적 기관을 이용해 환경에 적응해 속박된 채 살아간다. 인간은 특수화한 기관이 없기 때문에 환경에서 자유롭다.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 태도를 ‘개방적’이라 한다. 개방적 정신 태도는 세계를 향한 것이다. 동물이 환경에서 살아가듯 인간은 세계에서 살아간다. 동물이 환경에 갇혀 사는 것과 달리 인간은 세계를 무한히 만들어 간다.
환경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인간에게 긍정인가, 부정인가?
어떤 자연의 보호막도 부여받지 못한 인간의 세계 개방성은 자연적 삶의 조건에서는 엄청난 삶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부담은 환경에서 오는 자극의 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은 공동생활과 사회생활로 자연에서 오는 부담을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사회제도가 생겨났다. 이것이 부담 면제의 과정이다.
인간의 행위와 동물의 행동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동물은 유전에 따라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인간은 본능이 퇴화한 채 생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행위한다. 인간의 행위는 경험적 노력과 교육에 따른 학습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겔렌의 주장은 철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당시 눈부시게 발달한 생물학은 인간을 생물의 한 구성원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징표를 철학적 인간학의 근본원리로 승화함으로써 철학이 생물학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막스 셸러와 함께 ‘철학적 인간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다.
원전에서 얼마나 뽑아 옮겼나?
원전은 3부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1부 서론을 모두 옮겼다.
서론만 옮긴 까닭은?
서론에서 철학적 인간학에 관한 전체적인 구상을 상세하게 밝힌다. 겔렌의 철학적 인간학에 대한 근본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을상이다. 동의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 교수다.